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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에서 교복 만드는 일을 30년 동안이나 했다는 강아무개(62)씨. 3평 반이 채 넘지 못하는 가게를 근근히 운영하고 있는 강씨는 요즘 해마다 줄어드는 주문량 때문에 걱정이 많다.

'메이커' 선호에 기울어가는 맞춤점

"작년까지만 해도 가게 유지비 정도는 벌었는데 올 2월 들어서고는 주문량이 12벌 정도 들어온 게 전부야. 나이 들어서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가게만이라도 지키고 있는데 이 짓도 내년에는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이윤은 고사하고 전기요금과 가게세 등 유지비를 걱정해야 할 판인 강씨는 세상 사람들이 대기업 기성복 제품만을 찾는다며 속칭 '메이커'만을 선호하는 학생과 부모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자세히 따지면 영세하게 하더라도 우리 같은 맞춤점에 오면 2∼3만원씩은 절약할 수 있고, 원단도 최고급으로 쓰지, 또 수선도 언제라도 해주는데 대기업들이 TV에서 광고를 수없이 때리니깐 사람들이 그쪽만 찾게 되더라고. 학생들은 그렇다치더라도 부모들은 그러지 말아야지 원. 돈 1∼2만원을 우습게 본다니깐."

교복시장의 '왜곡현상'에 영세업자, 소비자들 눈물 흘린다?

대구 지역에만 강씨 가게처럼 영세한 교복 맞춤점과 중소규모 업체는 대략 70여 개. 물론 몇 해 전까지 200여 개가 훨씬 넘는 업체들이 성시를 이루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곳곳에서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교복 시장에서 나타나는 '왜곡현상'은 대기업의 시장 참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3년 교복자율화 시행으로 교복이 자취를 감추다가 89년 다시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교복을 선정, 착용하게 되고 90년대 이후엔 학교마다 특색 있는 형태의 교복이 등장하고 교복 재착용 학교는 점차 늘어났다.

이러한 세태에 맞춰 교복 시장에 뛰어든 선경 '스마트', 새한 '엘리트', 제일모직 '아이비 클럽'은 10대들의 우상으로 등장하는 스타들을 홍보용 CF에 적극 활용했고 시장 점유 규모는 점차 확대됐다. 현재 대기업 3개 사의 시장 점유율은 대략 70∼80%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기성복이라는 장점을 살려 저렴한 구입비용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대기업 제품의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했고 그만큼 가계의 부담은 늘어났다. 하지만 기성복 가격의 상승에 반해 일반 학생들의 대기업 교복 선호도는 줄어들지 않았고 현재와 같은 대기업의 독점적인 시장 점유의 형태가 생겨나고 말았다.

대기업 제품의 높은 가격은 중간단계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형성되는 마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대기업, 하청업체, 총판, 대리점 등 4단계를 거쳐야 하는 대기업 기성교복은 마진이 최고 140% 까지에 달하게 되고 그 몫은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10대 청소년에게 겨냥해 거물 청춘스타들을 기용하는 홍보용 CF에는 수 십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들어가고 그만큼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 결국 영세업자는 영세업자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대기업의 시장 독점화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인기그룹HOT를 모델로 기용한 새한 에리트ⓒ이승욱
그렇다면 왜곡된 교복시장의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교복 '물려입기'가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새 교복을 장만해야 할 부모님들에겐 최근 들어 학교별로 확산되고 있는 '교복공동구매제'(이하 공동구매제)를 추천 해 볼까 한다.

대기업에 맞서는 공동구매제

공동구매제는 학교별로 학부모 총회 등을 거쳐 선출된 학부모 대표들이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중소규모 생산업체와 영세업체들로부터 컨소시엄을 형성하거나 단독으로 입찰을 받아 최적의 업체를 선정, 희망 학생에 한해 공동으로 교복을 구입하는 방식.

대구에선 도원중학교 학부모들이 지역 최초로 시작했던 공동구매제는 올해 와룡고, 구암고, 남산여고 등 3개 학교와 각 학교별로 공동구매를 하는 제일여중, 도원중 등 5개 학교를 포함해 8개 학교에 이른다.

'교복공동구매제 전교조 교사지원단' 이대식(대구 와룡고) 교사는 "현재 왜곡된 형태로 문제를 빚고 있는 교복시장은 대기업체에서 지나친 이윤을 남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연결해 대기업체의 횡포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교사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광고경쟁으로 빚어지는 학생들의 '메이커 선호'에 대해 "내면의 미를 가꾸도록 노력해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성을 상품화해 품질과 가격보다는 대기업 상표를 우선시 하게 하는 반교육적인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교육적인 면에서도 공동구매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소비자 의식 교육과 절약하는 생활 습관을 채득하게 해줘야 한다"고 공동구매제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공동구매제의 효과는 대기업 제품의 가격을 하락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대구 와룡고등학교의 경우 남학생 동복(J사 제품 기준)이 180,000원(공동구매시 105,000원)이던 것이 공동구매제를 시행한 후인 올해에는 179,000원(공동구매시 103,000원)으로 하락했다. 와이셔츠, 블라우스, 넥타이 가격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 올해 포함된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가격 하락은 큰 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공동구매제는 영세업자도 살리는 길'

물론 학부모가 중심이 돼 시행되고 있는 공동구매가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공동구매과정에서 생산단가의 하락으로 인한 저질 제품과 '리베이트' 거래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기업과 대리점 관계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대구YMCA내 '교복공동구매네트워크'홈페이지(www.tgymca.or.kr/~school09/)에는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실리기도 한다.

하지만 공동구매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일축하고 있다. 특히 무조건적인 최저가입찰이 아닌 '제한적 최저가 입찰'(입찰 추진 기관이 원단 값, 부자재 값 등 원가에 마진을 고려해 적정 이윤의 범위를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최저 입찰 금액을 가장 적절한 근사치에 적어낸 업체가 낙찰)방식을 채택해 상품의 질에 대한 걱정은 '노(NO)'라는 것.

또 학교별로 총회나 학부모회를 거쳐서 선출되는 일명 '교복공동구매 추진위원회'는 다수의 운영위원의 만장일치로 입찰을 추진함으로써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적고, 실제 '리베이트'거래가 있다하더라도 쉽게 드러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공동구매는 사라져 가는 교복 영세업자들이 운영하는 맞춤점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초기에 공동구매로 영세업자들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공동구매가 다수 학교로 확산이 되고 영세업자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가하는 것이 정착되면 대기업의 횡포로 피해를 보고 있는 영세 맞춤점도 숨통이 트일 것입니다."
이대식 교사의 말이다.

학부모들의 자생적인 요구와 참여로 교복공동구매제의 위력이 대기업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영세업자를 살릴 수 있을지 다시 다음 학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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