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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 고기 펄쩍 뛰어오르는 마당같은 별밤이었다 벌써.

- 땅끝, 해남에서 金活.

3박 4일간 결혼 후 처음으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우리 가족은 여름 피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이라 불리우는 해남. 그 곳은 장모님의 고향이자, 아내의 외갓댁이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줄곧 가보고 싶었지만, 워낙 먼 길이라 그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큰 맘 먹고 갔습니다.
가는 데 9시간, 오는 데 9시간. 길에서 소비된 시간이 장장 18시간 여.
그러나, 이번에 다녀오고 나서는 해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첫날은 피로감이 밀려와서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6시가 조금 안된 시각, 식구들과 차를 몰고 마을에서부터 시작되는 해변도로를 3킬로 미터 정도 따라 바닷가 갯벌에 나갔습니다.

처외할머님과 장모님을 따라 나도 물이 빠져 까맣게 속살을 드러낸 갯벌로 들어섰습니다. 갯바위에는 소라고둥이 새까맣게 널렸습니다. 두 분께서는 익숙한 솜씨로 바지락을 캐고 계십니다. 나는 소라고둥을 줍다가, 두 분을 따라 서툴게나마 열심히 바지락을 캤습니다.

손녀사위 바지락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에 이미 80을 바라보시는 할머님께서는 1시간이 지나도록 허리 한 번 않펴시고 열심히 바지락을 캐십니다. 괜시리 미안해지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더 열심히 저도 바지락을 캤습니다.

점심으로 푸짐하게 차린 바지락칼국수 두 그릇을 후딱 비우고 나서,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진도대교'를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진도대교를 사이에 두고 해남군과 진도군으로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진도대교 밑으로 물살이 너무나도 빠르고 깊은 울돌목이 보입니다. 아찔한 관경. 이 곳에서 이순신 장군께서는 지리적 조건을 지혜롭게 이용해서 수많은 왜적을 무찌르셨다지요. 장모님 말씀에 의하면, 진도대교 양끝 강어귀에 철로 된 갈고리 사슬을 물 밑에 숨기고 있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서는 왜적의 배들을 함몰시켰다고 합니다.

우리가 간 마을의 읍내는 '우수영'이라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전라도 해군의 총사령부가 있던 곳. 이 곳의 사람들은 그런 역사 깊은 곳에 사는 데에 대하여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지났습니다.

다음날 3일 째 되는 날, 드디어 고깃배를 타고 바다 낚시를 하러 가는 날입니다.
그 날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날이기도 합니다.

한 마을에 사는 처외삼촌께서는 틈틈이 농사도 지으시면서, 줄곧 고깃배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이기도 합니다.

오후 12시 30분 경, 때 마침 마을 친척 댁에 놀러온 집안 친지들과 어린아이들까지 스무명 남짓 고깃배에 올랐습니다. 처외삼촌 아들인 현이는 오전부터 만든 대나무낚시대 열 두어대를 싣고 배에 올랐습니다. 낚시가 서툴고 낚시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친척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낚시대랍니다.

해남에서는 망둥이를 '문저리'라고 부릅니다.
그 곳에서는 문저리를 어느 고기횟감보다 높이 칩니다. 그 곳 문저리는 다른 지역의 망둥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 문저리 낚시를 하러 가는 중입니다.

배가 출발한 지 20 여 분 정도 지나자 유난히 문저리가 많은 바다 한가운데 배가 섰습니다. '야! 이것 봐!' 드디어, 문저리가 물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옆자리에 서서 드리우고 있는 아내의 대나무 낚싯대에 유난히 문저리가 많이도 물렸습니다. 고급 낚싯대를 드리운 나는 속으로 창피하기도 합니다. 1시간이 지나서 다섯 살난 딸 나영이의 대나무 낚싯대에도 드디어 문저리 한 마리가 물렸습니다. 순간적으로 놀란 나머지 그만 낚싯대를 놓친 나영이의 낚싯대를 재빠르게 낚아 챘습니다. 아내와 나영이와 나, 우리 가족 셋은 너무나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두 시간 가량 지나니, 문저리가 제법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 모두 배앞머리에 빙 둘러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돼지고기도 굽고, 선장인 처외삼촌께서 미리 잡아 놓은 바다장어 중 두어 마리와 문저리 대여섯 마리를 회를 떠서 제법 매운 초고추장에 찍어먹던 그 맛. 그리고, 왠지 달기만하던 소주. 캬~ 죽입니다.

식사 후 모두들 1시간 정도 배에서 낚시를 더 하다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은 바다장어구이와 이 곳 별미음식인 문저리회덮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차를 몰고 읍내에 나가 숯불구이용 번개탄과 대형 석쇠, 양념장거리를 사왔습니다.

넓직한 마당 한 가운데 멍석을 깔고 한 귀퉁이에서 즉석 숯불석쇠장어구이파티가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자연산 바다장어 익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나 역시 '아나고'라고 하여 회중에서는 가장 낮은 걸로 치부하던 바다장어. 그전엔 바다장어구이가 이렇게 맛난 줄 몰랐습니다. 서울에서 먹던 민물장어구이에 비길 바가 아니었습니다. 민물장어구이래야 거의가 양식이니 더 그랬겠지요.

그 날은 바다장어 20 여 마리와 우럭, 그곳에서도 귀한 대형 문어 한 마리와 독특한 맛의 문저리회덮밥으로 가족들과 일가친척들 모두가 흡족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에 그날은 유난히도 별들이 많았습니다. 금새라도 별들이 마당으로 곤두박칠 칠 것만 같은 별 총총한 밤이었습니다.
그날밤, 다음날이면 해남을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아쉬운 생각이 더해져, 밤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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