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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을 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려서 <골목책방>에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걷기엔 좀 먼 거리인 듯하죠. 감리교신학대학교로 올라가는 길도 지나가고 길 건너편에 있는 옛책방 <연구서원>도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노라면 큼직하게 벌여져 있는 저잣거리 들목을 만납니다.

그냥 큰길을 따라가면 큰길에서 저자통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골목책방>으로 쉽게 갈 수 있죠. 그러나 서대문역쪽에서 갈 때면 으레 이 저자통을 지나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쑥떡을 저자통 지나가며 사먹을 수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냄새를 함께 할 수 있어 좋거든요.

지난 일요일. 바로 어제네요. 냉천동에 있다는 방을 보고나서 <골목책방>을 찾아갔습니다. 이달 끝물에 방을 빼고 나오며 새 곳으로 가려다 냉천동을 알아보았는데 재개발 위험이 있지만 자리는 참 좋더군요.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이 있는 누하동 사직공원부터 광화문쪽까지 시원하게 잘 보이는 터에 방이 있어요. 방은 그야말로 달동네 중턱에 있답니다.

방을 다 보고 터덜터덜 시장통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언저리가 환해집니다. 왜 그러지 하며 위를 바라보니 지난 칠팔월 사이에 이곳에 지붕을 얹는 공사를 했더군요. 이곳 저자통은 가게마다 대강 차양막 비슷하게 어지러이 올리지만 비 오는 날이면 줄줄이 비가 새서 파는 사람도 애먹고 사러오는 사람도 애먹었거든요. 높직하게 지붕을 올려서 하얀 천으로 대놓으니 저자통이 한결 밝고 더 넓어 뵙니다.

이렇게 저자통 거의 끝까지 다 와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로 나가면 <골목책방>이 보이죠. 낮밥 때쯤 되었을 겝니다. <골목>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올림픽 경기를 봅니다. 계 순희 선수가 나와서 상대 선수를 손쉽게 한판승 하는 모습이 나오네요. (계 순희 선수는 이튿날 판정으로 4강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골목> 안쪽 가게에 있는 책을 먼저 볼까 하다가 안쪽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먼저 바깥에 있는 책들을 살핍니다. <골목>은 안쪽 가게는 조그맣지만 바깥, 그러니까 저자통으로 들어가는 길목 두 편에 책장을 놓고 책을 꽂고 쌓아두고 있기에 무척 넓다는 느낌이 듭니다. 바깥에는 일반 책, 종교, 기술-수험서, 어린이책, 잡지, 일본 요즘 책 들이 있고 안쪽 가게에는 관공서에서 펴낸 책자와 자료, 옛책, 일본 옛책, 낱말책이 있습니다.

칠월 가운데 무렵 오고 두 달만에 와서 보니 안쪽 가게엔 레코드판을 벽쪽 책꽂이에 가득 꽂아두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바로 코앞 책장에도 레코드판을 줄줄이 꽂아두었더군요. 그 옆은 책들을 아직 갈무리하지 못하고 그냥 어지러이 놔두셨습니다. 안쪽 가게에 레코드판 놓는 자리를 새로 만들어 가고 있는 징검돌인 듯 싶습니다.

저는 바깥 책꽂이에서 <사진과 평론 1집,사진과평론사(1980)>과 <방송문화진흥회-시민이 생각하는 방송,한울(1999)>을 건졌습니다. <시민이 생각하는 방송>은 시민들이 좋고 나쁜 방송을 가려내며 왜 좋은지, 왜 나쁜지를 꼼꼼히 밝힌 비평글을 모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99년에 나온 책치고 5000원이란 싼 값을 달고 있는데 방송문화회에서 출판지원금을 보태서 값이 이렇게 낮다는군요.

<사진과 평론> 1집 첫꼭지글로 실은 알프레드 스팽글러 사진 세계 이야기와 한 정식씨 사진 <서울(1)>이라는 사진들이 무척 괜찮네요. 한 정식 씨는 당신이 어렸을 적에 `납작한 기와집'들을 떠올리며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진 서울이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서울 사람들이 제 바닥 다 내어 주고 변두리로 밀려 나듯 그렇게 서울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나 보다" 하고 말합니다.

사실 지금 서울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적잖은 사람들은 계동이나 전농동 등지에서 `구옥(한옥)'이란 이름을 가진 낡은 집에서 살아가잖습니까. 오랜동안 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날이 줄어들고 사라지니 서울 토박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안쪽 가게에서 슬금슬금 책들을 뒤적이다 <한글학회-중사전> 하나를 찾고 토끼와 얽힌 속담을 자료로 담은 <국립민속박물관-토끼의 생태와 관련민속>을 집었습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조선일보 80주년 기념 시디롬>과 <월간조선 별책부록 대한민국 현행법령 전집 모음 시디롬>도 한 장씩 집었지요. <조선>이 자기들 창간 여든 돌을 맞이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는가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 돈은 좀 아까웠지만 무거운 책이 아니니 한 번 볼까 하고 샀답니다.

<골목>에서는 이런 자료들을 짬짬이 봅니다. <골목> 아주 가까이에 <경향신문사>와 <문화일보사>가 있는 까닭에 두 신문사에서 내는 출판물은 <골목>에서 거의 `지겹도록' 만난답니다. 한때는 동아일보사에서 자료편수국에 있던 40-60년대 자료들을 무척 많이 처분해서 좀 귀한 책들이 넘쳐났는데 이 책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의 모두 팔려나갔습니다.

<골목>에서 책을 보는 재미는 바로 정부에서 `팔지 않는 부정기간행물'로 내는 갖가지 자료들을 보는 재미입니다. 이 자료들 가운데는 그야말로 알짜들도 있지만 그냥 단체나 도서관에 한두 부씩 보내는 걸로만 그치는 괜찮은 자료들도 있거든요. <북한의 사전편찬 연구> 같은 책들은 우리 말갈(국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갖춰두면 좋은 자료지만 `비매품'으로 나오고 그치기에 이렇게 <골목>을 찾아오며 이런 자료들을 찾는답니다. 행정자치부나 여러 주무부서에서 펴낸 `용어순화집'도 `비매품'이기에 <골목>에 와서야 비로소 이 책들을 보고요.

<골목>은 앙증맞은 나무판에 칼로 글자를 파서 새긴 `골목책방'이란 조그마한 간판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저씨 아줌마는 따로 명함을 만들지도 않았고-지난날엔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판에는 전화번호도 적어두지 않으셨죠. 지난날 퍽 여러 번 전화번호를 여쭈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전화번호는 알아서 무어 하냐고, 찾는 책이 있으면 손수 찾아와서 봐야지, 전화로 물어봐서는 당신도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책은 자기가 두 눈으로 참말로 필요한지를 살펴서 사야 한다고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말수 얼마 없으신 아저씨에게 전화번호를 어렵사리 얻었지요. 저야 전화로 어떠한 책이 있는가를 묻지 않고 찾아가지만 처음 <골목책방>을 가는 이들은 전화번호라도 알아야 전화로 묻고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괜한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묻는데 많이 시달리기도 하셔서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 주시는 듯합니다.

아무튼, <골목> 오른편에는 서대문역(5호선)이 있고 왼편에는 독립문역(3호선)이 있습니다. 이대뒷문과 사직공원으로 이어지는 고가도로가 바로 왼편 길에서 지나가고요. 버스를 타고 가면 독립공원 바로 다음 역이나 사직공원 가기 한 정류장 앞서서 내리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독립문-골목책방] 02) 313-5006

헌책방 이야기는 <나우누리 통신작가 글마당(go penw 54)>에 1998년부터 올리고 있으며 이 글들은 http://pen.nownuri.net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 쓴 글과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책방 이야기를 쓴 다른 글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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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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