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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국을 자유와 자율의 나라라고 하는가?"라는 김현주 기자의 글을 읽고 "내가 미국은 자유와 자율의 나라라고 말한다"고 마주쳐 봤다.

10년 넘게 미국에 살아보니 미국에서 찾을 수 있는 '자유와 자율'도 몸에 익어 가는데 김현주 기자의 기사 제목은 마치 미국에 '자유와 자율'이 없다는 것으로 들려서...

그러나 정작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미국은 자유와 자율의 나라다'라는 건 아니야. 다만 미국은 개인이 찾으려고만 들면 '자유와 자율'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법과 규범 안에서. 그리고 그건 상당 부분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어.

한국에서의 25년간의 생활을 돌이켜 보건데 한국에서는 '자유와 자율'을 찾으려고 해도 찾기 힘든 곳이라는 기억이 많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왜냐면 분위기라는 것 때문에. 분위기에 맞추지 않으면 학교에서고 직장에서고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고 분위기를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뒤처질 수도 있고 별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일이 많았으니까.

내가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자유는 이런 거야.

예를 들어 술먹는 분위기에서 술 안 먹을 자유, 과외 공부시키는 분위기에서 과외 공부 안 시킬 자유, 핸드폰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핸드폰 안 사도 되는 자유, 프라다 가방을 들어야 괜찮아 보일 것 같은 분위기에서 모조 프라다 가방을 찾지 않아도 될 자유, 부자와 엘리트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가난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자유를 여기선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미국에는 위에서 말한 그런 분위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계층에서는 더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분위기를 따라가는 이들이 없다는 말도 아니야. 분위기 따라 가는 사람들 여기도 많아. 그리고 죽기 살기로 돈 버는데 매달려 매사에 남과 비교하면서 더 좋은 차, 더 큰 집, 더 비싼 물건들 사는 걸 낙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어디고 사는 건 비슷하니까. 그래도 미국에선 일상 생활 중에도 자기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아니 찾기가 쉽다.

미국에 온 지 몇 개월 안된 현아 엄마에게 도서관 사용법을 알려줄 때의 일이야. 늦여름이라지만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웠어. 나는 스웨터를 입고 나섰는데 그 엄만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지. 그리고 춥다고 벌벌 떠는 거야. 뭐라도 걸쳐 입고 나오시지 그러셨어요 했더니 이 한 여름에 어떻게 스웨터를 걸쳐 입냐고 한다. 남들 눈도 있다면서. 미국에선 내가 추우면 여름이건 겨울이건 상관없이 옷을 따듯하게 입을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춥지 않으면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 자유가 있고.

미국의 중상류층은 생각보다 아주 검소한 이들이 많아.
40만달러짜리 집에서 사는 이들도 여기서 가장 싸구려 마켓인 월마트에서 물건 사는 게 일상이다. 한국의 중산층들이 값비싼 백화점이나 고급 물건들을 선호하는 것과는 좀 대조적이지. 이 사람들은 월마트에서 물건사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필요한 물건들을 예산에 맞추어서 합리적인 샤핑을 해. 특히 소모품일수록. 이것도 자유라면 자유지.

미국에서 그런 자유들을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더 나아서라기보다는 무슨 일에나 나와 너 사이에 적정한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해. 거슬러 올라가면 그건 역시 땅이 넓다는 데서 비롯된 거겠지. 좁은 땅에서 복작복작 부딪히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말야. 그리고 부딪힘이 적으니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누가 뭐랄 일이 적고. 누가 뭐라해도 거리를 두고 삭일 수 있게 되고 말야.

또, 거기에 여러가지 정치학적, 경제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문화적인 이유들을 수없이 덧붙일 수 있겠지. 나는 학자는 아니니까 그런 걸 얘기하는 게 내 몫은 아닐테고. 하여튼, 미국이 자유가 없는 나라는 아니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걸 찾지 않거나 포기 하거나, 혹은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참고로 <미국통신 8> 누가 미국을 자유와 자율의 나라라고 하는가 에 붙인 독자의견을 여기로 옮겨봤다.

투쟁의 역사를 만드는 건 백인들만 그렇습니까?
장성희, 2001/03/16 오전 12:36:54

"백인들의 본 고장 유럽의 역사를 보라. 뚜렷한 이유없이 싸우고 죽이고 정복하고 군림하는 투쟁의 역사가 아닌가? 백인들은 체격도 참 크고 힘도 무척 세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 사회는 참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wild wild west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

김현주 기자님이 쓰신 위의 내용을 읽으며 요즘 가끔씩 보고 있는 '왕건' 한국 드라마 생각이 납니다. 싸우고 죽이고 정복하고 군림하는 투쟁의 역사는 백인이고 흑인이고 동양이고 서양이고를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내용은 백인들에 대한 편견을 낳을 수 있는 발언입니다.

그리고 이유없이 싸우고 죽이고 정복하고 군림하는 건 아닐테지요. 분명히 이유가 있지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은 아닐런지요.

저는 투쟁의 역사에 대해서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본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사회는 특히 질서가 필요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엄격한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

이어 쓰신 바로 위 내용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백인들이 유별나게 호전적이고 지배적이라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 엄격한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기보다는 미국 정신의 근간이 되고 있는 청교도 정신과 미국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데요.

미국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지식뿐이 아닙니다.
이곳 학교에선 규칙을 지키고 다른이들을 존중하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그 내용은 1. 남에게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너도 그렇게 대하라
2.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 3. 규칙을 따라라 4. 자신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미국과 미국의 교육은 정.교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안으로는 여전히 성서와 청교도 정신이 깊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민 문화입니다. 한국처럼 단일민족 단일문화가 아니라 다민족, 다문화 사회입니다. 다민족과 다문화가 서로 공존하려면 이것을 다스리고 조율해 주는 법적인 장치가 필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엔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요구가 많다는 것입니다. 백인은 백인대로 흑인은 흑인대로 동양계, 히스패닉계, 아랍계, 동유럽계 등등 인종과 민족간 부딪힘과 마찰이 심한 곳이 미국이지요. 거기에 따라온 문화간의 충돌도 상당한 곳이구요. 그 속에서 정치를 해야하고 공평과 평등을 찾자니 자연 법과 규칙이 발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법치국가, 규칙이란 건 지키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 상식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와 자율을 위해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부분,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겠지요.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이 사회의 rule에 따라서, 이 나라 대부분의 시민들이 하는 것처럼 그저 평범하고 '온순한' 시민의 한사람으로 은둔해 버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

기자님이 쓰신 위의 내용에서 미국인들을 평범하고 온순한 시민의 한사람으로 '은둔해 버리는'이들로 묘사한 부분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법과 질서속에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 함으로써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권리 보장, 사생활 보호에 대해서도 정부나 단체에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몫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 총기 문제는 한국에서 개인의 총기 소지 자유화가 실시된 다음에 비교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안전 밸브가 부족한 나라, 때로 불안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기사 잘 읽고 있습니다.
요즘 오마이뉴스를 매일 보는 이유입니다.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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