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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南國)에 눈이 옵니다.
순식간에 보길도의 산과 들 바다까지도 온통 눈세상입니다.
텃밭의 배추도 바다 밭의 김과 톳, 미역들도 눈 속에 파묻혀 갑니다.
나는 눈밭을 건너 설국(雪國)에 도착합니다.
깊어 가는 설국의 겨울,
동백나무들, 눈꽃보다 눈부신 꽃망울 붉게 터뜨립니다.

설국에 저녁이 옵니다.
군불을 지피러 뒤안으로 갑니다.
눈 맞으며 패온 장작들.
습기가 배어 확 타오르지 않습니다.
은은하게 달궈지는 나무들,
솥 안의 물은 느리게 끓고,
아궁이 속에서 또 한 송이 붉은 꽃 피어납니다.

▲눈 내린 동천다려 ⓒ 강제윤













설국의 함박눈 부뚜막까지 날아와 서성거리다 돌아가고
나는 오래도록 불가에 앉아 나무들이 타면서 내는 향에 취해 봅니다.
소나무 가지 불타오르며 솔솔 풍기는 솔내음.
불 땀 좋은 대나무에 묻어온 대숲 향기.
혈관을 따라 흘러나온 동백나무 장작의 수액은 구수하고
잣밤나무 장작의 진액은 달콤합니다.

설국의 겨울, 사람을 태워도 향이 날까요.
사람의 살이 탈 때도 맑은 향이 나고
뼈가 타닥일 때, 구수한 맛의 진액이 흘러나올까요.

동천다려 초가 지붕 위로 소복소복 눈은 내려 쌓이고
나 아궁이 속 장작으로 느리게 타오르면
동백나무와 참나무들, 불가에 둘러앉아 불을 쬐며
두런거리겠지요.
이 사람 장작은 향이 좋구나, 아니야 고린내가 지독한 걸.

설국의 겨울 저녁,
나를 불태워 눈바람에 언 나무들 따뜻하게 몸 녹일 방 한 칸 지필 때
나는 불태워져 무슨 향을 남기게 될까요.
나는 불태워져 어떤 맛의 진액을 남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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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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