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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5월 1일) 노트북 컴퓨터를 사러 시내로 나갔습니다. 경기침체로 컴퓨터가 잘 팔리지 않자 너도 나도 세일을 하고 있어 지금이 노트북을 사기에 딱 알맞은 때라고 생각했지요.

시내의 <컴퓨서브>에 가면 수 많은 노트북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제품이 있습니다. 애플이 얼마 전 출시한 신형 <파워북 G4>입니다. 비디오와 오디오를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강력한 멀티미디어 기능에 날씬한 금속성 몸체까지 지니고 있어 광고를 보자마자 반하고 말았지요.

<컴퓨서브>에 가자마자 애플의 이 노트북을 찾습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출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미끈하게 디자인된 티타늄 몸체, 15인치 와이드 스크린, 슬라이딩 DVD, 황홀한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한마디로 쿨한 놈임에 틀림 없습니다. 게다가 가격마저 많이 내려 제가 생각한 예산 안에 들어오는군요.

노트북을 곰곰히 바라보며 마지막 고민을 합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만한 놈은 없습니다. 덩치가 생각보다 조금 큰 것이 맘에 걸리지만 눈부신 성능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저는 정신을 차립니다. 이 놈의 미끈한 디자인에 반해 치명적인 결점 하나를 잊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노트북이 바로 <매킨토시>라는 것입니다.

IBM PC가 지배하는 '메인스트림' 컴퓨터 세상에서 <매킨토시>는 소수 인종입니다. 뛰어난 멀티미디어 기능과 섹시한 디자인이 빛을 잃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매킨토시>를 구입해 주류 PC 세상과 등을 지면 저 역시 소수파로 전락할까 두려움이 몰려 옵니다. 주류 PC 환경이 제공하는 수 많은 응용 프로그램과 공짜 소프트웨어에서 왕따당하고 소외될까 겁이 납니다.

흔들리는 제게 점원이 조언합니다. <버츄얼 PC>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매킨토시를 PC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말 PC처럼 완벽하게 작동되지는 않고 아직 버그가 많다고 덧붙입니다.

애플의 매킨토시는 지금은 모두들 당연하게 여기는 GUI 개념을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에 도입한 제품입니다. 당시 DOS 체제를 졸업하지 못하던 마이크로 소프트가 이것을 본따 만든 운영체제가 바로 <윈도>입니다. 결국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에 기반한 PC가 출발은 늦었지만 강력한 마케팅과 수많은 IBM 클론 PC의 보급에 힘입어 뒤떨어지는 기능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세계의 주류로 등극합니다.

반면에 애플은 알짜 돈을 챙기는 재미에 푹 빠져 구두쇠처럼 독점 생산을 고집하다 결국 컴퓨터 세상의 만년 비주류로 전락해 버립니다. 애플은 뒤늦게 클론 매킨토시의 생산을 허락하며 절치부심했지만 이미 주류로 굳어버린 PC의 독주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래픽과 멀티미디어에 강했던 매킨토시는 디자이너와 음악가의 사랑을 받는 예술가의 컴퓨터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갑니다. 왼손잡이와 우뇌형 인간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매킨토시는 광고와 출판, 영화와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만큼은 굳건하게 주류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반면에 PC는 워드프로세서와 엑셀 등 사무용 프로그램의 강세에 힘입어 기업의 업무용 컴퓨터로 자리잡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는 제 손에는 IBM의 노트북 <씽크패드>가 들려 있습니다. 제 머리 속의 좌뇌와 우뇌가 제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치열한 드잡이를 벌였지만 결국 좌뇌형 PC들이 주름잡는 '메인스트림'에 편입하지 못하면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좌뇌의 협박에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다행히도 예쁘장한 반투명 디자인의 iMac 컴퓨터와 제가 막판까지 구입을 망설인 <파워북 G4>의 선전에 힘입어 애플사는 실리콘밸리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이 개인용 컴퓨터의 중심 기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IBM PC니 매킨토시니 하는 운영체제의 위세 역시 점점 그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도 고무적입니다.

저는 매킨토시가 언젠가 잃었던 입지를 되찾아 좌뇌와 우뇌가 절반씩 균형을 이루는 좀더 다양한 컴퓨터 세상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치경제의 권력을 잡고 호령하는 좌뇌형 인간으로 가득한 한국의 '메인스트림' 사회에도 <매킨토시>형 우뇌 인간들의 용감한 반란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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