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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간 대치로 정기국회 파행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럴 때면 흔히 여야에 대한 양비론이 대두되곤 한다. 나 역시 지금같은 상황에서 야당이 국회를 무한정 거부하기보다는 원내외투쟁을 병행하면서 정부여당의 책임을 추궁해나가는 것이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정국의 파행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분명히 여당측에 있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결단 없이는 정국정상화가 어렵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여당이 야당에게 밀려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만 사로잡혀 버티기로 일관하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옷로비사건'의 재판(再版)이 빚어질지 모른다.

지금 여당측은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에 대해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윤철상 의원의 사무부총장직 사표만 수리하겠다는 것일 뿐, 설득력 있는 아무런 해명조차 없다.

민주당을 거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찰의 수사상황 문건까지 유출되어 공개되었다. 이런 마당에 막무가내로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윤철상 의원의 발언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의혹은 대단히 구체적인 것이다. 윤철상 의원, 그리고 정균환 원내총무의 실사개입 발언 자체가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측은 모든 의혹들을 윤철상 의원의 '실언' 탓으로 돌리며 진상규명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적어도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책임있는 여당이라면 실사개입 발언의 내용들에 대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그리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것이 도리이다.

나는 민주당의 이같은 버티기의 끝이 무엇으로 귀결될지가 두렵다. 부도덕한 행위를 은폐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의도를 활보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집권세력의 도덕성이나 권위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만 해도 그렇다. 검찰은 이번 주말경에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신창섭 지점장과 박혜룡 씨 등의 공모 사기극이라는 것이 검찰의 잠정 결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옷로비사건 때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누가 검찰의 그같은 수사결과를 신뢰할지 의문이다. 박지원 장관이 대출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그리고 대출받은 돈이 정치권으로 건네진 것 아니냐는 의혹 부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검찰의 발표는 사건의 축소·은폐라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검찰수사가 진행될수록 여러 의혹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수길 한빛은행 부행장은 대출압력을 행사하였는지 여부, 그리고 박혜룡 씨는 왜 만났고 박지원 장관과의 세 차례 통화내용은 무엇이었는지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박지원 장관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여 전 신용보증기금 지점장 이운영 씨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고, 이운영 씨가 보냈다는 '메신저'를 찾아 조사하면 이운영 씨 양심선언의 진위여부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가리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들을 과연 검찰이 해낼 수 있을까.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검찰의 수사결과는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금 검찰이 '2인자' 소리를 듣는 명실상부한 실세 장관을 엄격하게 수사하고 손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해법은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여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이 권력형비리인가 여부를 분명하게 밝혀내는 길밖에 없다. 여권이 억울함을 주장하며 정말로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면, 설득력있는 결백증명을 위해서도 특별검사제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두 현안에 대처하는 여권의 모습을 보면서 현집권세력의 정치적 둔감증을 느끼게 된다. 그같은 악재(惡材)들이 터져나오는 상황에만 당황하여 허둥대고 있을 뿐, 정작 무엇이 민심을 다스리고 정국을 수습하는 길인가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다.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정도(正道)를 걷는 것밖에 없다. 편법과 미봉으로 진실을 가리고 국민을 호도했던 권력들이 어떠한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누구보다도 민주당 정권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특별검사제를 통해 모든 의혹의 진상들을 밝히고, 책임질 사람들이 있으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만이 지금의 정국파행을 수습하는 길이다. 김영삼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반면교사'(反面敎師)임을 잊지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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