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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이어진 이전 기사 참조)는 앞서 지적했듯 지난 86년 역사적인 전국 파업이 있은 후 영외에서 처음으로 갖는 집회라는 의미도 있지만, 최근 주미노조가 전국 미군기지 앞에 장기간 집회신고를 제출한 것과 관련 '유령 집회' 등 여러 논란이 있는 가운데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번 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주한미군 종사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관계 및 근로조건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하청

당면해서는 주한미군 직속 업무의 하청 전환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청 전환시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는 그만큼 현재 주한미군에 직접 고용된 직원들의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초청계약자(미국 하청업체) JWK(군사,무기시설 관리 업무)의 한국 기업 하청 전환시 수원, 오산, 광주, 대구 등 미 공군부대에서 약 200여명의 대량 감원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미군측에서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최저가격입찰제에 의해 가장 싼 가격을 올린 업체와 계약을 맺다보니 결과적으로 국내 업자들간에 출혈경쟁이 벌어져 덤핑 하청을 하게 되고, 이것은 곧 낮은 임금 등 하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급여는 주한미군에 직접 고용된 한국인 직원들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한미군측이 하청 전환을 선호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 직원의 직접 고용에 따른 인건비 예산을 줄이고, 질좋은 한국인 노동력을 가능한 싼값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거기에다 하청업체 종사 한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비록 사업장은 미군기지 안에 있다 하더라도 사용자는 주한미군이 아닌 한국 회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SOFA가 아닌 한국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사업장이 미군기지 안에 있는 탓에 SOFA 대상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법의 전면 적용을 받는 것도 아닌, 매우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되어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한편,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 관리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한 의도도 보인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주미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 하청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숫적으로 주한미군 직속 직원들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이는 자연히 주미노조의 조직력 약화를 가져오고 있다.

거기에다 하청업체들은 주한미군측과 일정 기간 동안 계약을 맺고 일하는 처지라 주한미군측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주한미군과 계약을 맺으려는 하청업체가 숱하게 많은 상황에서 미군측으로서는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땐 계약을 중도 파기하거나 계약 연장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이것은 곧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전원 해고를 뜻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행위를 '자살행위'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실례로, 지난 1999년 용산 미군기지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로서는 처음으로 부대 내에서 파업을 벌이려던 (주)두라코퍼레이션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이 결국 부대 출입증을 강제로 빼앗기고 부대 밖으로 쫓겨나 모두 자연 해고되었다.

국내 노동법 상으로는 적법한 쟁의절차에 따른 파업이었으나 사업장이 미군부대인 관계로 이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는 짓밟혀졌고, 한국 정부도 이들을 구제하지 못했다.

산재 처리에 인색한 주한미군

두번째로, 산재보험 문제를 들 수 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지위가 매우 불안정함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주한미군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 역시 지위가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은 근로관계에서 SOFA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현행 SOFA에서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나 보상, 노사관계는 한국 노동법과 실질적으로 일치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한국 노동법의 수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산재 보상에 관한 것이다.

국내의 경우 1인 이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산재보험에 들도록 되어 있어 업무 중 재해 발생시 보험제도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주한미군의 경우 산재가 발생하면 주한미군 인사규정(USFK Reg 690-1)에 따라 산재 보상을 받게 되는데 산재에 대한 인정 범위가 대단히 협소하고, 실제 보상금 지급까지의 기간도 보통 1년에서 3년씩 걸리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주한미군 차량을 운전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운전 중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업무 중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아 만일 운전자 과실이 인정되면 심한 경우 구속이 될 수도 있고, 피해자에 대해 자비로 보상해야 하는 형편이다.

과로사도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의 한국 산재보험 가입은 한국인의 생존, 아니 생명이 달려 있는 절박한 문제다. 따라서, 현재 미군측에서 산재보험에 가입키로 결정했다고는 하나 즉각 실시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한시라도 빨리 실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미노조의 '이유있는' 주한미군 철수 반대론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그 동안 사회적으로 거의 공론화되지 못했다. 미군부대가 갖는 폐쇄적 특성도 있겠지만, 사회적 관심을 갖지 못한 사회 공동의 책임도 있다. 어찌보면 이러한 미군부대와 사회 일반의 교류, 대화의 단절이 주미노조 집회신고를 둘러싼 많은 오해와 불신을 낳는 주된 동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미군문제에 대해 싸워온 많은 사람들이 노조측의 '대책없는 주한미군 철수 반대'라는 주장에 대해 매우 당혹스럽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실직할 수 밖에 없는 기지 노동자들이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일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연합토지관리계획 발표 등으로 일부 기지의 폐쇄와 감원이 현실화되면서 기지 노동자들이 피부적으로 느끼고 있을 생존권적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해 보았던가 우선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고, 설사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다를지라도 양자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실제로 그러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자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많은 오해들이 이해의 부족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집회는 현재 주한미군 기지 종사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고민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물론, 한번의 집회로 그 동안 쌓여있던 오해와 불신이 한꺼번에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가 적이 아니고 함께 가야 할 동지임을 확인시킨다면, 해결 못할 것도 없다. '미군 철수 반대'라는 구호 자체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호가 나오게 된 배경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외 기지 노동자들이 외치는 생존권적 문제에 대해서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

하루 빨리 주미노조 집회 신고로 인한 노조와 시민사회 단체들간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길 바란다. 미군은 언젠가 떠나도 우리는 자손 대대 이 땅에 남아 살아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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