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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도리춤이 어떻게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테크노 음악에 일률적인 동작으로 춤을 추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 많지는 않을 것이다. 트렌드의 움직임이 미치도록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우리네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나 같은 비주류가 어디 어디 화장실 변기에 얼굴을 박고 숨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의 테크노 바에서 덤블링을 하듯 위로 방방 뛰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혹은 기괴한 눈빛에 몸을 비틀어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자유스럽게 추는 것이 테크노 춤이구나 했었다. 온 집안의 문을 꼭꼭 닫고, 테크노 트랜스의 볼륨을 맥시멈으로 높인 후 마리화나를 피워대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일부 유럽 젊은이들이 듣는 음악이 테크노가 아닌가 의심도 해 보았다. 런던의 모든 레코드점마다 한 벽을 가득 채운 테크노앨범들을 일일이 만지작거리며, 이 중의 어떤 것을 사서 들어야 하는지 고민도 해보았다.

나는 테크노가 무엇인지 모른다.
단지 '아! 테크노다!'하며 무너질 뿐이다. 테크노를 듣고 있으면, 심연 가득히 내뿜어져 나오는 낭만적 광기를 느끼게 된다. 나의 일부이지만, 소극적 회기로서의 나, 받아들일 수 없는 나를 만들고 싶을 때, 테크노를 꺼내 들으면, 또 다른 나를 복제하는 과정이 어렵지만은 않다.

진한 화장을 하고, 바지를 골반까지 내려입고, 배꼽에는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한 팔뚝이 잘 보일 수 있게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걸쳐 입는다. 맥주에 싸구려 보드카를 섞은 술에 취한 나는 현란한 조명 아래 서서,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춤을 춘다. 방방 뛰기도 하고, 행위예술을 하듯 움직여보기도 하고, 거울 앞에 붙어 땀으로 습기찬 등을 부비어 보기도 한다.

two
▲ 잭슨, 심우찬의 앨범
ⓒ 문화강국


어김없이 추락하는 허구의 나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다른 음악을 들을 차례다. 하지만 테크노음악은 내 귀를 빙빙 돌며 어디선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 산 앨범을 꺼내어 본다.

"Rain"... 앨범의 제목이다. 그 제목 뒤로 고개를 약간 숙인 그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잭슨(Jackson), 본명은 심우찬이다. 쟈켓을 넘겨본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고, 단지... 그가 기타를 안고 있다.

three
▲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 단지..
ⓒ 문화강국

그의 프롤로그가 쓰여져 있다.

'너무 서두른 게 아닐까'
나만의 앨범을 갖는다는 것..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일이다.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 만큼의 아쉬움 또한 남는다. 좀 더 객관적으로 내 음악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음악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내 음악을 듣고 본전 생각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내 앨범을 돈주고 산 분들에게 약간 죄송한 맘이 앞선다.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발이 보인다. 비를 맞고 있는 두 발, 그리고 그의 미소가 옆으로 기운다. 한 장을 더 넘겨본다. 그의 혼잣말이 끄적끄적 쓰여져 있다.

나를 위한 음악.. 남을 위한 음악.
내가 음악을 만들 땐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나를 위한 음악.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다. 누가 좋건 말건 그냥 내 만족을 위해 만든다. 내가 듣기 좋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을 위해 붕어빵을 찍어낸다...
...................... . . .
결국 섞어찌개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3단 논법.

윤상의 모던함이 좋았다. 유희열의 편안함이 좋았다.
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난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나는 쟈켓을 덮고 그를, 잭슨을, 심우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첫 곡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우리나라를 도리도리 돌게 했던 현란하고 정신없는 테크노음악과 달랐다. 영국에서 간간이 들었던 정통 유로 테크닉의 느낌이 든다.

화려하지도 않고, 장식적이지도 않고, 심플하고 모던했다.

four
▲ 그의 웃음이 기운다
ⓒ 문화강국

테크노를 위해 현란하게 복제해낸 또 다른 '나'는 필요없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는.. 나는 허구의 거울을 깨고, 본연의 나로 다시 돌아왔다. 피어싱을 할 필요도 문신을 할 필요도 없다. 실험적인 테크노를 추구하는 이 겁없는 신세대 뮤지션의 음악은 테크노가 광기의 음악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저 보이스 없는 깔끔한 음악, 듣기 편한 테크노였다. 이제 더 이상 테크노를 알기 위해 화장실 변기에 얼굴을 박고 있을 필요는 없게 된 것 같다.

- 잭슨(심우찬), 그의 앨범은 인터넷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 곡소개
환상속의 그대 / Fly! U.K.A /Rain / Love / Virus 303 / Take my hand / No more tears / Little sexy boy / Alone again

덧붙이는 글 | <문화강국 www.sorigol.co.kr>
문화강국은 대중에게 자신의 곡을 발표하고 싶어도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장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훌륭한 곡들을 가진 음악인을 인터넷에서 발굴하여 음반제작, 홍보하는 인터넷 레이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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