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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된 딸 나영이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가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노래다.

아마도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내가 나영이에게 들려주었던 것 같다. 노래를 못하는 아빠인지라, 주로 테잎으로 많이 들려주었다.

나영이만큼 나도 그 노래를 참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고. 그 노래를 들으면 나영이와 나와의 유대감 - 아마도 대리만족일는지도 모르지만 - 이 다소 생기는 것 같다. 놀 때는 엄마보다도 아직까지는 아빠를 찾는 나영이를 생각하면서, 지방 출장지에서 가끔 나 혼자서 흥얼거렸던 노래였다.

나영이가 태어난 그 이듬해에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볼 정도로 유난히 지방출장이 잦았었다. 나영이가 세살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영이는 크레파스로 그림그리는 걸 참 좋아한다. 그러면서 가끔, 전에 내가 나영이한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언제, 뭐뭐를 사주었는데, 자기가 무슨 그림을 그렸다는 둥, 다 썼으니 사달라는 둥 수다를 떤다.

어제, 나영이가 화상을 입었다. 큰 고모와 외출해서 오뎅을 사먹다가, 지 고모가 식혀서 먹으려고 내려놓은 오뎅국물을 먹으려다 뜨거워서 엎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어머니댁에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이야기를 듣고는 화가 나기도 했다. 어쩐지 나영이가 돌아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지않고 있었다.

너무 너무 미안해서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누나를 보고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왜 일이 생기자마자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붕대가 칭칭 감겨진 나영이의 가슴께와 한쪽 팔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밖에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로서, 아이한테 정말 잘못을 많이 한 것 같아 더욱 그랬다.

그래도 나영이는 씩씩하다.
나를 보더니 울지도 않고, 병원다녀온 후 고모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내 눈치만 본다. 가슴이 더 아팠다.

아이는 그 순간에도 가슴과 한쪽 팔이 따끔거렸을 것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아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있던 아내가 내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와서는 아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그 마음 안다. 속도 상할 테고 아이한테 미안해 했을, 나와 똑같은 심정. 오히려 애써 내 속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달랠 수밖에 없었다.

피자를 먹고 있던 나영이의 눈망울이 엄마의 울음에 잠시 당황스러워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영이에게 새 크레파스와 색연필과 스케치북 등을 사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영이는 스케치북을 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놀이방에서 배운 글씨들을 적는다.

나는 나영이가 좋아하는 피카츄 그림과 스캔받은 나영이 사진과 가족 사진으로 컴퓨터로 달력을 만들었다. 프린터로 뽑아보니 코팅해서 나영이방과 집에다가 걸어놓으면 그래도 그럴싸 할 것 같다.

자다가 목이 타서 깼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은 나영이를 데리고 아는 분이 외과의사로 있는 병원에 치료하러 갈 것이다. 아직 나영이의 상처를 보지도 못해서 가슴이 더 아리다.

지금, 나영이는 엄마 곁에서 곤하게 잠이 들어있다. 꿈 속에서 크레파스로 열심히 아빠 얼굴과 엄마 얼굴과 자기 얼굴을 그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밤새 꿈나라엔 아기코끼리가 춤을 추었고...'

눈에 뭐가 끼었나보다. 눈이 따끔따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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