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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즐거운 혁명, 웃음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왜 만화를 보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당신이 처음 만화를 보게된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재미있으니까 (범위를 조금 좁힌다면, 웃기니까).
왜 만화를 보지 않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당신이 만화 보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유치하니까(그리고 그런 유치한 것을 보는 것이, 창피하니까).
만화를 보는 이유와 보지 않는 이유 사이에 어딘가 공통점이 느껴지지 않는가?

1987년 6월, 나는 중학생이었고 가끔 교실에까지 최루가스의 냄새가 스며들곤 했다. TV에서는 연일 복면을 두른 채 돌맹이를 집어던지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비춰주었고, 학생놈들 때문에 장사를 못해 생계가 걱정이라는 상점 주인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이 빨갱이 놈들은 왜 매일 이렇게 데모를 하는 걸까?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조선일보를 보면서 나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무찌르자 공산당!

그 6월이 지나고 내게 세상이 어딘가 변한 것 같다고 처음 느끼게 해준 것은, 내가 TV와 신문에 속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을 처음 갖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만화였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을 희화시키고 풍자한 만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런 만화를 묶은 책들을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만화들을 보고 킬킬거리며 나는 내 마음을 묶고 있던 금기들이 하나 둘 깨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아주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만화들을 보고 모두가 나와 같이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치부가 드러나고 금기가 깨지는 일들을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는 법이고, 재밌고 웃기는 만화를 '유치하다'며 집어던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웃음은 달콤한 치료약, 웃음이 상처를 치유하리라

그 날, 기분이 그렇게 엉망이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왕에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이유를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봐야 다시 기분이 엉망이 될 뿐일 것이므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기로 하자. 그렇지만 당신이 굳이 그 이유를 알아야만 납득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면, 그래 좋아. 설명 못할 것도 없지. 그 날, 내가 기분이 엉망이었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어렵사리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동안 지켜 보아온 바에 의하면 그녀는 현재 사귀는 남자가 없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녀의 친구라던가 직장 동료들의 증언은 그런 그의 생각을 확신이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여자를 만나는 데 있어서 그의 가장 큰 특기는 늘 망설임이었으나, 이번에야말로 그는 그 특기를 발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준비한 것은 장미꽃 한 다발과 굳게 먹은 마음. 그리고 드디어 길모퉁이를 돌아 그녀는 나타난 것이었다. 꽃다발을 등뒤로 감춰 쥐고, 그는 큰 한숨으로 마음을 한 번 더 다잡은 후 그녀의 앞으로 나섰으나, 그녀는 그의 눈앞에 있지 않았다. 그녀가 조금 전 돌아섰던 길모퉁이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조금은 상기된 듯도 하고, 조금은 쑥스러운 듯도 한 그런 표정으로 무언가 이야기하던 그 남자는 등뒤에 감추고 있던 장미 한 송이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자, 이제 내 기분이 엉망이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그래, 당신이 짐작하시는 대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버린 그 장미꽃 한 다발이 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거금 5만원을 들여 마련했던 그 꽃다발을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꽃 도매상가에서는 2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려나, 나는 그렇게 엉망인 기분인 채로, 손에 든 이 꽃다발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하는 고민까지도 떠 안은 채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눈썹 공주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스스로를 속눈썹 공주라 칭하는 그 화장품광고의 광고판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미소짓고 있는 세 여가수의 이마에는 '고기'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쿡! 마사루, 언제 우리나라의 지하철역까지 왔다 간 것이냐?
스고이 스고이... 나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웃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지하철은 세 대나 지나갔다).

쿡 쿡 쿡 쿡 쿡

금기의 벽을 넘어 웃음의 세계로

아마도 <멋지다 마사루>(Usuta Kyoske / 도서출판 대원)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 마사루를 알고 있더라도 그 섹시코만도의 세계에 푹 빠져서 동화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위에서 내가 지하철역에 쭈그려 앉아 쿡쿡 거리며 웃고 있었던 이유를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사실 '고기'라는 낙서만 놓고 보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도 어렵고 게다가 그게 웃기기까지 하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고? 오 노, 마사루의 세계는 논리로 설명할 수가 없는 세계이다. 그곳은 비논리의 세계이며 무의미의 세계이고 제멋대로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만화를 보는 자세를 바꾸는 방법 뿐이다. 체면과 교양은 한쪽에다 치워놓고, 근심과 걱정도 휙휙 던져버리고 온 몸과 마음을 던져 마사루와 함께 원츄!를 외쳐 보라. 그 때에야 비로소 '고기'라는 낙서를 보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며, 마침내는 직접 펜을 들고 낙서를 하기 위해 나서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 나로 하여금 최초로 배꼽을 부여잡고 웃게 만들었던 만화는 <쿤타맨>(立石佳太 / 해적판으로 출판된 적 있음. 가수 서태지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만화라고 밝힌 바 있음)이었다. 웃음이 지나치게 되면 호흡이 가빠지고 아랫배의 근육이 당기게 되는데 그럴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부여잡게 된다. '배꼽 빠진다' 혹은 '배꼽 잡는다'는 표현이 아랫배를 부여잡고 웃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 것은 '쿤타맨'을 보며 그렇게 웃고 난 후였다.

어린 아이들은 뽀옹~ 하는 방귀 소리를 들으면 깔깔거리며 웃는다(사실 그건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말을 하고 들을 줄 아는 아이라면 '방귀'라던가 '똥'이라는 말에 웃음으로 반응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배변과 관련된 일련의 작업(^^)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서는 안되는 일종의 금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뽀옹~하는 소리로 인해서 그 금기가 드러나는 혹은 깨져버리는 순간, 비록 짧은 순간일망정 아이들은 그 금기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아닐까? ^^).

근심을 묻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지루한 혹은 짜증스러운 일상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할 아주 '우스운' 만화 몇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끝마칠까 한다.

<출동!! 먹통-X> 고병규 / 도서출판 대원
지금은 절판되어 찾아보기 힘든 만화. 조만간 다시 한 번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

<누들누드> 양영순 / 팀매니아
성(性)에 관한 금기들을 까발리고 뒤집어버리는 독특하고 섹시 발랄한 상상력.

<레츠고 이나중 탁구부> Furuya Minoru / 서울문화사
못생긴 주인공,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그림에 속아 자칫 책을 덮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내 책을 덮지 않고 버틸 수 있다면 주인공들이 사랑스러워지고 그림이 예술로 느껴지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멋지다 마사루> Usuta Kyoske / 도서출판 대원
원츄! 앨리제의 우울로 시작하면 오늘도 클린업클린미세스!! 쿠, 쿠울럭!

덧붙이는 글 | 위에서 언급한 '꽃다발 사건'은 사실 픽션이랍니다.(속았지? ^^) 다만, '고기' 낙서가 되어있는 광고판은 지하철 4호선 역사 어딘가에서 아직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이.. 이런 무책임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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