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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는 시간의 베이징역은 장거리행 기차가 유난히 많다. 보통 하루 넘어 걸리는 노선이 허다하니 밤부터 시작해 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베이징역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 있는 네이멍구(內蒙古)행 열차는 그래선지 각각 밤 8시와 9시 20분에 있다.

나에게 살아가면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대라면 나는 서슴없이 아름다운 바다와 사막을 댄다. 아름다운 바다에서는 삶의 피안(彼岸)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면, 사막에서는 내 삶의 극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몽고의 초원과 사막에서 그 극단을 만나고자하는 막연한 희망은 이미 서서히 실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와 이 생을 같이 할 아내와 종자기(種子期) 같은 나의 친구가 있다. 내가 거문고를 켜면 그 소리의 깊이를 알아주고, 그 친구가 시를 짓는다면 알아줄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이 길에 중국인들의 오랜 민간문화를 알 수 있는 책인 '중국풍속기행'을 동행했다.

책의 문장은 사막처럼 건조했다. 하지만 사막 역시 우리의 중요한 삶의 현장이 아니던가. 책은 산시, 깐수 등 14개 성의 주요 풍속을 소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많은 풍속 가운데 유독 사막의 이야기가 눈과 마음 속에 들어왔다.

형식으로만 바뀌는 민족 문화

기차에 올라타자 이국의 언어로 수다를 떨며, 여행을 계획하는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앞 칸의 아이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인다. 이미 얼굴에서 흔히 보는 한족의 모습보다는 우리와 더 흡사한 골상의 몽고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선지 마음이 편하다.

아이는 이미 호기심이 있어선지 즐겁게 대답한다. 베이징에서 영어로 관광가이드를 한다는 아이의 엄마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한족 여자 아이도 같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예상대로 아이는 몽고족이다. 똑똑하고 야무진 모습은 우리 어린이들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

사막의 골짜기로 난 물길과 철길 - 사막의 큰 물길은 물 뿐만 아니라 철도의 한 길이 됐다.ⓒ 2001 조창완
열차의 종착역인 네이멍구의 수도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도 3시간 가량 차를 타고 들어가는 바오토우(包頭)에 사는 열한살의 소년 까오위안(高圓)은 베이징에서 일하는 아빠, 엄마와 떨어져 바오토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며, 학교에 다닌다. 아이와 엄마는 간간히 우회적으로 묻는 내 질문에 징키즈칸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미 중국문화에 깊숙이 침윤된 까오는 몽고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의 전반에서 중국과 더 깊은 선을 닿아 있다. 오히려 동생벌인 까오를 귀엽게 생각하고 말을 붙이는 당찬 한족 소녀는 학교에서 몽고 전통 춤을 배운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쿤밍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만나는 소수민족들의 위상은 모두가 이렇게 박제화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중국풍속기행'은 중국의 저명한 민속학자인 저자 치우환싱(丘桓興)이 발로 뛰고, 경험하여 얻어지는 민속을 기록한 책이다. 때로는 미신과 전통과 인습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혼돈이 드러나지만 근본적으로 저자는 민속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사회주의를 수용한 중국에서 전통문화란 어찌 보면 박제화된 문화일 수 있다.

특히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역사를 거친 후라면 그 충격은 더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민속학회 회원인 저자 치우는 민속이 살아 있는 현장이라면 불원천리하고 찾아가서 탐문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서 기록한다. 중국에서 생활하면 흔히 만나는 각종 민간문화의 근원을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민간문화의 근본이 신비한 이야기와 해학이라는 룰은 중국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잘 읽어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재미다.

칭키즈칸을 만든 아오포

눈을 뜨니 사람들이 모두 분주하게 짐을 챙기고 있다. 종착역인 후허하오터에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차에서 내리니 우리는 맞으러온 여행사의 직원들이 몽고족들이 손님을 맞는 의식을 치러준다. 파란천을 방문객의 목에 걸어주며, 몽고족 전통의 노래를 부른다. 파란하늘을 상징하는 물건이자 몽고어로 후허하오터란 이 도시의 이름의 파란도시(靑城)라는 뜻을 생각하면 그다지 낯설지 않다. 또 샤먼들의 읊조림 같은 환영노래도 듣기가 나쁘지 않다.

네이멍구의 수도라지만 그다지 번화하지 않은 후허하오터는 해발 1천미터에 달하는 곳에 펼쳐진 허타오평원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다. 신장위구르, 티베트가 있는 시장에 이어 세 번째로 면적이 넓은 지역이자 최초의 자치구인 네이멍구는 63만7천평방킬로미터의 비교적 적은 인구가 사는 도시지만 무한한 자원개발 가능성이 있는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한 주요한 거점도시다.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6명의 한국인과 4명의 일본인 또 4명의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여행사의 버스는 곧 시내를 벗어나 북쪽을 향해 달린다. 차는 막 홍수가 지나가 황폐한 비포장길을 지나 따칭산(大靑山)에 접어든다. 따칭산은 이 도시의 북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인산산맥(陰山山脈)이 후허하오터와 접경한 지역으로 다시 천미터 가량을 올라간 해발 2천미터 가량의 고산지대다.

원래의 본분을 잃은 낙타들 - 이들은 사막을 헤치는 것을 잃고, 여행자를 태우는 일을 하고 있다.ⓒ2001 조창완
차는 과거 중국 공산화 이전부터 소비에트가 형성된 우추안(武川)을 지나 우리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북부초원 관광지역 중에 하나인 '씨라무런(希拉穆仁)초원 여유구'에 도착했다. 씨라무런은 다른 관광지역과 마찬가지로 말을 타는 것을 포함한 관광상품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몽고식 건축인 둥그런 형식의 천으로 된 숙소 파오에 여장을 푼 여행객들은 말을 타고, 간단한 몽고의 전통놀이들을 보고, 몽고식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통 하루의 여정을 보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업적인 색채의 상품으로 바뀌고 난 뒤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 광활한 초원과(그마저도 서서히 점령당하고 있다) 하늘을 맞닿은 듯한 하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통으로 남아있는 그나마의 흔적인 아오포(敖包)를 찾기 위해 우리는 초원의 한쪽을 향했다.

10분여만에 우리는 멀리서 보이는 아오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대중으로 봐도 아오포와의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초원의 사당과 같은 아오포는 몽고의 전통적인 오락, 유희인 나다무(那達慕)와 더불어 현재 남아있는 가장 전통문물의 하나다.

눈에 보이는 아오포를 반시간여 동안 걸어서 도착했다. 아오포는 한국의 돌무더기 서낭당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돌덩어리로 쌓여진 제단이다. 아오포의 유래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몽고의 한 지방인 어웬커(鄂溫克)에 한을 품고 죽은 소녀가 온갖 재앙을 불러내어 마을민들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사만티아오(薩滿跳)신에게 도움을 청하자 신은 소녀의 혼을 불러 불태운 후 사람들에게 주문을 외게 함으로써 소녀 귀신의 한을 달랬다.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라는 주문과 함께 하는 제사에는 아오포를 쌓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소녀의 뼈를 곱게 갈아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묻고 그 위에 돌산을 쌓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모두 그 위에 돌을 높고, 재앙을 피하고, 복이 오기를 기원한다.

매년 몽고의 부족들은 여름인 5월하순부터 6월 상순까지(부족에 따라 7, 8월에 행사를 여는 곳도 있다) 아오포의 주변에 파오를 치고 말타기, 활쏘기, 씨름 등 용맹을 시험할 수 있는 경기를 벌이는 등 종합축제를 벌인다. 춤은 물론이고 노래 경연 등이 있는 이 행사는 축제는 물론 멀리 떨어진 몽고인들이 단합을 확인하고, 부족한 물건을 나누는 시장의 역할을 한 셈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상시에 아오포는 유목민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가장 높은 지역에 다시 돌무더기로 쌓은 아오포는 사방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곳에 형성되어 초원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등대역할을 한다.

치우환싱은 칭기즈칸의 기마병들이 길의 표지인 아오포의 도움을 받아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종횡무진 누볐고, 이 때문에 장수와 졸병들은 출정에 앞서 반드시 아오포에 제사를 드렸다고 적는다.

초원에서 별을 보다

양고기를 중심으로 요리하는 몽고식 저녁에서 우리는 손님을 반기는 술잔을 한잔씩 받았다. 금잔이나 뿔잔 대신에 은잔에 술잔은 받고, 앞에서 행했던 이들을 따라 하늘과 땅과 내 이마에 술을 뿌린 후 잔을 들이켰다. 70도의 술이라는 말과는 달리 40도밖에 되지 않은 술이어서 실망이 많았지만 술을 잘 하지 않는 아내의 잔까지 챙김으로써 기분을 낸다.

밤에 기대했던 몽고의 전통춤은 한 소녀의 춤사위를 잠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음악은 전통음악에서 곧 경쾌한 팝음악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춤은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격렬한 동작으로 무엇인가를 털어내고 있었다. 무리에서 나와 하늘을 봤다. 너무나 선명히 떠오른 보름달 때문에 하늘에서 원한을 갖고 죽은 소녀의 별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막의 등대인 아오포 - 아오포로 길을 찾은 칭키즈칸은 세계의 정복자가 됐다.ⓒ2001 조창완
30도까지 오르는 낮기온과 달리 초원의 밤은 10도까지 떨어지는 차가운 날씨다. 하지만 바람소리 들리는 파오 속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면서 내일의 일출을 기대해 본다. 이미 고도 2천미터에 달하는 산지대이자 초원의 중앙에서 급격히 떨어진 새벽기온으로 인해 적잖이 추운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덕이 모자라서려니 하고, 다음 여정을 기대한다.

버스는 초원을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호허하오터를 들른 후 다시 기차에서 만난 소년 까오가 사는 바오토우를 지나 오후 3시경에 황허(黃河)대교에 잠시 들른다. 5시간 여 동안 길을 지키고 있는 인산산맥의 줄기와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영화 '해바라기'의 슬픈 정념을 느끼게하는 긴 해바라기 밖만이 우리에게 눈짓한다. 5460Km에 달하는 긴 물줄기인 황허의 한 줄기가 지나가는 대교는 누런 물이 누런 강(黃河)임을 증명할 뿐이다.

저자는 허난성(河南省)의 부분에서 중국민족이 황허와 갈등속에서 공존해야했던 역사를 소개한다. 2천년 동안 1500번이나 범람했던 이 강을 달래기 위해 이곳의 사람들은 버드나무 가지 더미에 돌덩이를 채우고 철사를 묶은 '유석침'(柳石枕)의 사용 등은 물론이고 닻을 내리는 방식으로 배를 진행시키는 독특한 방식 등 재미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재앙은 당연히 미신이라고 치부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의 문화를 탄생시킨다. 황허는 당연히 이런 유산을 수없이 만들어냈다. 경우에 따라 폐기된 문화도 있지만, 긴 시간 동안 강은 인간과 공존하며, 많은 화해의 제스춰를 보냈었다.

낙타는 울 기회를 잃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 차는 쿠푸지(庫布齊)사막의 서쪽 시작의 한 축인 시앙사완(響沙灣)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차에서 내려 300미터 가량의 마른 강을 리프트를 타고 건너면 사막을 만날 수 있다. 사방 몇 백미터 안에서 낙타를 타고, 모래스키를 타는 사막이지만 모래 밖에 보이지 않는 일망무제의 사막은 여행자에 따라 목울대를 치밀게 하는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가끔은 삶의 곳곳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 그 사막의 초입에는 초원에서 말의 역할을 낙타들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긴 목과 젖은 듯한 눈을 가진 낙타들. 치우환싱은 낙타와 인간들의 조화를 자연과 응전해야만 했던 사막인들의 역사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네이멍구 초원의 말들ⓒ 2001 조창완
사막지대의 거주자들에게 낙타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절대적인 악조건 속에서 낙타를 보호하기 위해 낙타의 식생활을 조절하는 방식, 사막 여행 중에 휴식하는 방식, 풀을 먹게 하는 방식, 낙타의 발굽을 손상시키는 돌을 피하기 위한 방법들을 잘 취재해 알려준다.

하지만 시왕사완의 낙타는 낙타들은 먼 길을 떠나본 기억이 까마득한 낙타들로 보인다. 그들 역시 현대적인 교통수단에 밀려 박제화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거대한 눈망울을 가진 낙타의 망막에 사막 깊은 곳의 모래바람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바오토우에서 하루를 머문 우리는 다음날 오후에야 다시 후허하오터에 닿았다. 느슨하게 일정을 잡으려는 여행사의 의도가 뻔한 길은 패키지 여행은 피하고 보라는 내 여행수칙의 필요성을 재삼 확인시킨다. 후허하오터에서 들를 수 있는 곳은 따사오(大召)와 우타쓰(五塔寺)에 지나지 않는다.

따사오에서 만나는 큰 인물은 중국을 대국으로 만든 또 다른 신화 강희제다. 400년 된 은불이 안치된 이곳에서 안내인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강희제가 이곳에 들러서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물론 강희제에 앞서 몽고인들의 심중에 있는 가장 큰 영웅 징키즈칸이 있다.

세계에 동방의 존재를 알렸던 징키즈칸과 원(元 1279~1368)나라를 세운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은 이미 변화의 동력을 상실해가는 몽고인들의 가슴 속에서 가장 큰 존재다. 순제를 마지막으로 명(明)나라에 망한 몽고족들은 다시 고비사막을 중심으로한 대초원으로 쫓겨났고, 계인 청(淸)나라가 중국대륙을 장악한 후 1616년에 몽고도 청의 속국이 된다.

1685년 청군의 알바진 공격을 시작으로 진행된 러시아와 청나라의 대결은 강희제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외교협상의 결과인 네르친스크 조약(1689)으로 마무리되고, 이후에 강희제는 외몽골까지 합병시켜 몽고를 지배했다. 이후에도 준가얼부(準 爾部 몽골4부의 하나)의 반란이 있었지만 몽고는 중국의 역사를 타고, 시대를 넘어왔다.

근대에 몽고는 러시아, 중국의 사이에서 혼돈을 경험한 후 사실상 국토 분할인 내몽구와 외몽구의 분할을 거친 후 지금은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갖고 있는 외몽구와 인구수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중국화된 내몽고로 분할됐다.

네이멍구 바이토우를 지나는 황허의 모습ⓒ2001 조창완
따사오를 나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타쓰에 들른다. 이곳에는 사막과 하늘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이들답게 고도로 발달한 몽고인들의 천문학 수준을 살필 수 있다. 대도시라서 절이 있지만 몽고인들의 신앙은 샤머니즘이 50%에 달할 만큼 정령숭배가 일반적이다. 징키즈칸시대부터 샤먼은 중요한 조언자였고, 몽고인들은 텡게르(TENGER)라는 유일신을 그들의 믿음에 중앙에 둔다. 세계 최대 강국이었던 징키즈칸을 회상하며, 몽고인들은 다시 한번 그런 영웅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밤 8시 다시 우리는 후허하오터역에 섰다. 3일간의 초원과 사막의 먼지에 시달렸지만 그다지들 피곤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중국, 일본이라는 국가에 구애받지 않고, 정겹게 어울렸던 이들은 각기의 열차에 몸을 싣는다.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는 바오토우의 양고기 구이집에서 나에게 낭송해주던 시를 보내왔다.

"사막에서 발자국을/ 남기지 마라 / 결대로 가고 /결대로 묻혀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 /등이 휘어져 봉우리가 되고 /그래도 가야 한다면 /결대로 가고 /결대로 묻혀야 할 것이다. // 바람에 날리고 씻기고 /모래로 남는 /사막의 결 /그 선에 서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결 /그 선에서 /불러본다 /낙타는 황혼으로 가고 오지 않는다 /너와 나는 마지막이다." (사막에서의 이별, 이복규(거제고 교사))

책은 중국 16개 성의 각 지역에서 만나는 독특한 보고서다. 푸젠성(福建省)의 차와 관련된 민속, 고양이, 쥐, 거북 등에 상관없이 재료로 활용하는 음식문화가 풍성성 광둥성(廣東省), 한국과 비슷한 온돌문화를 가진 산시성(陝西省), 내륙의 전병문화와 바닷가의 전통을 가진 산둥성(山東省), 자수 문화가 태동한 지앙쑤성(江蘇省) 등 중국 각지의 독특한 문화가 소개된다.

특히 백두산이 접경해 유달리 정감있는 지린성(吉林省)의 문화소개는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 백두산 심마니들의 풍속은 산삼을 찾는 그들의 작업처럼 흥미롭다. 산삼의 씨를 먹고 자라는 봉추조의 전설과 역할, 호랑이를 절대 잡지 않는 다는 사냥 습관 등의 소개는 흥미를 준다. 100여 지역을 답사한 후에 만들어진 이 책은 흥미로운 기록들의 연속이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중국풍속기행, 발품으로 얻는 문화 보고서

이 책의 뿌리는 '인민중국'이라는 잡지다. 영어, 일본어 등으로 중국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이 잡지에 저자 치우환싱은 각 지역의 민속을 탐방한 후 30여편의 탐방기를 실었고, 이 책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풍부한 현대의 민속자료를 제공하고, 자료를 과학적으로 검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고증이라는 면에서도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필자가 학자이기보다는 저널리스트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한국에는 산시 사범대 문학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있는 남종진 씨가 2000년 8월에 번역출간(프리미엄북스 간) 했다. 원문의 딱딱함도 이유가 됐겠지만 문장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은 것도 흠이다. 또 중국어의 표기에 있어서 평음발음식이 아니라 한자독음식을 택한 것도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책은 중국의 전지역을 다니지만 잡지의 성격 때문인지 민족문화에 대한 경계가 거의 없다. 즉 몽고족, 윈난의 소수민족, 지린의 조선족 문화 등이 전혀 구별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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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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