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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겨울 문턱 이 즈음, 남편이 한마디 툭 던졌다.
“너 겨울 잠바 없지? ”
“있긴 있는데 살이 올라서 작지.”
혼자서 생각하기를 ‘뭐 하나 사줄라나?’

그 말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 남편은 노랑 잠바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널 위해 준비했어.”
정말 예쁜 노랑 잠바였다. 그것도 내 돈 주고 내 거 사 본 적이 없던 고급 브랜드. 결혼한 지 3년만에, 아니 연애시절부터 6년 동안 그 어떤 물건을 구입하는 데 한번도 독단적인 결정을 해 본 적이 없던 – 아니 못했을 - 남편이, 선물이라곤 항상 마음만을 주었던 그가, 그것도 날 위해 준비했다니….

내일은 꼭 노랑잠바를 입고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에 밤이 길 것 같았다. 그러나 맞벌이란 이름은 그 야릇한 흥분마저도 그저 잠 속으로 내몰고, 다음날 아침엔 거울 한번 제대로 볼 시간 없이 출근길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 집 거실에서 남편 회사가 거의 정면으로 보인다. 물론 내 출근도 남편 회사의 사옥 정면 앞으로 나 있는 탄천길이다. 출퇴근 시간에 항상 남편을 생각하는 길이기도 하다.

퇴근이 늦어 불이 꺼져 있는 사옥을 보면 ‘퇴근 했겠구나. 밥은 먼저 먹었나?’하고, 내가 먼저 출근하는 날이면 ‘남들은 벌써 나와 있는 거 같은데 일찍 좀 서두르지. 에이’한다. 또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 있으면 '아, 우리 회사 건물에도 달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탄천가에서 풍물소리가 날라치면 그 장단에 맞춰 매화타령 한 자락을 따라 부르기도 하는 길이다.

그리고 속상한 일이 있어 그 길을 지나치려면 맺힌 한이라도 풀 듯 울며 거니는 길이기도 하다. 아파트 숲을 누벼 단거리로 갈 버스정류장을 만류하고 다리품을 팔아가며 그 길을 택한 건 공기도 좋고 사람도 없는,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그런 ‘내맘대로(路)’이기 때문인 것이다.

마침 출근 시간이 늦어져 노랑 잠바를 들고 나와서는 ‘내맘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잠깐 헐떡대는 순간, '앗!'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냥 비슷한 옷이겠지 생각하면 그대로 내달려 횡단보도 빨간불에 서 있으려니, 건너편에 또 노랑잠바를 입은 사나이가 서 있는 것이었다.

‘아까 그 사람인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이 자신과 반대로 가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혼자 되뇌이고는 서울역으로 향하는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버스 요금을 내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또 한 사람의 ‘노랑 잠바’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국가스공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황달에 걸려 세상이 다 노랗게 보이는 건 아닌지. 한국가스공사 정문으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노랑잠바1’은 막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고, ‘노랑잠바2’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노랑잠바3’은 저 위에서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는 그 옷을 입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고….

그날 낮에 나는 남편과 통화하지 않았다. 회사 선물을 아내 것으로 신청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고마운데 그날은 그런 생각은커녕 어떤 알지 못할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하루를 보냈다.

밤늦은 퇴근길, 아파트 단지 앞에서 내리면 뭔가 들킬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미금역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오늘은 ‘마음대로’로 못 가고 ‘성남대로’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나이트클럽을 돌자마자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내 앞으로 노랑잠바 사나이 5명이 떼로 몰려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한국가스공사 어느 부서 직원들이 회식을 한 모양이었다. 분명히 한국통신도 아닌 토지공사도 아닌, 한국가스공사 직원들이었다. 노랑잠바 한국가스공사. 부지런히 지나치는 내 걸음에서 그들은 나와 동질감을 느꼈을 테지만 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우리 남편이 한국가스공사 다녀요’라고 낯선 그들에게 소리라도 지른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젯밤에 회사로 불려 나갔다가 새벽까지 일하고 들어온 남편이 마누라가 들어 왔는지도 모르고, 그저 라면 한 그릇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었다고 싱크대에 자랑이라도 하듯 그릇을 늘어 놓고는 쇼파에 누워 애국가를 들으며 자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밖에서는 돈 잘 버는 마누라가 과장 진급했다고 자랑을 일삼는 남편인데, 결혼하기 전에 큰 맘 먹고 하나 사 입은 오리털 잠바 하나로 다섯해를 나면서도 마누라 몫으로 옷을 신청해준 남편인데... 밤늦게 들어온 나를 보고 잠결에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코를 고는 남편이 그렇게 측은하고, 안됐고, 어찌나 고마운지...

나는 오늘도 ‘노랑잠바’를 입고 출근했다. 1년이 지난 오늘은 거의 ‘누런잠바’이기는 하지만... 그 매서운 분당 찬바람을 ‘노랑잠바’로 버티고 있다. IMF만큼이나 참혹한 현실을 ‘남편사랑’으로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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