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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스터에 사는 한 평범한 유학생 부부의 딸인 올해 12살난 천재 바이얼리스트인 김수연 양과 현재 미국 유학중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이라는 청년에게 일어났던 기적들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수연 양의 경우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가 독일이라는 낯선 이국 땅에서 어떻게 수준급 바이얼린 연주자로 급성장할 수 있었나 하는 눈부신 기적적 과정이 비교적 소상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뮌스터에 살고 있는 한 기자의 눈을 통해 기술되고 있고, 이재용의 경우는 미국에 유학하는 한 젊은 유학생이 한국에 있는 자기 아버지의 머리 좋은 부하들 덕분에 세금 한 푼 안내고 어떻게 수조원의 재산을 지닌 우리나라의 최고 갑부로 급성장할 수 있었나 하는 눈부신 기적적 과정이 한 회계사의 편지글 형식을 통해 상세히 기술되고 있다.

현재 모두 외국에 살고 있는 이 두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상이한 기적들을 접하는 오마이뉴스독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수연 양의 이야기는 현재 독일에서 장기간 유학하면서 딸아이(13살)를 수연이처럼 무료로 시립음악학교에서 플룻을 처음 배우게 하고 지금은 한 선생님에게 사사받지만 수업료의 대부분을 시청에서 보조받게 조치해준 고마운 선생을 둔 만학의 유학생인 나에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딸의 경우는 수연이처럼 천재적 재능을 갖지는 못했지만 타국에서 8,9년을 어려운 상황에서 악기연주를 사사시킨 공통의 체험을 경험한지라 수연이 부모의 그간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고 특히 수연이 어머님께 뜨거운 존경과 격려를 드리고 싶다.

우리 딸도 올해 전국 독일 청소년 음악대회에 운좋게 주대표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가 있었지만 입상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 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수연이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우리 딸의 플룻 선생인 쉘렌베르그 여사도 지역대회, 주대회 참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업료 한푼도 받지 않고 6개월 이상을 정말 혼신을 다하여 주말도 없이 지도해 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참가할 때마다 들어가는 모든 교통비나 숙식비도 모두 자비로 부담하면서 우리 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해 주었다.

올해 주 선발 대회에서 쉘렌베르그 여사와 나는 우리 딸이 연주하는 동안 서로 손을 꼭 붙잡고 마음 졸이며 들었는데, 연주가 끝난 후 그녀는 격앙된 모습으로 내 귀에다가 "당신은 정말 대단한 딸을 두었어요"라고 속삭인 후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던 그 순간을 나는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연이에게 일어났던 그 놀라운 기적, 그리고 우리 딸이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업료를 내고 9년 동안이나 훌륭하고 열성적인 선생 밑에서 플룻을 배워 독일의 주대표로 참가할 수 있었던 그 행운은 모두 독일의 세금제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딸의 경우 한달 수업료는 한국 돈으로 7만원(140 마르크) 가량인데, 작년에는 그 수업료 전액과 악보 구입비를 이곳의 여성학자들의 모임에 비치된 기금을 통해 지원해주도록 선생님이 주선해 주셨고, 올해는 시청에 "재능있는 젊은 음악인을 위한 보조금 지원" 신청을 해 주신 덕에 상당액(년 900 마르크: 한화 약 5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두 경우 모두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의 세금정책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상류층의 여성학자들 모임의 경우 그들 수입의 일부분을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에 사회로 환원하면서 세금을 그 액수만큼 면제 받을 수 있고, 시청의 경우는 독일 전 국민이 평균 자기 소득의 40 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한 돈을 가지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책정된 예산을 분배하는 경우에 수연이나 우리 딸이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 악기 수업료는 대개 한달에 140마르크에서 200마르크로 정해져 있고 음대 교수들도 이 선을 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수업료도 부모의 수입여하에 따라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수연이보다 재능이 뛰어나도 부모의 수입이 일정액 이상이면 금전적 보조는 절대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금전적 보조는 단지 세금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 차원이지 우수함에 대한 격려내지 입증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대학 시절 부유하고 공부 잘했던 학생들은 가난하고 그들 보다 약간 성적이 낮았던 급우들에게 한번도 장학금을 양보하지 않았고 수령했던 몫돈을 들고 급우들을 술집으로 초청해 거하게 하루 술값으로 날리면서 자신의 우수함을 확인했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에게 독일의 이런 시스템은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런 시스템을 오랫동안 독일에서 체험한 내가 수연 양과 이재용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며 느끼는 점은 두 경우 모두 전혀 기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연이는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부모의 수입과 상관없이 재능과 열의만 있으면 누구라도 배울 수 있고 또 국가는 그런 아이들을 후원해 줄 의무가 있다는 독일 교육 이념이 적용된 수 많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경우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재용의 경우는, 세금을 어떻게 거둬서 어떻게 국민에게 재분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국가적 경험이나 역량이 수백년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창출돼 온 이곳 독일과 같은 서유럽구가들에 비해, 아직은 그와 같은 경험이나 역량이 너무나 일천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당연하고 일상적이며 필연적이기까지 한 무수한 경우의 한 예이지 결코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수연이와 같은 경우가 기적이라 여겨지지 않고 당연시되고, 이재용과 같은 경우가 "역시 삼성이야"라고 당연시되지 않고 기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 그래도 우리는 괜찮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은 요원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윤종훈 회계사의 편지에서처럼 누구나 번 만큼에 해당하는 세금이 공평히 적용되고 또 그 돈이 합리적으로 집행되는 날부터 우리는 괜찮은 사회로의 힘찬 첫 발을 당당하게 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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