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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사와 그의 아들이 올렸다는 그 글 한방에 완전히 갔습니다."

MBC 최아무개 기자 사건의 파장에 대해 MBC 보도국 간부가 했던 말이다.

실제로 김해기(54) 경사가 올린 글, 「法위에 군림하는 記者」(7월 3일 경찰청, 청와대, 시민단체, 언론사 등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처음 올라감)의 힘은 엄청났다. 결국 그 글로 인해서 MBC는 남대문서에 파손된 기물을 배상했고, 최 기자에게 4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리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노량진·용산·마포 지역 파출소로 '좌천'됐던 세 명의 형사는 지난 7월 11일 자로 노량진 경찰서 보안2계, 용산경찰서 형사계, 마포경찰서 강력반으로 각각 인사 조처가 재조정됐다.

또한 김 경사의 글로 인해 말단 경찰들의 내부개혁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자칫 어둠 속에 묻혀 버릴 수 있었던 하나의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김 경사의 글. 이 글을 가장 먼저 봤고, 인터넷에 직접 올린 김 경사의 두 아들은 지금 어떤 심경일까.

경찰 사회를 뒤흔든 글, "전부 아버지가 직접 썼다"

지난 7월 14일 기자와 만난 김승태(26, 홍대 경영), 김승언(23, 서울대 디자인학부) 씨는 "요즘 심정이 어떠냐"는 물음에 "최 기자의 징계 소식에 왠지 씁쓸하다"고 말했다.

전국 말단 경찰의 심금을 울렸던 문제의 그 글. MBC 보도국 간부가 감탄한 그 글을 과연 김 경사가 직접 썼을까? 혹시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들이 쓴 것은 아닐까? 둘째 아들 김승언 씨는 학보사 기자를 지내지 않았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아버지의 글을 첨삭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직접적인 질문에 두 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승태·승언 형제는 "지난 7월 2일 저녁 아버지가 그 글을 직접 썼으며 자신들은 그 글을 컴퓨터에 그대로 옮겨 치고 인터넷에 올린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며칠 동안 두 형제는 거의 MBC홈페이지 게시판을 들여다보며 살았다고 한다.

합의문 이후 '영웅'에서 '역적'으로

김 경사를 비롯한 세 형사와 최 기자가 '서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더 이상 이 일이 확대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합의를 하기 전까지 승태, 승언 형제는 아버지에게 "절대 합의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7월 7일 오후 세 형사와 최 기자는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합의했고, 그 날 저녁 8시께 인터넷에 합의문이 떠올랐다. 그 때부터 세 형사에게 일선 경찰관들의 비난과 비판이 빗발쳤다.

서울경찰청 개혁대책반의 한 형사는 합의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건 최 기자와 형사 3명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오. 언론을 망치고 경찰을 망칠 지도 모를 이 사건을 그렇게 처리하지 마세요. 제발…."

승태·승언 형제는 그 날 집에 들어온 아버지를 원망했다. 왜 합의했냐고. 합의문대로 감정이 앞서 기자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면 그것이야말로 중대한 인권침해고 직권남용 아니냐고.

김 경사는 순식간에 승태·승언 형제에게 '용기있는 아버지'에서 '타협한 소시민'으로 전락했고, 말단 경찰들에게는 '영웅'에서 '역적'으로 변했다.

"기자가 되더라도 경찰은 되지 않겠다"

세 형사의 인사 조처 재조정과 최 기자의 징계 조처로 약 2주 동안 언론계와 경찰은 물론 수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번 사건은 일단락됐다.

일부 경찰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인터넷의 위력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 덕분에 '항상 당하기만 했던 언론에게 먼저 사과를 받아냈다'며 흡족해하고 있는 인상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경찰에 던지는 메시지가 '인터넷의 힘' 뿐일까.

더욱 중요한 건 '인터넷의 힘' 안에 숨겨진 '진실의 힘'이다. 경찰 수뇌부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진실을 묻어버리려 할 때 '96%의 말단 경찰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4%의 윗분들'에게 '감히' 비판과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현재 김해기 경사를 비롯한 차윤주, 백해룡 형사는 남대문 경찰서 형사계로 원상복귀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김 경사는 지난 15년 동안 근무했던 남대문경찰서 형사계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원상복귀만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경 관계자는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있었던 인사 조처이기는 하지만 조직의 생리상 일단 시행된 인사 조처를 며칠만에 뒤집으면 '꼴이 우스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서울시경의 반응에 대해 김경사의 아들 김승태 씨는 "경찰 수뇌부만 명예가 있고 말단 형사는 명예가 없느냐"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의 시작과 처리 과정을 쭉 지켜본 두 형제는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승태·승언 형제에게 졸업하고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냐고 묻자 "별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경찰이 되고 싶은 생각은 있는지 물었다. 김승태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자가 되더라도 경찰은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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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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