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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너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인도에 대해 생각한다.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 강;
물 위 그림자 큰 새가
피안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기절해 쓰러져버린 인도 청년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가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히말라야 근처에까지 갔다가
산그늘이 잡아당기면 딸려 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에 대해 생각한다.

황지우 等雨量線 1 中


갓 스물이 된 소년의 가슴은 방향을 가늠하지 못 한 채 뛰고 있었다. 솟아나는 혈기를 달래러 스스로 혈을 끊어 피를 내는 준마처럼 무작정 세상을 찾아 발을 디딘 곳은 미지의 땅, 그리운 시인들의 고향, 피안의 해가 뜨는 인도였다.

어떻게 이 허접한 글로 그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인도에서 내 마음 속에 하나하나 고이 담아 가져온 것들은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하기 힘든 수많은 이미지들의 집합이다.

가난, 병듬, 여유, 느림의 美, 아름다운 자연,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것이라고는 쉬이 믿어지지 않는 조각들 - 타지마할, 사막, 목마름, 고통, 고뇌, 별빛, 라울라타의 진한 선율, 인도 소년 빈뚜, 인간그리고 또 인간...

이 모든 이미지들이 거대한 땅, 인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의 만분지 일도 되지 않는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게 영감을 주었던 몇몇 장소를 중심으로 그 이미지들을 서술해 보려 한다. 인도를 특정한 언어로 설명하려는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생애 처음으로 인간을 가져온 소중한 여행에서, 이 서투른 내뱉음 속에 그 커다란 형상들이 이 글을 읽는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작은 부분이나마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장소 하나,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 인도의 가난.

거대한 도시 안의 휘황찬란한 파라다이스, 이 곳의 방 중에 가장 싼 곳이 하룻밤에 미화 120달러라 했던가. 뭄바이에 도착해 한낮의 더위를 못 이겨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찾아 나선 곳은 이 곳, 뭄바이에 있는 타지마할 호텔이다. 인도에서도 웬만한 부가 없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인도 최고의 호텔. 그 거대한 건물을 뒤로 하고, 조금 떨어져 그 정문 밖 열 걸음을 걸어 나오면, 인도의 현실을 리얼하게 볼 수 있다.

인도의 수많은 거지들. 피고름이 머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아이를 안고 1루피(30원 정도)를 바씨씨(동냥)해 달라는 슬픈 표정의 어머니, 길가에 즐비하게 널부러져 잠을 자고 있는 내 힘없는 형제들, 때묻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힌 3살박이 귀여운 아이를 한국에 데려가 키워 달라는 가난한 나의 아버지... 무언가 가슴속에서 몸서리 치는 답답함.

타지마할 호텔 안에서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부 석유 상인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저 밖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나에게 준 대답은 "그들이 싫다. 혐오스럽다." 이 불평등의 관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가난이라는 직접적인 삶 안의 부딪히는 고통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한 번의 잠에 150달러(약 7000루피)를 소비하는 사람들, 하루를 7루피(200원 정도)로 연명하는 사람들.
인도의 빈부의 격차는 우리가 접해 오던 것 이상이다, 우리가 그나마 얼마나 행복한(?) 상황 안에 살고 있는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하나의 인간의 모습을 만난다. 수천 년간 누구나 없어지길 꿈꿔왔으나 이제껏 인류사의 어떤 천재도 제대로 된 해답을 내리지 못했던 불평등의 관념들.

풀리지 않는 인간적 고뇌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아름다움을 만났다. 타지마할 호텔 앞에 있는 아라비아 해. 배를 타고 먼 섬을 찾아가다 바다의 빛깔에 도취된 나는 작은 글을 띄워 바다 위에 선물해 본다.

바다라 부르지 않으리
푸른 햇살들이 넘실대는 이 곳,
나는 하늘을 날고 있네.

검은 살빛 부벼 대며,
멍든 어깨를 부딪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품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쉬네

아라비아 해는 새로운 꿈들을
내 가난한 입에 떠 넣어주고

이 곳은 인간의 고향, 사람의 땅.
아름다운 섬은 연록색 공기를 뱉어내고

이 곳의 한 어린 영혼은
세상에 다시 도약할 날개를 펴고 있네...

장소 둘, 7/7 엘로라 사원, 데칸 고원. 광활한 자연, 그리고 인류의 보고. 무한히 작아지는 나.

데칸고원의 넓은 평지 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운 여름철의 시원한 단비는 흙 위에 어렵게 자라난 들풀들을 거쳐 나의 가슴마저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 하였다. 엘로라 사원에 도착했다. 인도에는 아잔타와 엘로라 두 개의 유명한 석굴 사원이 있다. 이 곳엔 인간의 조각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 거대한 상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인도의 힌두 신화에서 비롯된 여러 모티브들을 조각한 상이었는데, 검은 현무암질의 돌을 깎아 내린 그 수려함과 웅장함은 내 눈을 압도한다. 80미터 높이, 7000명의 사람들이 150여 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이 거대한 조각.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 인류의 보고인 소중한 상들이 칼을 들고 정복을 외치며 포교를 하던 회교도와의 전쟁에서 얻은 많은 상흔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곳 저곳 파괴된 아까운 불상들을 바라보며, 인간의 이기와 어리석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거대한 코끼리 상 앞에 선 순간, 나 자신이 무척 작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고작, 한 육체 안에 맺힌 가난한 인간의 모습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로만 듣던 인도의 데칸고원은 광활했다. 인도는 우리의 작은 기준들로 보면 측정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데칸고원이다. 우리 남북의 땅덩이들을 합쳐 논 것보다 훨씬 넓은 그 고원이 비록 한 눈에 모두 들어오지는 않지만,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아득한 저 피안의 땅은 설명하기 힘든 설레임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장소 셋. 카주라호. 性, 자본의 물결, 그 안의 인도

카마수트라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소녀경, 완전한 결혼과 더불어 세계 3대 고전서로 불리고 있는 바로 그 책이다. 교통이 그리 발달되지 않아, 비포장 도로를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카주라호에 들어갔다. 우리 보통 버스 크기에 사람이 200명은 탄 것 같았다.

기진 맥진한 상태에서 근처에 있는 인도의 유일한 한국인 식당을 찾는다. 인도의 고유의 독특한 향료인 맛살라의 거친 향 때문에 한국의 수제비며 라면들의 맛을 흉내낸 것들이 제대로 된 맛을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랜 만에 먹어보는 한국 음식에 몹시도 기뻐했다.

카마수트라, 인도의 고전 性書. 원래 귀족들의 바람직한 성생활을 위해 지어졌다는 이 책 안의 성교하는 모습들이 커다랗게 조각이 된 상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그 희한한 성교의 장면이 그려진 상들 앞에 어느 덧 기이한 상상 속에 나래를 펼치는 나를 발견한다. "아, 나도 욕정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인간인가."

아쉬움이 앞선다. 그 곳의 아름다운 섹슈얼리즘은 어느덧 본능이 앞서 내 생각과 판단의 기능들을 빼앗아 버려, 젊은 혈기를 다스리기에 꽤나 힘들게 했다. 性이라는 새로운 생각의 모티브들을 얻어온다. 다분히 육체적 본능이 앞서는 이 생각들에 대하여 어떻게 어떤 원칙들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건지 참 어렵다. 앞으로 살아가며 계속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잘 알려진 인도의 유명한 장소들은 인도 고유의 순박하고 따뜻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도에서 마주치는 저 선한 눈빛의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 이방인들의 발걸음이 쌓이다 보면, 금세 자본의 때를 묻히게 된다. 이 곳에도 이미 여행객들의 가방을 노리는 많은 사기꾼들이 있었다. 너무나 아쉽다.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인류의 마지막 양심인 이 곳 역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던 게다.

라슈미라는 아름다운 인도 소녀를 만났다. 17살의 이제 막 꽃이 피어나는 건강한 얼굴이었다. 이 곳의 여자들은 하나하나 인형같이 예쁘다. 검은 피부에 쌍커풀 진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두 커다란 눈망울, 오똑 선 코, 작은 얼굴. 여행 중의 작은 설레임을 던져준 그 여자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여정에 쫓기어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장소 넷. 부다가야 내 좋은 인도인 친구. '소월'과 '진달래'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불교의 메카인 이 곳에는 한국인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밥 한 그릇의 넉넉함' 이라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그 곳에는 빈뚜라는 17세의 영리한 인도 아이와,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7살 난 정말 귀여운 여자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Sweety... 빈뚜라는 아이와 나는 많은 시간이 없이도 금새 친해졌다.

헤진 건물의 옥상에 올라 바람이 휙 하고 불면, 눈 앞에 바로 다가서서 내 가슴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별과 그 별을 스쳐가는 바람을 맞으며, 그에게 인도가 가진 가난의 현실, 그의 생각이 다다르지 못하는 더 커다란 세상의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내 희망의 포부와 늘, 언제나 그렇게 성장하고픈, 내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사는 동안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그가 말했다. 비록 그리 부유하지 못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러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그 희망이 짙은 목소리는 내가 가진 것들과,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의 나태한 마음을 자극했다. 떠나는 길목에서 나는 그 인도 친구들에게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한국인 이름을 선물해 주었다. 빈뚜에게는 '소월', 그리고 그의 어여쁜 동생에게는 '진달래'라는 이름을.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지금도 다른 한국인들이 오면, 그 이름으로 자신들을 소개한다고 한다.)

장소 다섯, 바라나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곳.

이 곳의 기억은 내 한 겁의 생 속에서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다. 어머니의 강.

이틀을 앓았다. 고단한 여행에서의 피곤, 탈진, 구토, 설사, 고열을 동반한 아픔. 그리고 이 곳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이 먼 곳, 낯선 땅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 반갑게 맞아주는 이 하나도 없는 갠지스 강 아래에 흩어질 나의 주검. 가족들의 얼굴이 어지러운 천장 위에 새겨지고 두려웠다.

살고 싶었다. 두려운 마음은 여호와를 찾았지만, 신의 은총으로도 그 맺힌 두려움은 쉬이 씻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없는 이틀의 고열에 찬 싸움 끝에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젊은 몸은 고맙게도 회복이 무척 빨랐다. 이틀을 굶은 비몽사몽 한 정신을 가지고, 갠지스 강 나룻 배 위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곁에는 나무장작에 산화되고 있는 주검이 아침햇살의 축복을 받으며 하늘로 하늘로 타오르고 있었고, 그렇게 또 새롭게 떠오르는 햇빛을 바라보며,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은 생각을 했다.
'아, 너무나도 고마운 나의 살아있음이여.'

갠지스 강은 인도에서 '강가'(어머니)강이라 불린다. 어머니의 강. 강가의 낡은 건물들 속에는 죽음의 의식을 거쳐 새로운 윤회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웃음을 짓고 있다. 시바의 영험한 은총인가. 이 곳에 서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제껏 인류의 역사 안에 수많은 종교적 영감을 가진 천재들이 그들의 새로운 실험 속에 지우려 했던 죽음의 고통, 고뇌마저 아무 것 없이 자연스레 씻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인도가 지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生의 정신이리라.'

나는 이 곳에서 삶과 죽음의 나누어지지 않는 경계를 보았다. 나의 죽음의 의식 역시, 이 곳에서 그 편안함 속에 그들과 함께 맞으리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승과 저승의 하얀 불꽃,
그 사이로 하얀 연꽃들이 피어오르고
하늘로
저 인간사의 번뇌를 지울 푸른 하늘로
나는 연기가 되어 솟아오르다'

장소 여섯, 타지마할. 사랑의 힘 혹은 인간의 광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세계의 불가사의, 타지마할. 샤자한 왕이 자신의 부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22년간 그 당시 돈으로 500만 루피라는 엄청난 돈과 1000여 마리의 코끼리를 보내 중국, 러시아에까지 손을 뻗쳐 돌을 가져와 지었다는 건축물.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하늘은 간간히 비를 뿌리고 있었고, 나는 타지마할 무덤 위에 앉아 주체할 수 없는 영감, 또는 아름다움에 취해 마구 글을 썼다.

타지마할 연가 1.

내 그대를 잊지 않으리다.

내 생애 가장 큰 기쁨을 안겨주고
내 곁을 떠나 버린

내 사랑, 그대를 잊지 않으리다.

무엇으로 이 사랑을 말하리오
무엇으로 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으리오

내 사랑, 내 갈 곳 모르는 여인이여...

그대 위해 집을 지으리다
온 세상 사람들이 와서 그대를 찬미하도록
당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도록 그대를 위해
내 온 힘을 다하여 집을 지으리다...

그 안에서 그대는 영원을 가져가시오.

억겁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대여

내 영혼의 집...
이 곳에 머무르오.

타지마할 연가 2.

백색의 돌 위에 새겨진
한올 한올
이름모를 꽃들의 향기에...

내 사랑아..
내 가슴이 젖어드는 구나...

이른 새벽.
찬이슬 홀로 맞으며 자라난

밟히며 꺾여온 만삭의 들풀 같은
우리의 사랑...

머언 시간의 흐름 끝에
저 동방에서 건너 온
이름 모를 하얀 산발머리의 노인네가...

그댈 향해서만 치켜든
상처 난 이 생목을 꺾어줄 때까지...

내 사랑아
난 이 울음같은 사랑을 지켜내리라...

사랑의 힘인가, 인간의 광기인가. 문득, 난 이 신비로운 아름다움 속에 뼈를 묻고 말았을 수 많은 풀꽃들의 울음이 아직 사라지지 않음을 들었다.

장소 일곱, 자이살메르 붉은 사리를 보다. 그리고 옷을 벗다.

자이살메르는 사막 안의 성곽도시이다. 예전부터 사막이라는 지형적 조건과 잦은 전쟁 안에서 만들어 온 사람들의 기질이 무척 강한 곳이다. '친구(임충규)'로부터 이 자이살메르에 흐르는 슬픈 전설을 듣고, 한낮의 뜨거운 사막을 바라보다 지쳐, 작은 방에서 잠이 들었다.

문득 잠결에 붉은 사리를 입은 여자가 창틀 위에 걸터 앉은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의 느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곤한 마음은 잠을 몰아왔고 나는 그 사리 입은 여자를 무시하고 잠이 들었고, 일어나 나중에 붉은 사리를 입은 여자에 대해 여관의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놀라운 사실. 내가 묵었던 그 방에 그 자이살메르의 슬픈 전설 안에 희생되었던 귀신들이 그 방에 자주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온 몸에 털이 쭈뼛했다. 어쩐지 방 값이 그렇게 싸더라니...

쿠리 사막에서 사파리를 했다. 낙타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여 사막을 걷는 것이었다. 처음 낙타를 타기란 몹시 힘들었다. 다리 가랑이 사이가 많이 아팠다. 무엇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갈증이었다. 물을 자주 들이켜도 내게 남는 것은 역시 끊임없는 갈증뿐이었다. 사막의 갈증이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는 그 때서야 처음, 내 온 몸과 마음으로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에 데일까봐, 온 얼굴을 붉은 천으로 가리고 다녔다. 사막 이 타는 목마름과 살을 익히는 뜨거운 바람. 그제서야 말로만 듣던 사막이란 곳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사막, 목마름, 타오르는 태양'이라는 소중한 체험의 시어를 얻게 온다. 밤이 되었다. 흔히 몹시 춥다고 알려져 있는 사막의 밤은 상상 외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바이올린을 닮은 라울라타의 애조를 띈 흥겨운 선율과, 하늘을 가득 메운 달빛에 마음이 움직인 나는 무언가에 취해 모래 언덕을 넘었다. 그리고 넓은 모래 바다 위에 걸친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그리고 달렸다. 달리다, 지치면 모래 위를 기어 다녔다. 흙의 감촉과 모래 바람. 달빛. 나는 비로소, 자연 안의 순수한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오직, 온 몸을 흐르는 가는 모래의 감촉과 두근대는 심장. 이성은 마비된 채, 밤하늘에 소리를 질러대며, 그렇게 나는 쿠리 사막 한 복판에 '살아'있던 것이다.

절망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달빛 젖은 사막의 모래들은

거센 물음들로 비가 되어 돌아온다.
흩어진 달무리는 내 잠겨진 영혼을

한없이 취하게 만들고...

이 곳, 모래 언덕 위에서
나의 삶을 그린다.

찾아볼 수 없는 희망.
차가운 육신의 고갈 속에...

이 곳 한낮의 더위에 숨을 거둔
처절한 삶의 영혼들이
서쪽을 향한 바람에
눈물을 닦고

나는 바람 잠든 이곳에
내 지친 맘을 묻는다.

- 쿠리 사막에서 -

내 스무 해, 인도에서의 기억을 나열하자면, 긴 밤을 새워도 모자를 것 같다. 간소한 언어들로 우선 짧게 이렇게 갈무리를 지어 본다. 처음 본 세상, 느림의 죄가 되지 않는 여유로움, 광활한 대지, 우리처럼 모든 것에 확실하게 정해진 사회의 룰 같은 것이 없어 아직, 그만큼 순수한 인간의 나라.

그리고 떼어버릴 수 없는 가난에 대한 직접적인 상념, 그리고 이곳 저 곳에서 만났던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아무 것 없는 붉은 심장의 젊은이들. 이 세상에 무엇이 되어 흘러갈 것인가. 나는 왜, 이 발가벗은 세상에 몸을 던지고 말았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 갇힌 육체 안의 삶에 어떻게 정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자연, 인간의 그림자들은 다 무엇인가. 살아있음. 아! 나는 살아있음. 결국 찾을 수 없는 삶의 진리의 형상, 나는 그것을 찾기 위해, 지금도 모순된 인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지도...

나와 닮은 젊은이들이여.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홀로 인도에 다다르라. 그리고 다가서서 거대한 인간의 세계 안에 젊음 그 하나의 힘으로 취해 버려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의 生을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학생들이 만드는 인문, 문화, 예술 웹진 '미인'에서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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