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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 글을 쓴 뒤에 KBS '한국이 보인다'의 그 프로그램에서 달라진 것 없었어요?"

2개월 전쯤 <오마이뉴스>에 쓴 '동일섭을 취직시키지 마라'를 보고 난 후배가 대뜸 묻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내게 "에이, <오마이뉴스>가 아직은 영향력이 별로 없나보네?"하며 웃어넘긴다.

아쉽게도 나는 그 기사를 올린 후, 그가 냉면을 만들려는 모습을 단 한번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때의 모습은 그 전의 바텐더 직업보다는 얼굴도 더 밝아 보였고, 뭔가 해보려는 의지도 느껴졌다.

나 역시 동일섭, 그 스스로가 냉면 주방장을 찾아가서 비법을 전수해 달라는 말을 건넨 것을 보고, '이제 좀 제대로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전보다 기분도 나아졌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 다시 그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메일을 확인하지만 제목이 이상하면 그건 틀림없는 알 수 없는 회사의 광고 메일이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제목을 본 순간 그 날 역시 나는 이상한 광고 메일이 또 왔군 했다. 그냥 삭제해 버리려고 하다가 혹시나 싶어 클릭을 해 보았다. 그 내용은 단지 세 문장에 불과했다.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당신의 기사를 뒤늣게 남아보았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2000.8.3. 동일섭"(이 글은 옮겨 적으면서 오타가 생긴 것이 아님을 참고로 밝혀둔다.)

너무 놀라 다시 한번 내 눈을 의심했다. 어설픈 말투와 어긋난 철자 그리고 말 주변이 없을 듯한 인상을 주는 이 글은 분명 북한 청년 동일섭 씨가 쓴 글이 분명하다. '동일섭을 취직시키지 마라'라는 글을 쓴 지 2개월쯤 지난 뒤의 일이다.

관련 기사='동일섭'을 취직시키지 마라

어떻게 알았을까? 아직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법한 인터넷 신문 <오마이 뉴스>를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그것은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 때 그 기사를 다시 보았다. 그 기사의 대상이 그 글을 보았다니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같은 기분은 벌써 3번째다.

'음반을 뿌리기까지...'라는 기사에서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헤비메탈 그룹 기사를 실었을 때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 그룹의 리더인 사람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또 하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도 나에게 메일이 왔다. "기자가 기자답게 취재를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나에게는 참으로 감동으로 다가 왔던 순간이다.

재미로 시작했던,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기가 나에게는 언론고시를 공부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실전 경험을 통해 언론의 역할 그리고 기자의 책임의식을 톡톡히 깨우쳐 주고 있다.

기사에 대한 의견, 그리고 이렇게 새삼 감동을 더해주는 메일은 더욱 그러한 책임 의식을, 기자 정신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준다.

무료한 일상을 달래고 있는 나에게 다시 한 번 그런 감동을 전해준 동일섭 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우리 한 번 만날 수 있겠냐고. 그러나 아직 답장은 오지 않고 있다.

어느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둘이 만나는 것이 아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누군가 동일섭 씨를 계속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나는 설마 하는 쪽으로 기운다.

자유가 그리워서 온 사람에게 그보다 더한 구속이 어디 있을까? 잠시라고, 당분간 만이라고, 남한 사회에 적응할 동안 만이라고? 그것이 남한식 적응법인가?

확실치 않은 추정일 뿐이지만 그런 상상조차 어쩌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납북자, 탈북자들에 대한 고정 관념이 생겼다는 것, 남북한의 화해무드 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단 50년이 만들어 놓은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회를 꿈꾼다.

동일섭 씨와 따뜻한 차 한 잔 나눌 수 있을 기회를.

덧붙이는 글 | KBS '한국이 보인다' 게시판에는 동일섭 씨 팬들도 꽤 있네요. 그들 모두 바라는 것은 동일섭 씨가 이 사회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빨리 통일이 되어서 가족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동일섭 씨의 웃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다는군요. 저 역시 그에게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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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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