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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협박성' 발언이 당안팎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9일 한 강연에서“나에게 국민의 지지가 없는데 후보가 안되면 끝이지만, 국민의 지지가 있는데 후보가 안되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해, 자신이 민주당의 차기 대선후보가 안될 경우 불복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내의 다른 최고위원들도 그의 발언에 대해 몹시 불쾌해 하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사람들의 지적처럼 이 최고위원의 발언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 최고위원의 발언 취지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에 무게가 두어진 것이라면, 그의 발언은 유아독존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특히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경선불복의 원죄(原罪)를 안고 있는 이 최고위원이기에, 그의 발언은 다분히 부정적인 맥락에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최고위원이 말했던 내용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경선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지 당내 줄세우기를 해서는 안된다"며 이 최고위원이 제기했던 문제는 사실 우리 정당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정당들은 대표자 혹은 대통령후보 선출에 있어서 자유경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당화(私黨化)의 문제를 심각히 드러내고 있는 각 정당의 내부 구조를 보면 실질적인 자유경선은 쉽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당 내부에서의 득표력은 인물에 대한 국민적 평가나 지지도와는 다른 별개의 논리에 따라 형성된다. 아무리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 해도, 당내에서 자파 대의원의 수가 적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정당의 사당화가 심화될수록 국민적 여론과 정당 내부의 정서간의 이같은 괴리가 빚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정치학자 사트토리(Sartori)가 말한 반경쟁적(subcompetitive) 상황, 즉 경쟁은 보장되어 있지만 특정 후보가 너무 강력해 다른 후보가 경쟁을 포기하는 상황이 우리 정당사에서는 다반사로 빚어져왔다.

이러한 문제는 차기 대통령후보 선출과 관련하여 여야가 공히 안고 있는 문제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에서는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 아니면 최소한 당내 최대 주주인 동교동계의 의중에 따라 차기 후보가 결정되지 않을까.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에서는 누가 과연 이회창 총재와 실질적인 경쟁을 벌이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자 우려이다.

그리고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그 공간에 막상 국민의 의사가 끼어들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정당의 대통령후보를 그 정당의 대의원들이 선출하는 것은 정당법상으로 조금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통로가 없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공당을 자임한다면 일국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데 있어 국민의사를 배제하고, 계파의 이익과 의사만을 우선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당적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 정당정치에서 이러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당정치가 극복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앞에서 정당 대의원들의 발상의 전환만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막연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1997년 국민회의의 대통령후보 선출을 앞두고 당내 비주류에서 미국식 예비선거제의 도입을 주장했다가 비현실적이라고 일축당했던 일도 있었다.

정당의 대표자 선출과 대통령후보 선출에 있어서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도의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2002년의 16대 대통령선거 때에는 각 정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에 국민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각 정당의 후보선출이 계파의 줄세우기 경쟁으로 전락하여 '자기들만의 축제'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통령후보 선출에 있어서 국민적 지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이인제 최고위원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타당성을 갖고 있다. 단, 국민적 지지를 받는 사람이 반드시 자신임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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