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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돌베개 출판사 사무실에서 동료 기자가 '도서정가제 사수' 입장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시간, 나는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울 충무로 4가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첫 인상은 온통 '책'. 2층부터 4층까지의 사무실은 물론 복도와 계단까지 책이 쌓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5천 여권의 책이 거래된다. 2천 평이 넘는 대형서점에서나 가능한 책 거래량이 인터넷서점에서는 매장 하나 없이 가능하다. 하지만 출판계와 서적 도매상의 책공급 중단으로 인터넷 서점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책을 팔지 않을 수는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소매상에서 책을 사다가 팔고 있다고 주위에서 말하고 있다. 이런 갈등의 고리는 '도서정가제'.

미리 약속을 했건만 조유식(36·인터넷 서점 알리딘 대표이사) 씨는 자리에 없었다. 갑작스런 약속에 여의도라며 전화가 왔다. 조씨는 여의도에서 오는 중이라고 했다. 결국 '도전적 격돌 인터뷰'의 다른 한쪽은 여의도와 충무로 중간지점에서 이뤄졌다.

관련기사 : [격돌인터뷰1] "인터넷 서점은 반칙을 하고 있다"

- 지난 16일부터 인터넷서점에 직접거래가 중단됐다. 당장 운영이 어렵지 않은가.

"직거래하는 출판사가 5백여곳 되는데 일부 메이저 출판사들이 직접거래를 중단한 것이 사실이다. 출판인회의에서 공식적 결의는 있었지만 모두가 참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애로사항이 있긴 하지만 주문 들어오는 책은 공급하고 있다."

- 전체 도서시장에서 온라인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1년 단행본 시장이 1조 5천억원 정도라고 했을 때 현재까지 3% 정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 도서정가제가 무너질 경우 양질의 책이 공급이 어렵고 상업적인 책들이 출판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오히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창작과 비평사'나 '민음사', '시공사'의 공통점은 좋은 책을 많이 낸다는 것이다. 노골적 상업출판이 성공한다고 보는 견해는 독자수준을 너무 낮게 판단한 결과다. 미국이나 프랑스를 봐도 경쟁체제 속에서 명성을 얻는 출판사들이 다 좋은 책들을 출판한다. 지구상에서 저질 책을 내는 출판사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전문서적은 앞으로 공급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텐데, 전문서적의 경우는 도서정가제의 문제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을 통해 정책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로 인해 양질의 책 공급이 어렵게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인터넷서점의 등장으로 소형서점이 몰락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소형서점 몰락은 수년간 진행돼 온 결과이지 인터넷서점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상태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중고생들이 학교 앞 서점을 두고 영풍이나 교보 같은 대형서점에서 가서 참고서를 사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도서정가제는 산업보호정책차원에서 한시적이지만 보장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광부가 입법예고한 '도서정가제'는 문제가 많다. 사법(私法)영역내에 있던 도서정가제를 공법(公法) 영역으로 만들어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 도서정가제가 파괴되면 책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고 경쟁적으로 할인을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가격은 시장의 조절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의 경우 책값이 우리나라보다 비싸긴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 90%가 정가에 팔린다. 베스트셀러 정도만 할인판매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책을 팔아서 23-24% 마진이 남는다. 출판사가 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가격을 높게 책정해서 마진의 폭을 대형출판사 쪽에 많이 갖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 기존의 출판시장 질서에 인터넷 서점이 끼어들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출판시장은 어음과 반품 문제로 여러 가지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인터넷서점이 그런 문제점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금으로 거래를 하지만 기존 출판시장에서는 '와리깡'이라고 하는 어음이 돈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이 들어와서 파이가 줄어들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인터넷서점의 등장으로 인해 책을 읽는 인구가 오히려 늘어났다. 인터넷서점은 이미 존재하는 파이를 빼앗는 역할이 아니라 파이 자체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 인터넷서점이 출판을 중심에 두지 않고 싸이트 인지도를 키워 코스닥에 상장한 뒤 펀딩을 통해 돈을 벌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적자를 감안하면서까지 무분별하게 할인율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책이 없을 경우 대형서점에 가서 구입해 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인터넷서점을 통해 머니게임을 벌인다는 말인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적자를 내는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흑자가 나지 않는 인터넷서점이라면 투자자가 지원도 하지 않을 텐데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느냐. 인터넷서점간 과도한 할인율 경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름대로 조절기능이 만들어질 것이다."

- 책 공급이 중단되고 도서정가제가 감행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도서정가제는 시행되어서도 안되고 시행될 수도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책 공급이 중단될 경우 인터넷서점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대형서점과 출판인회의가 출판사들에게 책 공급 중단을 반강제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만 출판사와 인터넷서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게 되면 이 부분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 이번 도서정가제 문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번 대결은 일종의 신경제와 구경제의 대결 혹은 산업보호주의와 시장경쟁체제와의 대결로 파악할 수 있다. 자동차판매와 보험의 경우도 같은 케이스라고 본다. 인터넷을 통해 자동차도 팔 수 있고 보험도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수의 고용이 걸려 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충격파를 최소화 하도록 연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속화해서는 얻는 이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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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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