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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는 경기도 고양시와 강화도에서, 멀게는 전라도 함평과 완도, 경상도 산청과 문경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제주도에서 온 유족들도 있었다. 지난 50년 이상 숨죽이며 살았던 이들이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모였다.

지난 29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선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영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이하 범국민위)가 주최하는 심포지움이 열렸다. 그 동안 이 문제와 관련, 지역별 차원에서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경우는 있어 왔지만, 전국 각지의 유족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이날 모임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범국민위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노근리 사건을 취재했던 AP로부터 전해 받았다는 대구인근 지역의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미국문건을 공개하면서 한껏 달아오른 이날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소녀 포함 200-300명 칠곡서 학살

"50년 8월 10일 오후 3시에서 3시 반경에 대구와 왜관 지역을 순찰을 하던 도중 큰 총성이 들려 가까이 가 보았다. 대구에서 북쪽으로 8마일 정도 떨어진 골짜기 지역이었다. 한국의 헌병들이 2300여명의 한국인들을 학살하고 있었는데, 일부 여성들과 12-13세로 보이는 최소 한명의 소녀도 포함돼 있었다. 피의자들은 20명 정도 일렬로 서 있었으며 명령이 떨어지면 군인들이 총을 피의자 머리에 대고 쏘았다. 학살을 명령한 군인은 이 죄수들이 '스파이' 였다고 말했다. 그 외에 다른 정보는 없었다" (미국 문건의 요지)

김 교수는 이이 미 문건의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자료를 제시했다. 4·19 직후 대구 매일신문에서 연재한 인근의 학살 증언 중 하나가 바로 그것. 한국전쟁 당시 이장이었던 구자승 씨가 전하는 칠곡군 지천면 신동고개 학살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음력 6월 27일 3시경 신동 고개의 골짜기에서 학살이 발생했다. 약 500명 가량의 사람들이 20대 이상의 트럭에 실려와 이곳에서 학살되었으며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와 주민들이 기겁을 하고 도망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즈음은 피난을 가던 시점이어서 주민들은 시체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피난을 갔는데 국군이 북상을 하면서 동네에 돌아와 보니 개천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두 지역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9월말 이전까지 수습하였는데 그 중에선 동국대학교 뺏지를 단 학생과 여학생도 포함돼 있었다. 시체의 상당수는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일부는 흰 양복을 입고 있었다. 이후 대구와 군산에서 유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몇 명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찾는 사람이 없었다."

김 교수는 "두 자료를 보건데 칠곡에서의 학살은 인근 지역주민들이 아닌 대구 혹은 서울 인근의 대도시에서 실려온 사람들이 분명하다"며 "대도시 지역의 예비검속자, 혹은 보도연맹원들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지역의 학살 사건은 지역 주민의 증언과 미국 측의 문건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거의 유일한 지역으로 미군은 이것을 목격하고도 제지하지 않았으며 학살을 목격한 후 상부에 보고하였고, 그 자료를 토대로 미국대사관 등을 통해 한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인권문제의 근원적 해결

이날 기자회견에서 범국민위는 성명서를 통해 "20세기 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 희생이 많았던 한국전쟁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족들까지 연좌제의 악령에 시달려야 했다"며 "그 어떤 명분과 상황논리도 민간인 학살이라는 전쟁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재식 한신대 총장, 채의진 전국유족회 대표와 함께 이단체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국방부의 '민간인 희생사건 조사업무 지침서'가 진상규명 보다는 군작전의 합리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정부는 국방부 주도의 조사지침을 즉각 철회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을 제정해 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계속된 심포지움에선 ▲여순사건의 진상과 집단학살의 기억(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전갑생 민간인학살문제 해결을 위한 경남지역 모임 조사팀장) ▲광주·전남지역의 실태조사에 대한 중간보고(최정기 광주인권센터 운영위원) ▲대구·경부지역 민간인학살 사례보고(노용석 대구경북 공동조사단장)를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이영일 소장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올바른 시장과 국가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국가폭력은 더 이상 있어서도 용납돼서도 안 된다"며 "남한 인권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민간인학살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학살 지역인 전남 함평·영광을 지역구로 한 민주당 이낙연 의원도 "이번 작업이 현대사를 정리하는데 있어서도 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며 "한나라당 신영국 의원(경북 문경·예천) 등과 뜻을 모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법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정범구 의원은 "지역구 문제이기도 한 금정굴 학살사건에 관심이 많았는데, 막상 정치권에 들어가니 자주 잊게 돼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며 "우리에겐 아직 20세기가 정리되지 않은 만큼 입법 청원되면 조속한 시일 내에 정리하겠다"고 동참의 뜻을 밝혔다.

개별법 한계, 통합법으로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장완익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특별위원회는 대통령 산하 기관으로 독자예산을 갖고 최소한 장관급의 위원장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진상규명과 함께 위령탑·호적정리·역사발물관·유골발굴 작업 등 명예회복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변호사는 "연좌제까지 포함해 최대한 유가족 입장을 배려할 생각이지만 시기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민간인 학살의 정의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는 아직 정리할 부분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토론 사회를 맡았던 강창일 제주 4·3 연구소장은 "각각의 개별법이 모두 한계가 있는 만큼 통합법으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보상 위주로 가면 퇴색의 의미가 있는 만큼 일단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춰 나가자"고 자리를 정리했다.

지난 6월, 4대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위'의 보고서가 공개됨으로써 다시 한 번 수면위로 부상한 민간인학살 문제는 이번 포럼을 통해 '통합법'으로 나아가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는 게 관계자의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 국제전범재판>에서 18개국 민간인 국제법정 배심원들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책임과 관련 미국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범국민위의 한 관계자는 "민간인 학살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 따라 보복학살이 연이어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그러나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 직후 의 '보도연맹'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선 그간 금기시 됐었다"며 "여기에 연좌제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 얼마 남지 않은 증언자들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도연맹 가입자의 절반 가량은 이념과 상관없는 순수민간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무엇보다도 유족들이 나서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존해있는 '민간인 학살' 문제를 규명해 나가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범국민위>의 전망이다.

한편, 심포지움이 끝난 후엔 '후원의 밤'이 열려 안치환 정태춘씨 등의 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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