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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철천지 원수'였던 미국의 대통령이 북한땅을 방문하게 되었다.

12일 발표된 북한과 미국의 공동성명은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성명은 6·25 전쟁 이후 반세기동안 지속되어온 북한-미국간의 적대관계 종식을 공식 선언하였다. 또한 성명은 6·25 전쟁을 공식으로 종식시키는 방도를 '쌍방'이 찾기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정말 가슴떨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닐 수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두 국가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는 한반도 질서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대사건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서로를 향해 가장 호전적인 자세를 보여온 두 국가의 화해는,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고 있다.

이번 성명의 내용은 전문가들의 예상조차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동안 많은 분석가들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서의 주도권 행사를 위해 남북한 관계개선에 속도조절을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북한 역시 내부적인 결속을 위해 미국과의 일정한 긴장관계는 남겨둘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성명은 이러한 예측들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이었다. 북한과 미국은 정공법을 통해 한반도 새 질서에서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정면돌파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기존의 것을 지키기 위해 늦추고 피해가는 소극적 방식이 아니라, 변화의 계기를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질서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대단히 적극적인 전략적 선택에 나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번 성명의 내용을 대단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가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며, 변화를 주도해나갈 태세는 더욱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부끄러운 일이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속도조절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과 미국은 분명 속도조절을 하지않고 속도위반을 한 셈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당사자들이 많은 과정과 절차를 생략하고 일거에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결단을 내렸는데, 그것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이쯤되면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 그동안 제기되어온 속도조절론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당장 뒤따라올 차는 없을터이니 천천히 가라고 운전자 옆에서 누군가가 잔소리하는 사이, 다른 차들은 추월하여 저만큼 가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북한과 미국의 이번 공동성명은 그간의 속도조절론을 무색하게 만든 셈이다.

굳이 이번 성명이 아니었더라도, 오늘의 한반도 상황에서 인위적인 속도조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며, 또한 굳이 필요하지도 않다. 물꼬가 일단 터져 물줄기를 만들며 흐르기 시작하고 있는데, 흐르는 물의 양을 무슨 수로 조절할 수 있겠는가.

화해와 협력의 물길이 계속 흐르게 놔두면 되는 것인데, 무엇을 위해 굳이 속도조절을 해야하는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 남북간에 진행되는 일들을 질서있고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과, 속도를 늦추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문제임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최근 제기되어온 속도조절론은 우리 사회 일부 계층의 막연한 불안심리를 자극하여 대북정책의 원활한 전개를 정치적으로 견제하려는 포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속도를 붙이기 위해 계속 공을 들여야 할 때이다. 속도를 붙이려고 애를 써도 여러 장애물 때문에 속도가 늦어지는 것이 남북관계이다.

미국 대통령이 평양땅을 밟겠다는데, 더 이상 속도조절을 말하고 있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반도에서 진행될 거대한 변화의 관객이 아니라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발상의 전환부터 이루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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