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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네 집(http://nurirang.com.ne.kr)에 한 번 가보세요.

빨간 지붕을 얹은 집에 눈사람, 파란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림 위로 '강누리, 밝고 맑게 자라길 바래요'라는 글자가 떴다, 졌다 합니다.

'육아일기'라는 게시판이 있네요. 이곳은 누리 엄마가 쓴 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목을 쭉 훑어보니 '빙빙 도는 누리', '누리는 요즘 다리가 꽤 짱짱해졌어요', '누리가 뒤집어요', '설사하는 누리' 이렇습니다. '사진첩' 코너에는 커플룩을 입은 젊은 부부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음, 그렇군요.
이 홈페이지는 누리 엄마와 아빠가 사랑스러운 첫 아기를 위해 꾸민 홈페이지인가 보군요.

그런데 다른 가족 홈페이지와는 뭔가 다릅니다.
공지사항 다섯 번째가 '대우 자동차 노동조합 속보를 누리 홈에서 볼 수 있습니다'라니!

다리 짱장한 누리, 아기가 설사하고 뒤집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엄마, 아빠의 웃음 위로 '대우 자동차 노동조합 속보'는 좀처럼 겹쳐지지 않습니다.

자유게시판을 둘러보니 그런 '무서운' 공지사항이 떠있는 이유를 알겠군요. 이 글을 쓴 사람은 아마도 누리 가족의 이웃사촌쯤 되나 봅니다.


<2월 26일>

강 누리는 랑이의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랑이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태어났고 누리엄마, 아빠랑 랑이 엄마, 아빠는 정말 정말 친하구 멋진 사이거든요. 그래서 랑이랑 누리는 금새 친구가 되었답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방긋방긋 서로를 반기는 모습이 넘넘 보기 좋았답니다.

근데....
요즈음 누리네는 어려운 일들이 생기고 있어요. 누리 아버지가 대우자동차엘 다니고 있었는데,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로 해고를 당했거든요. 게다가 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싸움을 하다가 지금은 경찰서에 있어요. 들리는 말로는 구속당할 거라고 해요. 공들여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것도 억울한데....게다가 구속이라니요....

누리는 아직 아빠가 경찰서에 있는 걸 모를 거예요.. 아직 이런 복잡한 일들을 알 나이가 아니잖아요....

요즈음 인천 부평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근처에는 난리가 아니랍니다. 여기 저기 시커먼 헬멧에 곤봉을 찬 경찰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닭장차라고 불리우는 무시무시한 차들이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구요.... 근처에 있는 산곡동 성당에는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싸움을 하고 있구요.....

근데요... 많은 사람들은 정리해고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국가 경제를 살려야 개인이 잘 살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지요. 근데.... 국가 경제를 망친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잖아요. 김우중을 비롯한 많은 자본가들이 경제를 망쳐놓고...게다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해주고,,,경제적으로 도와주었던 정부도 있는데....왜 힘없는 노동자만 죽어라하고 고생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백 번 양보해서 대우자동차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정리해고가 필연적이라고 해도요. 잘린 노동자들의 생계나 이후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요. 필요할 땐 가족이니, 뭐니 하며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정말로 어려울 땐 노동자 너희들이 잘못했으니 나가! 라고 소리치면,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잖아요.

어쨌든 누리네는 지금 많이 힘들 거예요. 봄이 되면 누리랑 랑이랑 함께 동물원 가기로 했는데. 누리 엄마도 요즈음 대우자동차 싸움을 함께 하느라 바쁘고, 누리 아빠는 구속될테니 힘들겠지요.

그래도 랑이는 기다릴 수 있데요. 누리네가 힘찬 웃음으로 함께 동물원에 같이 갈 그날까지 꿋꿋이 기다릴 수 있데요.

누리야, 누리엄마, 누리 아빠.
그리고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여러분.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랑이는 꿋꿋이 기다릴께요.

그럼 안녕.


아하, 이거였군요.
그래서 누리 엄마가 근 한 달 동안 육아일기에 글을 쓰지 못했던 거군요. 이 한 달 동안 누리의 재롱이 곱절은 늘었을 텐데 그 기특한 모습을 담아낼 여유도 없었던 거군요.

강누리가 밝고 맑게 자랄 수 있도록,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엄마와 아빠는 열심히, 열심히 살고 있는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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