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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워크숍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됐던 지난 31일 오후. 국회정치개혁특위 공청회가 열린 국회 501실엔 한나라당측 참여 의원들만 남아 여권에 대한 성토를 퍼부었다. 마지막날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던 자민련 간사 김학원 의원도 그간 활동에 대한 자신의 소회만을 밝힌 채 이미 회의장을 떠난 상태였다.

그러나, '국회법'을 둘러싼 여야의 인식 차이가 접점을 잡기 힘든 평행선 상태라 일단 활동이 종료된 특위의 연장논의가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386세대 대표주자로 불리는 김민석 의원이 간사를 맡아 기대를 모았던 민주당측은 예초부터 당론조차 확정짓지 못한데다 당내 사정을 이유로 마지막 날엔 당소속 전원이 일찍 자리를 비워 빈축을 샀다. 3일간 지속됐던 공청회 분위기를 전한다.

여야가 '정치개혁'의 접점을 찾기엔 처음부터 공청회에 임하는 양측 태도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31일, 진술인들이 모두 돌아간 후 이어진 자리에서 김학원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과연 정치개혁특위가 성의 있게 다뤘느냐"며 "합의점을 낼 가능성이 없어 운영위로 갈 수밖에 없다"고 유감을 표시한 뒤 회의장을 나가 그동안의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러자, 홀로 남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이가 없다며, 공격의 화살을 텅 비어있는 민주당 참여 의원들의 자리로 돌렸다. 전재희 의원은 "민주당이 당론도 정하지 않은데다 공청회마저 불성실하게 임한 것은 특위를 만든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성토했으며 안상수, 김기춘 의원 등도 여기에 합세했다.

특위 위원장인 강재섭 의원은 "교섭단체 문제도 논의하면 좋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정치 개혁이 아니다"며 "특위는 연장돼야 하며 양측의 협의를 통해 반드시 재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청회에서 성토장으로

당초 15일부터 열리기로 했다가 29일로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최됐던 16대 국회 '정치개혁'논의는 일단 여기서 일단락됐다. 3일간 18명의 학계·법조계·언론계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듣고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했던 것은 애초부터 힘들다는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

여야 의원들이 어떤 자세로 이번 공청회에 임했는지는 출석 상황을 놓고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특위 위원은 모두 16명. 한나라당은 위원장인 강재섭 의원을 비롯 허태열 김기춘 고흥길 박승국 안상수 이해봉 전재희 의원(이상 8명)이 참여했고, 민주당은 김민석(간사) 원유철 정세균 김덕배 박병윤 송영길 함승희 의원(이상 7명)이 활동을 했다. 자민련에선 김학원 의원이 유일하게 간사 차원으로 참여했다.

이중 3일 내내 자리를 끝까지 지켰던 의원은 강재섭 허태열 고흥길 박승국 전재희 의원 등 한나라당 인사들뿐이었다. 민주당에선 송영길 의원만이 29일과 30일, 많은 질문을 던지며 고군분투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잠시 얼굴을 비추거나 발제를 맡은 날만 참석했다. 간사인 김민석 의운도 첫날을 제외하곤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함승희 의원과 박병윤 의원은 일정 내내 불참하거나 얼굴만 비췄으며 정세균 원유철 의원은 일찍 자리를 떠나 3일동안 단 한번의 질의도 하지 않았다. 둘째날 '정치자금법·정당관계법' 기조발표를 맡은 김덕배 의원은 "아직 우리당의 당론을 최종적으로 수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되는 것이기에 당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며 당론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을 정도.

자민련 김학원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이 논의된 29일과, 민주당 의원이 일찍 자리를 비운 31일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양측이 확정된 당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은 방향을 잡고 나왔어야 하는데, 저쪽이 제로 상황이라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공청회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간사라도 남아 있었어야 했다. 31일을 기점으로 정개특위는 일단 존재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3일간 계속됐던 이번 공청회 자리는 '정치개혁'이라는 화두를 놓고 국내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는 점에서 향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민주당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 제기된 내용들을 주요 이슈별로 소개한다.

첫날 - 국회관계법 개정 관련

▲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김학원 의원-선진의회주의국가에선 소수의석 교섭단체인정이 상식적이다. 또한 현행 20인 이상 교섭단체 등록여건은 기억에도 떠올리기 싫은 유신체제 아래 고착화된 비민주적 제도의 표본이다. 또한 16대 국회에서 의원의 수가 273명으로 줄었으므로 구성요건도 당연히 줄여야 하며, 소수정당의 출현 및 활동을 막는다는 점에서 헌법에도 위배된다.

▲ 국회의장 당적보유 문제

·김학원 의원-의장의 공정한 의사진행여부의 문제는 '소프트웨어'의 문제이지, 당적 보유 여부와 같은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의 개정안에는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이 의장이 된 후 7일내에 당적을 이탈한 후 총선출마 90일전에 당적을 회복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혼란스러움도 문제다.

·고흥길 의원-국회에서 집권당의 날치기에 의한 변칙적인 안건처리와 국회의 파행 운영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국회의장이 당파성을 떠나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회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에서도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의장의 당적 보유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 인사청문회 대상범위 확대문제

·김학원 의원-좋은 목적에서 시작한 인사청문회가 만일 정치적 목적을 띤 채 다른 여야 정쟁 무대로 변질된다면 이는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의 주장처럼 검찰총장, 국정원장 등으로 보다 확대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다만 국무의원의 경우엔 타당하지 않을까라고 생각된다.

·고흥길 의원-안동수 전 법무부장관 임명 파문에서 보듯이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인사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임명되고 있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해치고 있다.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날 - 정치자금법·정당관계법 개정 관련

▲ 정당의 민주화

·김덕배 의원-당내 민주주의의 결여, 취약한 당원의 참여, 의사결정의 비민주성, 고비용 정당구조에 따른 정당운영의 비효율성 등 많은 문제점들을 노정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상향식 공천이 이상적이긴 하나 지구당 당원 조직이 취약한 우리 현실에서 상향식과 하향식을 절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해봉 의원-공직후보자 추천을 위한 대의기관이 일선 당원의 의사를 후보자 추천에 제대로 반영시키는 실질적인 의결기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당법상에 그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 정치자금법

·김덕배 의원-정치자금은 정치의 원동력으로서 긍정적 측면도 갖고 있으나, 이와 동시에 정치를 부패시키는 부정적인 측면도 아울러 갖고 있다. 3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납부하는 법인은 법인세 납부시 납부 세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관위에 의무적으로 기탁하게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기부할 의사가 없는 법인에게는 추가적 부담이 될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강제적 기탁금 이외의 종전과 같은 임의적 정치자금을 추가로 제공하여야 하는 이중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해봉 의원-한나라당은 법인세를 연간 3억원 이상 내는 법인이 법인 세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치자금으로 기탁하고 더 이상은 정치자금을 일체 부담하지 않는 정치자금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

▲ 당선자 당적 이탈 제한

·이해봉 의원-공직선거 당선자들이 지역 주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선 후 정당을 이리저리 옮기는 행위를 다반사로 하고 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는 당적을 이탈할 수 없도록 하고 탈당을 할 때도 자신을 선출해 준 주민의 의견을 듣는 등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 국고보조금 배분방식

·이해봉 의원-현행 정치자금법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우선 배분하도록 하여 군소 정당으로 하여금 무리하게 교섭단체를 구성하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보조금에 대한 교섭단체의 우선 배분제는 폐지하여야 한다. 총선 참여 정당만을 대상으로 배분하되 총선거 최소득표수비율 2%를 넘은 정당이나 국회 의석을 얻은 정당만을 지급 대상으로 하고 배분비율은 총선에서의 득표수 비율로 해야 한다.

셋째날 - 선거관계법 개정 관련

▲ 선거구제

·정세균 의원-우리 당은 원칙적으로 소선거구 1인 2표제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입장을 취해왔다. 1인 2표제를 통해 유권자는 그들의 의사를 더욱 분명하게 표명할 수 있을 것이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 지역 연고제

·정세균 의원-지역감정 및 지역 연고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매번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별다른 개선의 문제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 지방선거 시기

·안상수 의원-내년도 실시예정인 지방선거가 공교롭게도 월드컵 개최기관과 겹치도록 돼 있다. 월드컵을 어렵게 유치하고는 대회 기관중에 전국적인 선거를 치르겠다고 하는 것은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될 넌센스다. 선거일을 1개월 가량 앞당겨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 선거사범수사 특별검사제 도입

·안상수 의원-선거문제에서 검찰의 편파시비를 불식하고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 선거운동

·정세균 의원-음성선거운동비용은 철저히 막고, 선거운동원의 수당·선거사무소 설치 및 운영비·TV 등 선거광고비 지원 등 선거공영제를 확대해야 한다.

·안상수 의원-현수막을 금지하는 대신 피켓·만장·마스코트 등이 허용되자 후보자간 세과시용으로 변질돼 선거비용 과다의 주된 원인이 됐다. 종전처럼 현수막을 부활하는 것이 건전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후보자 본인의 명함 배포마저 금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지나친 규제로 재고되어야 한다.

공청회 필요성에 의문

첫날 진술인으로 참석했던 고영신 경향신문 편집국 부국장은 "국회가 귀중한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면서 이런 공청회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며 "정치권이 정말 정치개혁을 할 생각이 있다면 공청회를 열 것이 아니라 여야가 정파적 이해를 떠나 진지하게 협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놓고 벌이는 양측의 대립과 시한 종료된 '정개특위'의 현실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느껴진다. 향후 6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강 위원장이 밝히긴 했지만, 현재와 같은 분위기라면 그 가능성도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99년 15대 국회에서 활동기간이 만료된 정치구조개혁입법특별위원회를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본회의 의결을 통해 재구성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불러온 책임 중 상당부분은 '당내 민주화'를 위해 전체의 화두인 '정치개혁' 논의를 소홀히 한 민주당측에 있다는 게 국회 관계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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