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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5월 5일은 어린이 날. 하지만 미국의 멕시코인에게는 <싱코 데 마요 - Cinco de Mayo>라는 전통 명절이다. 히스패닉은 이 날 1862년 멕시코의 농부와 민병대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군대와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한다.

부시 대통령은 <싱코 데 마요>에 백악관에서 유창한 스페인어로 연설을 하며 히스패닉 구애에 나섰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한국 의회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연설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부시의 스페인어 연설에 히스패닉이 느낄 친근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판 <우리가 남이가> 캠페인이라고나 할까?

멕시코에 인접한 텍사스 출신인 부시는 지난 대선 때 그의 장기인 스페인어 실력을 유감 없이 활용해 급증하고 있는 히스패닉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를 썼다. 부시의 이런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어 2000년 대선에서 예전의 공화당 후보에 비해 월등한 약 35%의 히스패닉 표를 확보했다. 지난 대선이 박빙의 승부였던 것을 감안하면 부시의 스페인어 실력이 대선의 1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부시의 스페인어 연설에 열광하는 히스패닉의 비극은 대부분이 미국의 중-하류 계층인 이들에게 공화당 정권의 정책이 하나같이 이들의 권익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지난 100일간 부시정권이 히스패닉 사회에 저지른 거짓말 백태'라는 광고에서 부시 정권의 허울 뿐인 히스패닉계 기만 술책을 고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광고에서 부시의 감세안이 정작 빈민층인 히스패닉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간다며 히스패닉계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굳이 민주당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감세안을 필두로 낙태, 문맹퇴치, 의료, 공공위생, 환경 등 거의 모든 사회복지 분야에서 부시 정권의 정책은 철저하게 히스패닉의 권익과는 반대되는 쪽으로만 치달리고 있는데 정작 이들은 부시의 유창한 스페인어 연설에 넋이 나가 열광적 지지를 표명하는 서글픈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의 이미지 전술에 넘어가 자신들의 적대세력인 부시에게 표를 던진 히스패닉 유권자의 비극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92년 대선 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당시 여당의 선거전략에 최면이 걸려 YS에게 표를 몰아준 영남의 유권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기득권 세력의 총화였던 당시 여당의 이미지 전술에 부화뇌동하여 표를 던진 못난 민중들은 이후 YS정권이 보여준 철저한 반민중적 정책에 환멸하며 손가락을 자르네 마네 후회했지만 이미 버스 떠난 뒤였다.

나름대로 윤똑똑이라며 목소리를 드높이는 한국의 유권자들이지만 다음 대선에서 또 다시 기승을 부릴 <우리가 남이가> 류의 기만술에 속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후보에게 올바른 한 표를 던질 수 있을까?

패거리 정서의 극단적 표현이란 평을 듣고 있다는 <친구>라는 영화에 열광하는 수백만 관객의 모습을 보노라면 나의 이런 우려가 또 다시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싱코 데 마요>의 부시 연설에 환호하는 히스패닉과 <친구> 상영관에 줄지어 서 있는 한국인의 모습이 내 머리 속에서 오버랩 된다면 나의 상상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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