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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

여름을 못 잊어 하던 9월이 마른 그림자 하나 남기고는 새벽 호수 같은 10월로 길을 떠나려 합니다. 오늘 아침엔 지난밤 바람이 쓸고 간 결 따라 흩어진 구름들이 이내 또 그 바람 따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구요.

9월이 남겨놓은 사무치게 푸른 그 아침하늘엔 이내 은빛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나올 것만 같습니다. 저기, 물방울 튀기며 다시 몸을 숨기는 은빛 물고기 꼬리를 따라 그 하늘 연못 속으로 그리움 하나 고여들고 있어요.

이런 날이면 12시로 가는 네이비 불루 내 차를 타고 키 큰 나무들 속에 구부러진 길을 따라 마냥 흘러가고 싶어집니다.

스스로 나뉘지 않는 시간을 분초로 조각조각 나누며 어디론가 달려가던 일상을 가만히 내려놓고. 아무리 애써도 만나지지 않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온종일 유리처럼 부딪히던 생각들과 취향에도 욕심 두지 않고.

어드벤츄어스 인 굿 뮤직(Adventures in Good Music)을 운전하는 웨이브 나이니 포인트 원(WABE 90.1) 닥터 카알 하스, 울려오는 낮은 목소리를 친구 삼아서. 지금, 그가 소개하는 안네 소피 무터의 바이올린에 발갛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 끝이 떨리고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가을이지요?

이 가을과 함께 오늘은 당신을 네이비 블루 내 차에 태우고 호박 농장으로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네? 분위기하고 어울리지 않게 무슨 호박 농장이냐구요? 왜냐면 여긴 지금 호박세상이 오고 있거든요. 할로윈.

내일이면 10월이니까 집집마다 문 앞에는 삼각형으로 오려놓은 눈에 저마다 불을 켠 '잭 오 랜턴'(Jack-O'-Lantern)들이 자리를 틀고 앉을 것이고 또, 몇 주 후에는 펌킨 파이를 굽는, 혹은 데우는 냄새가 풍겨 올 때니까요.

지금 상점에는 각양각색의 무서운, 혹은 귀여운 귀신들이 벌써 진을 치고 앉아 있답니다.

앞에 소개한 가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구요?

가만, 입은 다물고 듣기만 하면서 글쎄 끝까지 따라와 보세요. 호박 농장 여행 끝이 그렇게 호박 같은(?) 분위기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자, 시작합니다. 준비되셨지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셔야 합니다. 빨리 달려 갈지도 몰라요. '수직으로 선 길'을 올라갈 때도 있습니다. 창문을 열고 가을 나무 향기를 맡으며 머리카락 한번 휘날려 볼까요?

우리는 지금 애팔래치안 산맥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버트 농장(Burt's Farm)으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애틀란타 북쪽에서 400번을 타고 도슨빌(Dawsonville)과 게인스빌(Gainesville) 사이를 지나 왼쪽으로 달로네가(Dahlonega)로 꺽어집니다.

거기서부터 한껏 내달리면 아미카롤라 스테이트 파크(Amicalola St. Park)가 나오고 바로 그 근처에 버트 농장이 있는 겁니다. 이쪽으로 나오니 단풍색이 제법 들려는 것이 떨어지는 낙엽도 한결 운치가 있습니다. 벌써 한 시간이 삼십분이 지나갔네요.

너무 빨리 왔다구요? 얼른 보고 가야 하거든요. 세 시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그 시간엔 엄마가 집에 있어야지요. 아이들이 집에 못 들어가고 남의 집 찾으며 울고 다니면 되겠어요?(사실, 바쁜 엄마 덕분에 그럴 때가 있었답니다. 딱 한번.^^)

자, 이제 내려서 허리를 펴시고 호박 농장으로 들어가 보지요.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제 손을 잡고 싶으시면 여기 있습니다. 오늘은 한번 잡혀 드리지요.

자, 들어 갑니다. 얘네들이 바로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호박들이랍니다.

ⓒ 장성희
어! 그런데 이건 뭘까요?
Please
DO NOT
STAND ON
SIT ON
KICK
OR
DROP PUMPKINS
이라는 사인이 보입니다.

아마 주말에는 아이들이 많이 와서 앉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떨어뜨려 보기도 하나 봅니다.

근데 참 이상하죠? 이 간판을 보기 전까지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이걸 읽고 보니 갑자기 이 큰 호박 위에 앉아 보고도 싶고, 발로 차보고도 싶고, 한번 들었다 놔 보고 싶어지는 건 왜 그럴까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 장성희
이 큰 호박들은 50 달러까지 하는 것도 있답니다. 속을 파낸 다음 삼각형으로 눈과 입을 만들고 안에 불을 켜 놓는 바로 위에서 말한 '잭 오 랜턴'을 만드는 펌킨이지요.





ⓒ 장성희
이것들은 파이를 만드는 펌킨이랍니다. 잘 만들 줄 아느냐구요? 아뇨, 한번도 안 구워 보았습니다. 만들어 놓은 것 사다가 데워만 먹어 보았지...




ⓒ 장성희

아이쿠, 이건 제가 무슨 호박인지 모르는 거네요.






ⓒ 장성희
이것들은 무엇이냐구요? 원하는 호박을 픽업해서 담아 나르는 일륜차들입니다. 호박이 워낙 크니까... 15살 이상이 되어야만 이 차를 끌 수 있다고 써 있네요. 이제 저쪽으로 더 들어가 볼까요? 더욱 찬란한(?) 호박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 장성희
자, 보세요. 이건 커쇼(Kershaws)라는 호박입니다.






ⓒ 장성희
이건 허바드 스쿼시 (Hubbard Squash)구요.






ⓒ 장성희
이건 버터컵 스쿼시(Buttercup Squash). 버터컵같이 생겼죠?






ⓒ 장성희
그리고 요것들은 에이콘 스쿼시(Acorn Squash). 정말 도토리들 같네요.








ⓒ 장성희
그리고 이건 카니발 스쿼시(Carnival Squash).







ⓒ 장성희
얘네들은 버터넛 스쿼시(Butternut Squash)








ⓒ 장성희
여기까지는 스쿼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미니 펌킨이구요. 집 안에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하지요.




ⓒ 장성희

요것들은 너무 예쁘죠? 바로 베이비-부(Baby-Boo)입니다. 멀리서 보면 꼭 통통한 마늘인 줄 알겠네요. 호박이랍니다.





ⓒ 장성희
이것은 스푼 고어드(Spoon Gourd)이구요. 숟가락처럼 생긴 조롱박이다 뭐 그런 뜻인가 봐요.






ⓒ 장성희
이것은 커다란 고어드만 모아 놓은 곳이에요.
여기까지 어떠셨어요? 호박에도 참 여러 가지가 있죠? 저는 얘네들을 보면서 잠시 이런 딴 생각이 들었답니다.

펌킨이 스쿼시한테 너는 호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스쿼시는 펌킨보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제가 여기까지 바람 쏘이러 와서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 어제 읽은 기사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로 어제 썬데이 일레븐 오클락이 미국이 이쪽과 저쪽으로 나눠지는 바로 그 시간이라는 글을 보았거든요. 일요일 11시 예배시간이 흑인은 흑인대로 백인은 백인대로 인종과 신앙 따라 일제히 나눠지는 순간이라는...

"Red and yellow, black and white/ They are precious in his sight/ Jesus loves the little children of the world."라는 찬송가가 무색해지는 시간이라는...

물론, 교회마다 다 그런 건 아닐테지요. 지금도 인종문제가 심각하다는 뭐 그런 얘기, 특히 개인적인 편견이 문제라는...

하기야, 여기도 다 종류별로 나누어 놓긴 했군요. 그러나 펌킨과 스쿼시가 스스로 나뉘지는 않았겠죠. 사람들이 나누어 놓았을 뿐이지.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이제 잠깐, 숨을 돌리세요. 제가 앞에서 끝까지 가보면 전혀 호박 같은 분위기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했죠?

ⓒ 장성희
바로 이걸 찾아냈다는 것 아닙니까. 마구 쌓아놓은 호박들 사이에서.

어떻습니까?
한 쌍의 백조 같은 모습 아닙니까?

저는요, 바로 이걸 찾아 카메라에 담는 순간, 시간은 때때로 새처럼 날아가고 달팽이처럼 기어가기도 하지만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시간이 빨리 가는지 천천히 가는지 모를 바로 그 때라고 말해준 이반 뚜르게네프(이름이 맞나 모르겠습니다)의 그 행복한 시간을 만나고 왔습니다.

가을입니다. 우리 사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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