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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재 모대학 영문과 4학년에 재학중인 김성태(가명) 군은 졸업을 앞두고 더욱 바빠졌다. 이유는 물론 입사준비 때문이다. 김군은 수업 종료후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토익강좌를 수강하러 간다. 토익수업이 끝나면 바로 1시간 짜리 미국인 영어회화반으로 가야한다.

영문과 학생이 과연 영어학원을 다닐 필요가 있을까 라고 질문을 하자. 그러나 대답은 "물론이죠"다. 4년동안 공부하고 뭘 더 공부할게 있냐고 묻는 필자에게 김군은 "제가 한 공부는 학교 영어공부고 지금하는 공부는 취업 영어공부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이번엔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배운지 오래되서 모른다고 했다. 그럼 영미문학의 줄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설명을 부탁했다. 역시나 대답은 모른다였다.

대학 4년동안 영문학을 전공하고 아니 중학교부터 십수년간 영어를 배우고 또 배우면서도 정작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니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군과 친하다는 최성문(가명) 학생은 "알아주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세익스피어를 누가 공부합니까?"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거기에 덧붙여 영문과 학생은 오히려 다른 과학생들보다 손해라고 말한다. 이유인즉 타과 학생들은 취업영어만 준비하면 되지만 영문과 학생들은 학교영어하랴 취업영어하랴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그럼,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묻자,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취업영어보다 수준이 높고 문학적이고 원론 중심적인, 비능률적 과목이 많아서 실질적인 준비를 위해서 취업영어와 학교영어의 분리는 필수다" 라고 설명했다. 또한 교수님들은 대부분이 늙으신 분들이라 영어 발음도 좋지 않고 실용영어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전공영어를 열심히 하다보면 혹시 자기만 손해보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김군은 가뜩이나 많은 숙제 때문에 학원다니기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차라리 학교에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학습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하나의 예로 철학을 전공하는 자신의 친구의 토익점수가 높은것을 예로 들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전공영어의 비효율성을 주장했다. 그는 모임에 나가면 온통 토익점수나 토플점수을 물어보아서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말하기가 겁난다고 했다.

물론 김군과는 달리 영어를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영문학 전공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영문학을 전공하고서도 영어점수라는 굴레때문에 자신의 전공에 자신이 없고 두려움과 걱정꺼리가 된다는데 있다.

영문학을 전공한 또 다른 졸업생은 토익점수가 잘 나오지 않자 전공과는 무관한 컴퓨터를 공부해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꼭 전공을 따라갈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대학전공을 입사 영어점수 때문에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학생들이 많다는데 있다.

대학시절은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또 자신이 선택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하였고 전공공부는 취업을 위해 박탈되고 있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 입시영어를 거쳐 대학의 취업영어까지 언젠가 우리 학생들이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워져서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지.....오늘날 누구나 주장하는 교육의 붕괴는 어쩌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마음속의 문제가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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