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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의 죽음이 온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하였지만, 정작 '살아 있는 이들'의 집회에 관심을 가져 주는 이는 없었다.

22일은 구조조정기금 이사회가 은행연합회 회관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이 이사회에서는 현대에 대한 공적 자금 7000억원에 대한 심의가 주된 논의 의제였다. 현대생명 노동조합은 이 이사회에서 논의 되고 있는 현대생명의 청산과 대한생명으로의 계약 이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3명의 대표자를 파견해 잘못된 자료에 대해 소명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면서 문서만을 접수하고 대표들은 돌아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때 명동성당에서는 300여 명의 노조원들이 별도의 집회를 열고 있었다.

현대생명은 이미 영업이익을 내고 있고 손실분에 대해 한 번의 지원만 있으면 적자가 완전히 해소가 되는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현대생명을 먼저 퇴출시키고 이후에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이사회의 태도에 노조원들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은행연합회 회관 앞에서는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이사회에 항의하기 위한 1인 시위가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위는 현대생명 노동조합 자료수집부장 우남식(32) 씨가 참가하였다.

우씨는 역시 2000명의 내근 직원을 700명으로 줄이는 노력을 했지만 정부에서는 무조건 퇴출을 요구한다며 나머지 직원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3시 30분쯤 3인의 대표자들이 나와 소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단지 문서만을 공식으로 접수했다는 대표단의 발언을 듣고 일단 명동성당과의 집회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해산을 결정하였다.

은행연합회관 앞에서 오후 4시 30분경 경찰의 봉쇄가 풀어진 틈을 타 10명의 조합원이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막혔다. 오후 4시 40분경 150여명의 남자 노조원들이 두 곳에서 진입을 시도했다.

은행연합회관 앞에서 중부경찰서는 방패와 방석모로만 무장한 전경 150여명으로 진압을 시도했으나 비슷한 숫자로 인해 쉽게 밀어 내지 못하고 있다가 2차 진입을 시도하는 노조원들에게 지위부의 명령과는 달리 일부 전경들이 방패로 찍는 등 과격한 대응을 해서 몇몇 노조원들의 이마와 머리 부분이 찢어지기도 했고 몸싸움 도중 대열 뒤쪽으로 경찰 간부가 돌아 나와 여성노동자의 팔을 끌어 대열에서 이탈시키는 등의 행동으로 노조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또한 철수하겠다고 하는 노동자들을 전경 여러 명이 달려들어 끌어내는 등 과격한 반응으로 일관하였다. 이 과정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를 방패로 막아서고 카메라를 후려쳐서 촬영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대열 뒤쪽에 있던 노동자들 몇 명이 연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말리던 여성 노조원들이 울음을 터뜨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노조원들의 진입시도는 1시간 뒤인 5시 30분까지 계속 되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노조원들은 지도부의 철수 명령으로 명동성당에서 재집결한 뒤, 현대 사옥으로 옮겨 정리집회를 하였다.

중부경찰서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공보관을 불러줄 것을 수십 차례 요청했으나 서장이 직접 지위하고 있었던 자리에 있는 간부들은 모두 알지 못한다며 피하기에 급급했고 방송을 통해서 "허가 받지 않은 집회는 불법임으로 전원 연행 하겠다"라는 발언을 계속하며 해산을 종용하여 흥분한 일부 노조원들에게 "뒤에서 떠들지 말고 나와서 붙어 보자"라는 등 폭언과 욕설을 듣기도 했다.

한편 취재를 위해 사진 촬영을 하는 기자를 경찰로 오해한 노조원들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실어주지도 않을 거 왜 맨날 와서 찍어 가느냐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땅의 노동자들 편은 아무도 없다라는 나이든 노조원의 한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날 현장에는 다른 언론사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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