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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k Hop? 양말이 춤 추냐고? 양말이 춤 추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목이 긴 하얀 양말을 접어 신고 학교 체육관에 모여 댄스 파티를 하는 거야.

50년대에 미국에서는 그렇게 했다네. 일 년에 한 번씩 온 동네 사람들이 동네 학교에 모여 댄스 파티를 열었대. 여자들은 푸들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 푸들 스커트를 입고 스카프로 머리를 묶고. 아니면 청바지에 앞이 터진 하얀 셔츠를 입지. 50년대에 유행했던 옷을 입는 거야.

남자들은 기름을 발라 머리를 뒤로 넘기고(slick back) 어떤 녀석들은 코밑에 귀여운 수염을 그려 넣기도 해. 그리고는 모두 학교 체육관 마루 바닥에 신발을 벗어놓고는(어떤 이들은 신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거지. 아주 신나게(어린아이들은 부끄럽게) 말이야.

50년대를 그리워하는 중년세대가 많은 건지 짧은 미국 역사에서 전통을 찾으려는 몸부림인지 여기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체육시간에 틈틈이 아이들이 'Sock Hop'에서 함께 출 수 있는 간단한 춤동작들을 배운다. 닭 날개 짓을 흉내낸 치킨 댄스라든가 혹은 림보(Limbo) 댄스 같은 거. 그리고 학교에 따라 일 년에 한번씩 'Sock Hop'이라는 이벤트를 열어.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몇 년 전부터 매해 'Sock Hop'을 해. 아마 이게 일년 중 가장 큰 학교 행사인 것 같아. 드디어 'Sock Hop'날은 오고 설레는 아이들은 킨더 가든 코흘리개들부터 아이들과 같이 온 동네 언니 오빠들, 그리고 엄마, 아빠, 선생님, 할머니, 할아버지 어떤 부모들은 친구들까지 초대해 그야말로 온 동네 잔치다.

left cross one, two, three.
right cross one, two, three...

학교 복도와 천장에는 온통 LP레코드판과 엘비스 프레슬리로 장식을 하고 'Sock Hop'이 다가올수록 설레던 아이들은 배가 불룩한 40대 아버지 디스크 자키가 틀어주는 노래에 맞추어 모두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The Hustle, Freeway of Love, Let's Twist Again, Boot Scootin Boogie, Mexican Hat Dance, Surfin USA, YMCA...

음악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치킨 댄스에서 림보댄스로 트위스트에서 디스코로 50년대에서 70년대를 넘나든다. 치킨댄스와 림보댄스 뮤직이 나오면 킨더 아이들도 한몫 단단히 끼지. 가끔씩 '호키포키' 음악이 나오면 서너 살 짜리 동생들도 같이 놀 수 있고.

미국에서 났어도 미국 문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힘든 한국 아이들은 쭈삣쭈삣 몸을 사리고. 그러기는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 "Go and enjoy it!" 엄마의 격려 몇 번과 친한 친구들 얼굴이 하나 둘 보이자 곧 들어가 어울린다.

더러 자기 자식들의 파트너가 되어서 춤에 열중하는 부모들을 '보기만'하며 나는 거기서 2C를 생각했어.

"Celebration"과 "Community"

여기 학교는 참 재밌다.
우리 아이들 입에서 이때껏 한번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
나도 3학년 때쯤에는 학교 가기 싫어서 아침에 배아프다고 꾀병했던 기억이 한번 쯤은 있는 것 같은데 말야.
학교가 즐거운 이유 중 우리 큰애가 꼽는 첫 번째가 "Celebration"이다.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기념하는 게 제일 재밌대. 여기서 축하하고 기념한다는 "Celebrate"는 내가 한국에서 했듯이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모여 기념식을 하고 훈시를 받는 그런 종류의 기념이 아니라 "Enjoy"의 뜻이 더 강하다. 그 날을 정말 즐기고 생활화한다는 의미 말야.

발렌타인 데이,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이스터 데이, 할로윈 데이, 인디펜던스 데이, 메모리얼 데이, 프레지던트 데이, 땡스 기빙 데이, 크리스마스 데이, 아무튼 일년 내내 여기 초등학교에서는 무슨 국경일과 기념일 그리고 명절 등을 때마다 기념한다.

어떻게 기념하냐면 파티를 열거나 그 날과 관련된 소재나 주제를 갖고 만들기, 글짓기 등의 교육활동(activity)을 하는데 중요한 건 그걸 즐기면서 배우고 생활화한다는 거다. 심지어는 좀 무거운 마틴 루터 킹 데이를 맞아 그 주간엔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책을 교재로 택하고 부모들 중에 인종차별에 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을 초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마틴 루터 킹이 연설했던 "I have a dream"을 주제로 세계와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한 꿈을 쓰게 하더라.

얼마 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는 닥터 수스의 생일을 기념해 반에서 피자 파티를 열고 그이의 책을 읽는 활동을 하더군. 그러니 학교가 재밌지 않겠니.
참, 이번주 금요일은 두 아이 모두 오전 중에 학급에서 스프링 파티가 있다. 봄을 기념하는 거지.

한국에선 얼마 전에 3.1절이 지났겠지.
문득 지금 한국 초등학교에선 어떻게 3.1절을 기념할까가 궁금해지네. 그래서 여기 온 지 얼마 안된 아이에게 물었어. 어떻게 하느냐고. 그랬더니 자기 학교에선 한 번도 안 했대. 그리고 하는 말이 "반장이 되면 반장 엄마가 아이스크림 같은 거 갖고 와서 돌려먹으며 파티를 해요"라고 말한다. 참고로 이 학교에는 반장은 없다.

사립도 아니고 공립 초등학교인데 왜 3.1절 기념을 안 할까?
여기 초등학교에서 3.1절 기념식을 한다면 이렇게 할 것 같애. 유관순 열사가 입었던 옷차림으로 학교에 오라고 하던가. 태극기 무늬를 넣은 종이 옷을 만들어 입는다든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 만세를 외칠 수 있다면 어떤 이유로 만세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의 글짓기를 한다던가. 뭐 그런 식일 것 같다.

참, Sock Hop 얘길 하는 중이었지?
Sock Hop도 마찬가지. 얘네들은 참 재밌게 50년대를 기념한다.

Sock Hop을 보면서 생각한 두 번째 C는 'Community"야.
이 학교와 지역사회는 따로 따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지역사회의 중심에 학교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어. 학교 행사에 동네 아줌마 아저씨가 초대되고 언니 오빠들이 따라와 춤을 추거든. 이 학교가 신생학교가 아니라 전통을 갖고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평상시에도 보면 지역사회와 학교가 잘 맞물려 돌아간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수시로 모집하는 불우이웃돕기, 선물보내기 등이 지역 병원과 지역 단체에 보내지고 지역에서 하는 축제 행사에 학교 학생들이 참가하기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말이지.

이번에 Sock Hop을 준비하는데도 지역사회에서 50여 개 단체와 사업체들이 후원을 했대. 물론 후원 상품이나 내용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개 초등학교 행사인데 말이지.
지역사회 후원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이걸 준비한 학부모들이 열심히 뛰었다는 소리기도 하겠지. 2백 명이 넘는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를 했다니까.

여섯시부터 시작해서 열시까지 하는 'Sock Hop'
여덟시 밖에 안 됐는데, 나는 보기만 했는데 벌써 지쳤다.
땀에 젖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내년엔 보지만 말고 나도 들어가 팔을 벌려 YMCA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디스코와 트위스트 그리고 남미 춤과 림보 춤 속에 한국의 소고춤도 같이 어울려 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기 한국 '커뮤니티'도 점점 커지는데, 솔직히 옛날 학교에서 운동회 할 때 매스게임으로 배우던 소고춤의 기억이라도 되살려 한국춤은 이렇게 '셀러브레이트' 한다고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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