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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전철역이 맞닿아 있는 곳. 전철역 옆으로 1만여평의 논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보기 드문 풍경을 간직한 곳은 다름 아닌 경기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 일대.

이곳 화서역 부근이 최근 도시 어린이들의 겨울 놀이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0평 남짓한 논위에 커다란 빙판이 들어서고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러 나온 어린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다.


<동영상 보기> ‘논을 달리는 겨울철 동심’


어릴적 논바닥 위에서 썰매를 타던 옛 추억을 되새기며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나온 부모들도 이곳 겨울철 논 스케이트장을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옛 고향에서 즐겨 타던 눈썰매를 둘러싼 아름다운 기억을 자녀들에게도 전해주고픈 마음에서이다.

각종 장난감에다 전자게임이 판을 치는 요즘과는 달리 얼어붙은 논이 유일한 놀이거리였던 그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함께 얼음이 깔린 논 위로 썰매를 타던 잊지 못할 추억이 도시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도심지 한 가운데 1만여평의 논이 펼쳐져 있는 화서역의 사계(四季)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릇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좌우로 15층 높이의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서 있고, 서울과 수원을 잇는 기다란 철길이 옆에 드리워져 있다.

봄이 오면 파릇파릇한 모가 자라고, 여름이면 제법 키가 큰 벼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다. 가을이 오면 누런 들판이 물결치며 풍성한 수확을 재촉하고 벼베기가 끝날 무렵 어디선가 '꽥꽥'소리를 지르며 날아든 철새들로 장관을 이룬다. 눈이 날릴 때면 거대한 설원 위로 빙판이 만들어지고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으로 화서역 주변 논은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다.

주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도시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고향을 떠올려 보는 것은 당연한 일.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고 수원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멀찌감치 화서역과 닿아있는 논을 스쳐가며 정든 고향을 떠올려 봄직하다.

이 곳에 겨울철 스케이트장이 들어선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지난 23년간 이 곳에서 스케이트장을 운영해 왔다”는 송흥섭(64) 씨는 “봄부터 가을까지 건축일을 하다가 겨울철이면 화서역 부근 논위에서 스케이트장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며, “임대료를 지급하고 빌린 논 바닥에 비닐을 깔고 지하수를 퍼올리면 근사한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홍씨는 “한때 논을 이용한 스케이트장은 수원시에서만 7곳에 달했으나 논이 사라지고 눈썰매장 스키장이 들어서면서 현재 논바닥 스케이트장은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갈아엎은 논 위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산을 깎아 만든 스키장이 도시 근교 농촌에 자리잡으면서 논 위에 스케이트장이 들어서는 겨울철 농촌의 진풍경도 차츰 사라져 가고 있는 셈이다.

논과 아파트 전철역이 함께 하는 이곳 화서역 부근 스케이트장은 이런 세태(世態)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나선 어린이들로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어린 딸을 썰매에 태운 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기쁨을 만끽하던 장연순(36) 씨는 “어릴 적 기억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빠듯한 직장생활 때문에 아이한테 소홀했던 그가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옛 고향의 정취와 동심(童心)을 어린 자녀와 함께 되찾은 셈이다.

도시 어린이들도 빙판으로 변한 겨울철 논바닥이 즐겁기는 마찬가지이다. 비록 쓰러지기 일쑤이지만 넘어져도 표정은 밝기만 하다. 인근 정천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은 “넘어져도 재미있다. 비용도 저렴하다”며 마냥 기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누군가의 얘기가 귀를 스쳤다.
“전철역 주변에 이런 땅이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할 정도다. 언젠가 이 곳에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겠지….”

고향 냄새가 사라져가는 요즘, 논위를 달리는 동심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지나 않을지,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얼굴 뒤로 떡 하니 버티고 들어선 아파트 숲이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다. 어쨌던 도심속 논바닥 위를 달리는 동심은 잃지 않고 싶은 고향의 모습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노을이 질 무렵 촬영장비와 취재도구를 정리하고 마냥 즐겁기만한 겨울철 논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다.

저 아이들이 커서 아들 딸을 데리고 이 논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덧붙이는 글 | 기사와 함께 제공된 동영상은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이대용 인터넷방송 PD가 촬영하고 편집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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