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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을 잡고 놀이터에도 가게 될 날을 아버지는 기다린다."
화려한 계절의 여왕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비롯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 행사가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각양각색의 출신들이 모인 정치인들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개점휴업 상태인 임시국회 상황이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인들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거나 중요한 일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가족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저서들을 만나봤다.

정겨운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때 가장 크고 애절한 것일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멀리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심정에서 알 수 있듯 함께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 아픔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도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철창 생활을 해야만 했던 무수한 인사들을 찾을 수 있다. 몇 평 안되는 공간 속에서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가며 보고싶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깨알같은 글씨로 표현해야만 했던 이들의 편지를 보면, 그 심정이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아팠는지 엿볼 수 있다.

당신을 존경하는 이유

정치인들의 '옥중서신'을 다룬 책 들 중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 모음집이다. 지난 84년엔 <민족의 한을 안고>(청사)로, 그리고 92년엔 <사랑하는 가족에게>(새빛문화사)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80년, 김대통령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세속적으로 볼 때 나는 결코 좋은 남편도 못 되며 좋은 아버지도 못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친척들에게 얼마나 많은 누를 끼쳤습니까? 또한 가슴 아픈 것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고난을 당한 사실인데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메어지는 듯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모든 일을 위해서 주님의 은총이 내려지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이어 그는 "나는 당신과 같은 좋은 아내를 가졌으며 홍일이, 그의 처, 홍업이, 그리고 홍걸이 같은 착하고 장래성 있으며 아버지를 이해해 준 자식들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행복하게 생각하며 우리 집안의 장래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상 80년 11월 21일 서신)라며 함께 있을 때 표현하지 못한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표현했다.

같은 날 "내가 당신의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환경은 그 큰 고통을 덜어드리기에는 너무도 어려워 다만 묵묵히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당신께 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라며 "귀한 자식 매 한번 더 때린다는 식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같이 매질하시고 계세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꼭 가지세요. 건강하세요. 당신께 큰 축복이 내리기를 빕니다"(1980년 11월 21일)라며 남편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이희호 여사의 글도 담겨 있다.

"남들은 우리를 가장 불행하다고 보겠지만 지금이 우리에게는 주님의 축복과 은혜가 가장 많은 행복한 때라고 나는 믿습니다...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라는 아내의 편지처럼 죽음을 앞둔 김대통령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게 과연 있었을까.

이외에도 이 책에는 'P.S 이 편지를 취급하는 분들께-이 편지를 아버지께서 받아볼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추신이 붙은 세 아들의 서신들도 들어 있다.

좀 서러워합시다

옥중서신을 통해 가족 사랑을 담은 또 다른 책으론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의 편지글을 모은 <열려진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한울, 92년)를 들 수 있다.

"병준아, 병민아 잘 있었니. 오랫동안 너희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못했구나. 아버지는 이사를 하였고 유난히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 그렇게 되었단다. 우리 병준이, 병민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것은 엄마가 보내주는 편지를 통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특히 엄마 편지와 함께 날아온 너희들의 그림을 재미있게 들여다 본단다. 병준이 그림 속의 태양을 보면서, 아버지도 그런 밝음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심을 했단다. 병민아, 네 손을 잡고 놀이터에도 가고 약수터에도 가게 될 날을 아버지는 기다린다."

좁은 쇠창살 안의 공간속에서 자식들은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에게 큰 희망과 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한두 번쯤 복받쳐 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고 필경 이것은 서러움이었을게요. 뭐, 반드시 서럽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태엽 풀린 유성기처럼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난리가 날 일도 아니고,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참 지난 6일에는 빨간 원피스를 입었던 것 같구려. 봄은 인재근 씨의 치마폭에 성큼 담겨져 오는 것이 아닌가 싶소. 괜찮게 보입디다. 걸음걸이가, 분위기도 물론이고"라는 글에서 그 어느 아내가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처럼 많은 정치인들의 저서에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으로서의 미안함과 그리움, 새로운 희망들이 옥중서신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 현재에도 어려워진 경제 상황때문에, 혹은 그들과 같은 이유로 여전히 감옥 속에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도 여전히 정치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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