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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봐, 해봐!"

뭐? 안아보고, 해보라고?
어찌 이상야릇하게 들려오는 이 한마디는 어디서 불쑥 튀어나온 말일까?

이집트, 그 건조한 사막의 땅에 발을 디딘 것은 99년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서였다. 특히 첫 번째 방문은 99년을 새로이 시작하는 1월 1일이었기에 그 감회가 남달랐다.

시나이반도의 타바에서 버스로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이로, 나일강 옆, 3류 호텔의 매케한 냄새,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반갑지 않은 것이 없었고, 이집트인의 쪼들린 눈동자와 때가 시커멓게 낀 손을, 부딪히고 마주칠때마다 나는 감히 사랑할 수 있었다.

"안아봐, 해봐!"

"안아봐, 해봐"
우리말의 안아보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지만- 해보라는 이 말은 사실 정확하게 들어보면 "아나 봐 해바크"이다. 즉 이집트에서 '나', 영어로 'I'에 해당하는 것은 '아나'로서 "아나 봐 해바크"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 된다.

내가 묵었던 '마기 호텔'의 종업원들은 이집트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동양여자가 신기할뿐더러,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재미가 있었는지, 그들은 나에게 "안아봐, 해봐"라고 자주 말을 건네왔다.

그 말이 음탕하게 들려오는 것이 재미있어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면, 윙크까지 건네면서 "하비비, 하비비"하고 불러대었다. '하비비'는 사랑하는 여자를 뜻한다.

이집트는 과거의 문명과 현재의 소박함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이집트 서민들의 소박함이야 이집트 거리를 거닐어보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라마단 음식을 나누어 먹다보면 자연스레 익힐 수 있는 것이지만, 이집트 문명을 배워보기에 내가 달랑 들고 간 이집트 여행안내책은 그 내용의 부족하기가 피라미드를 무너뜨릴 정도였다.

여행이라는 것은, 특히 문명을 접하는 것이 여행의 주목적이라면, 피라미드의 모양새를 훌쩍 보거나,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가져간 안내책자에는 그저 간소한 설명만이 첨부되어 있어, 신비로운 이집트의 유적을 대할 때마다 답답함만 증가, 지적호기심은 더욱 높아만 갔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이집트에 대한 부족한 마음이 앞서, 그 후 여러 대형서점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집트에 관한 책은 수입책 코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고, 간간이 이집트상형문자에 관한 책이나 미이라에 관한 책, 혹은 세계의 전설과 유적에 관한 간단한 단행본뿐이었다.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미국의 인터넷 아마존에 들어갔을 때, 이집트에 관한 책이 수백권이나 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나는 39달러 50센트를 지불하고 하드커버의 이집트 책을 한 권 주문했는데, 풍부한 이집트 유적에 관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원색의 사진속에서 이집트 여행의 감흥을 다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나처럼 아마존을 서핑할 필요도, 국외로 달러를 유출할 필요도 없어졌다. 조선대학교 아랍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정규영 교수가 5000년간의 이집트 유적과 문명, 신비와 삶에 대한 궁금점을 카이로 대학에서 유학한 7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쓴 책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책<이집트, 살아있는 오천년의 문명과 신비>는 룩소르에서 아스완을 지나 아부심벨, 카이로와 기자, 멤피스,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로제타와 오아시스 지역 등, 이집트 전역을 두루 살피는, 정 교수의 폭 넓은 안목과 유적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있다.

특히 내가 놀란 것은, 이집트에 가지 않아도 직접 눈으로 보는 것같이 생생한 원색의 사진들이 무엇보다 많은 점이며, 왕가에 대한 비밀이 다른 어떤 책보다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왕가에서는 파라오가 되기 위해서 근친혼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근친혼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 즉 파라오보다 파라오의 부인, 즉 왕비의 모계권력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파라오의 왕권은 왕비 우선 순위 1위와 결혼하고 있는 동안에만 정통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파라오는 그의 왕비가 생존해 있는 경우에 한해 파라오로서 군림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파라오는 혈족에 상관없이 가족 내 왕비 서열에 들어있는 모든 여자와 미리 결혼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왕비가 먼저 죽을 경우 발생할 지도 모를 원치 않는 왕권퇴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미이라를 만드는 가장 비싼 방법에서 싼 방법, 왕과 왕비들의 무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무덤이 만들어진 고대의 시점부터, 도굴, 투탕카멘왕의 무덤을 발견한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등, 20세기의 현대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흥미롭기만 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기 위해 카이로에서 가까운 기자지역만 대강 훑어보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집트 여행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나일강을 따라서 소중한 유적들을 둘러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룩소르에 위치한 왕들의 무덤과 카르나크 신전은 정말 하루를 투자해도 못 보고 나올 만큼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며, 펠루카라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3일 낮의 태양과 3일 밤의 별빛아래에서 나일강을 떠다니는 것도 훌륭한 기억이다. 이집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한 권의 책이 이집트를 알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흔치 않은 훌륭한 책, #슈크란 기딴 <이집트>!

덧붙이는 글 | #슈크란 기딴 -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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