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96년 11월 27일,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농아 아이들이 일어났다.
비리재단과 운영자의 부정부패로 인한 극심한 배고픔 때문에 개밥그릇을 뒤지고 가겟집을 털던 아이들이었다.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울었다. 그들이 비리재단 측으로부터 쫓겨나 허름한 강변 식당에 '해아래집' 간판을 달고 생활 농성을 시작한 지 이제 만 4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그 동안 수백 차례의 언론보도와 각종 감사로 인해, 이제 외견상 인권유린이나 부정 부패가 일어나지 않건만 아이들이 농성을 계속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들이 말하는 에바다 복지회의 정상화 또는 에바다 문제의 해결은 무엇인가?

기자가 에바다와 관련한 글이나 기사를 요청받을 때마다 지겹도록 받는 질문 역시 이와 같다.

연이어 쭉 과정을 설명하고 나면 따라오는 질문, "구 비리재단 측의 법적 행정적 책임이나 절차도 다 끝났고 농성에 참가했던 선생님들 역시 모두 복직되었는데 무엇이 문제지요?"라든가 "이제 더 이상 위법 사실이 없는데 계속 농성을 계속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닌가요?"하는 양비론적 질문들, 아니 이제 4년이 흐르면서 오히려 일부 언론에서조차 백안의 눈빛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기자의 마음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에바다 농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곡해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논리나 방법이 없어 마음이 답답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질문과 비판을 해오는 사람들에 깔려 있는 장애인에 대한 허약한 의식이다.

우리는 이제 아주 작은 도덕적 결함에도 국회의원의 당락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어떤 재벌이 아무리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지라도 혈족에 따른 변칙 운영이나 세습을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민주화로 가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몇 십 년이 지난 의문사 역시 많은 투쟁으로 미약하나 법으로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하물며 억대에 이르는 국고 지원금을 횡령하여 아이들이 개밥 속에 라면을 건져먹게 만들고 6.25 전쟁할 때보다 못한 열악한 시설에서 공부하게 하고 강제 노역에 임금을 착취하고 농아아이 70여 명을 인신매매로 미국에 팔아 먹고 미군에 의한 성추행을 방치했던 사람들이 다시 재단으로 복귀하려 하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정상화'로 이해할까?

해아래집에서 농성을 하는 아이들의 요구는 지극히 단순하다.

에바다 복지회는 그 자체가 인격을 생성하는 '공익법인'이므로 더 이상 구 재단에 대부분을 구성했던 전이사장 최성창이나 농아원 원장이었던 최실자 등 최씨일가에게 설립자라는 이유만으로 기득권을 인정하지 말 것. 이에 구 재단 측의 영향을 완전 배제한 민주적 이사진을 구성할 것과 법인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할 학교운영위원회나 법인운영위와 같은 제도를 운영할 것 등이다.

이와 같은 이들의 요구를 꼼꼼히 살펴보면 상당한 타당성을 지나고 있다. 일단 이들의 구재단 인사의 완전배제 주장은, 이들의 96년 농성이 에바다 복지회에서 일어난 6번째 농성으로 과거에도 최씨 일가는 사죄와 회개를 약속하고도 이들의 부정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론이 사라지면 소위 '복수'를 감행했던 바, 다시 그들에게 일정 정도 기득권을 남겨 준다는 것은 앞으로 입학하거나 생활할 후배들에 대한 암묵적 인권방조라고 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이사진들이 정말 정상화의 의지가 있다면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정상화 방안이 이사회에서 의결되고 집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이사장과 이사가 이사회의 과반수를 넘지 못해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어서 공금횡령 등으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전 원장 최실자가 버젓이 학교에 들어와 매일 점심식사를 하고 대학생들을 만나 온갖 협박을 하며 공공연하게 전면에 나설 것을 공언하는 상황에서 에바다 복지회의 정상화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아이들은 입을 모은다.

에바다에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인권유린과 부정부패가 있었다. 에바다에는 이미 확인된 세 명의 농아 아이들의 의문사가 있었다. 에바다에는 누구나 분노할 미군 범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도 속시원하게 밝혀지거나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농성하는 아이들은 과거의 모든 것을 양보한 채 오로지 후배들을 위해 민주적 이사진 구성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지난 11월 6일 아이들이 4년간 기다려온 민주 이사구성이 재단측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아이들은 벌써 해아래집에서 네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격리된 우리들만의 세상을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아래집 아이들의 4년간의 힘든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복지 시설의 민주화나 인권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는 않다.

덧붙이는 글 | <에바다투쟁 4주년> 민중복지연대 첫번째 토론회

사회복지시설비리에 맞선 사회복지운동의 과제
                 -에바다투쟁을 중심으로

연세대 공대 A019에서 11월 29일 오후 7시에 열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