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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며 기원해 본 적이 있습니까.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올 한해의 풍년을, 내 몸의 건강을, 연인과 변치 않을 사랑을 간절히 기원해본 적이 있습니까.

오는 4월 한국의 매향리와 중국 상하이, 일본의 히로시마 등 26개 지역, 미국 하와이, 오키나와 등지에서 보름달을 보며 기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생명의 순환과 에너지의 상징으로 알려진 달을 보며, 미군 기지로 인해 고통받아 온 주민들이 평화와 인권과 환경 상황들이 나아지길 염원하는 기원제를 벌이며, 한판 축제를 엽니다.

‘동아시아 평화, 인권, 환경을 생각하는 제3회 보름달 축제’로 불리는 이번 행사는 한국에서는 ‘매향리로의 초대, 달빛 아래 평화만들기’란 이름으로 펼쳐집니다.

이와 관련한 기사를 앞으로 세 번에 걸쳐 다룰 계획입니다. 미약하나마 이 기사를 통해 평화와 환경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주, 어느 평화운동가로부터 두 장의 홍보물을 받았다. 바다동물인 주공의 사진이 담긴 한 장의 광고전단은 오키나와의 환경단체가 제작한 것이고, 크고 둥근 노란 달이 한눈에 들어오는 포스터는 이번 매향리 보름달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다. 각각 오키나와와 한국에서 만들어진 두 홍보전단은 이번 보름달 축제의 의미를 적절하게 해석해 주고 있다.

하트 모양의 심장을 가진 바다동물 주공

주공. 흡사 고래처럼 보이는 바다 동물인 주공은 세계적인 보호동물이자 일본의 천연기념물이다. 주공은 심장이 하트모양이고,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육식은 하지 않고 해초만 먹고산다. 또한 겁이 많은 편이며 소란스러운 것을 무척 싫어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오키나와에서는 주공이 과거에 인어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을 정도로, 귀한 동물이기도 하다. 현재 주공은 전세계적으로 몇 군데밖에 살고 있지 않은데, 오키나와 북부지역인 나고시 앞바다에도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일-미 양 정부는 나고시에 미군해병대의 해상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주공이 살던 바다에 시멘트 기둥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고시 앞바다에는 주공이 살 수 없을 뿐더러, 바다에 의존해 생계를 꾸려가는 나고시 주민들 역시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

이 광고전단은 이런 상황에서 주공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환경단체인 주공보호기금이 주민들에게 시와 노래를 공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단체는 주공의 바다와 희귀새인 노구치게라가 살고 있는 얌바루 삼림 생태계를 보호하고, 자연과의 공생사상을 넓혀 평화와 자립을 위한 21세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공보호기금은 오는 4월 8일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평화, 인권, 환경을 생각하는 제3회 보름달 축제’에 참여한다.

달을 보며 평화를 기원하자

보름달 축제는 오키나와에서 99년도에 시작되었지만, 그 계기는 95년 주일 미군병사의 여자국교생 성폭행 사건에 항의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대규모 집회다. 이 집회는 오키나와 130만명 인구 중 8만5천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큰 집회였는데, 이 현민대회가 끝나고 한 평화 운동가는 그곳에 모였던 8만 5천명의 사람들의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평화를 사랑하는 8만 5천명의 마음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집회가 아니더라도 미군기지로부터 고통받는 일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보름달을 보며 깨달았다. 예로부터 동양인들에게 보름달은 생명의 순환, 평화, 생산활동, 에너지 등을 상징했고, 이에 보름달은 안녕과 풍요를 비는 기원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보름달 아래 모여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축제 같은 모임을 갖고 달을 향해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모아내자.’
그것이 보름달 축제를 시작하게 된 마음이었다.

보름달 축제는 1999년 12월, 2000년 7월에 개최되었고, 오는 4월 7일(오키나와 등은 8일)에 세 번째로 열린다. 보름달 축제는 아시아적 운동관점으로, 생명의 순환과 기도를 제안하며, 인권과 평화와 환경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염원한다.

‘호미만 있으면 산다’했던 매향리

보름달 축제는 이제 바다를 건너 매향리에서도 이뤄진다.
1951년 한국전쟁과 동시에 실탄사격장 쿠니기지가 건설된 이후, 50여 년간 미공군 실탄 훈련연습이 진행되는 매향리에도 평화롭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폭격으로 인해 매향리 남쪽에 흔적만 남은 구비섬. 미군의 폭격연습장이 되기 이전에, 그곳은 소나무가 울창해 할머니들이 땔감을 하러 드나들던 곳이었다. 간혹 바다새알을 주우면 계란 대신 쪄 먹기도 했다. 또한 당시 주민들은 ‘호미만 있으면 산다’고 말할 정도로 주변 바닷가에 굴이나 조개 등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이 있었다.

아울러 매향리 주민들도 달을 보며 기원하던 풍습이 있었다. 안녕과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던 삶이 있었다.

‘매향리로의 초대, 달빛 아래 평화만들기’라는 제목이 붙은 이 포스터는 매향리에서 열리는 보름달 축제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당일 펼쳐지는 행사로는 정월 대보름 풍습인 달집태우기가 있다.

미군의 폭격훈련과 기지로 인해 고통받은 매향리 주민들이 이 달집 태우기 놀이에 부담없이 참여해, 구호나 선언이 아닌 그들의 언어로 미군기지가 주는 폐해를 말할 것이다. 부녀회도 참여하고 동네 아이들도 노래를 부른다. 광대패 모두골,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 소리타래 등도 출연한다.

이 축제를 통해 주민들은 다시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예전에 이처럼 즐겁게 지냈던 우리의 평화를 지금은 누가 왜 빼앗아 갔는가!’’ 그 평화를 되찾기 위해, 그런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쟁보다 큰 환경 파괴 행위는 없다”

매향리 보름달 축제 포스터에는 새끼를 업은 주공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보름달 축제가 열리는 오키나와 주민들과 매향리 주민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미군지기로 인해 고통 받는 주민들이 자신의 평화염원을 나누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연대이다. 곧 평화를 원하는 동아시아 주민들이 보름달처럼 하나로 크게 뭉치는 일이다.

보름달 축제는 흥미롭게도 집회나 국민대회 등 익숙한 이름대신 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애초 보름달 축제를 제안했던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다카에스 아야노의 말을 음미해볼 만하다.

그는 ‘평화란 모든 인간이 사랑과 창조력이 충만해져서 기쁘게 지낼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면서, 우리들이 마음으로 그런 평화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는 기존 선언 중심의 집회 방식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고통받는 이들이 평화로운 상태를 ‘느껴봄’으로써 평화로움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름달 축제는 그 내용면으로 보아도 새로운 성격의 운동이다.
이 두 장의 광고전단은 보름달 축제의 의미를 잘 그려내고 있다. 주공을 보호하려는 환경단체가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번 축제는 국내 운동진영에서 평화와 인권, 환경이 결국은 한 길에 있음을 다시 생각하는 행사가 될 것이다.

이번 행사는 준비하는 집행위원장 정유진은 “미군기지는 만성적인 환경오염원이며, 또한 전쟁보다 큰 환경 파괴 행위는 없다”며 “매향리야말로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미군 훈련으로 고통 받고 살아온 매향리 주민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운동이 집약되어야 해결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이번 축제에 참여하는 단체들은 평화운동에 대해 다시 새롭게 고민하고 있다.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 갈 것인지를. 이는 보름달 축제에 참여하는 10여개 단체가 지난 석 달간 고민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주공을 살리자는 주공보호기금의 광고전단에는 ‘더불어 산다’는 제목 아래 시인 다카에스 아사오가 쓴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지 주공전단에만 어울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환경운동이나 평화운동이나 인권운동이 곧 ‘생명’을 살리고 나누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생명을 살리는 모든 운동에 유효한 문구인 것이다.


상냥함과 배려가 하나로 만나면 미래가 보입니다
꿈과 미래가 하나로 만나면 평화가 보입니다
당신의 평화와 나의 평화를 하나로 만나면 생명이 순환 합니다
빛나는 생명과 생명을 엮어 내일의 아이들에게 물려줍시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보름달 축제 한국 실행위원회는 초대권(3,000)과 반팔옷(15,000원)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문의하실 곳은 02-744-1211이고 후원 계좌는 조흥은행 : 945-04-197353(보름달축제)입니다. 기사 마지막 부분의 시는 원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의역한 것입니다.   

보름달 축제 관련 연재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2회  3월 28일(수)  인터뷰 - 제2회 보름달 축제에 평화의 사자로 오키나와 방문한 정유진씨. 
3회  4월  4일(수)  인터뷰 - 매향리 보름달 축제에 참석하는 오키나와  평화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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