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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you 묶어 this?
우리 딸 찬미가 세 살 되었을 때 처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쓴 말이다. 운동화를 꿴 발을 불쑥 내밀며 "엄마! Can you 묶어 this?"
신발 끈을 묶어 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처음엔 얼마나 우스웠던지.

요즘은 우리 아들 준한이도 어서 이빨 닦으라는 말에 아침마다 이렇게 말도 안되게 대응하며 나랑 싸운다.
"엄마, I want you 이빨 닦어 me."
아이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동사는 한국말로 나머지 말은 영어로 말한다. 그래도 중요한 동사를 한국말로 하니 참 다행이지?

프리 스쿨 가기 전까지는 두 아이 모두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는데 학교라는 곳에 간 후부터는 급속도로 한국말을 쓰지 않는다. 토요일마다 한국학교에 보내는 대신 한 시간씩 내가 붙들고 앉아 한글을 가르쳐 읽고 쓰는 것은 웬만큼 하지만 말은 점점 멀리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말로 "해라", "해라" 강요하다가 부모 자식간에 의 상할까봐 노상 붙어 싸울 수도 없는 일이고 그냥 놔두자니 이대로 가다간 조만 간에 영어가 짧은 부모와 아예 말 안 하게 될까봐 자연스럽게 한국말 익힐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찾고 있었다.

"얘, 여기 있는 동안 그냥 편하게 놀게 해라. 그걸 꼭 보내야 되겠니?'

한국에 가 시부모님께 큰절을 올린 다음, 근처의 공립 초등학교가 어디인지부터 묻는 내게 두 분은 영 시큰둥하셨다. 학교에서 받아줄지도 의문이고, 간다고 해도 촌지를 주어야 할 것이니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 시부모님 의견이셨다. 그럴려면 차라리 학원에 보내는 것이 맘 편치 않겠느냐고.

그래도 나는 꼭 보내고 싶었다. 아들 준한이는 아직 나이가 안 돼서 못 보내지만 딸 찬미는 3학년에 보내면 될 것 같았다. 교장선생님 재량이라는데 공립학교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면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점점 한국말을 잃어 가는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찾아주고 제 또래의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는데 초등학교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니 한 달만 다녀도 그게 어딜까 싶었다.

다음날 아침 안될 때 안되더라도 한번 부딪쳐나 보자고 학군 내 신성 초등학교로 찾아갔다. 교감선생님이 "글쎄요..." 하시며 말끝을 흐리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두말 안 하시고 "그러자"고 하신다.

그러면서 나보고 "애국자"라고 그러시는데 얼마나 부끄럽던지 얼굴이 다 빨개졌다. 찬미는 영어를 제일 잘하신다는 최소영 선생님 반 3학년 8반에 청강생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찬미의 한국 초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긴장하는 것 같더니 곧 잘 적응해 나갔다. "아이가 아주 밝아요." 임신 초기라 입덧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선생님은 잘 챙겨주셨고 아이들도 '왕따' 시키지 않고 잘 어울려주어서 얼마나 고맙던지.

그런데 매일 매일 준비물이 왜 그렇게 많은지 체육복, 줄넘기, 그림 준비, 조각도, 색종이, 필통 만들기, 붓글씨 준비물, 빙고 카드, 풍선, 피리와 타악기, 나무 젓가락.

아침마다 그것 챙겨서 보내느라고 나도 한참 정신이 없었다. 여기는 자주 쓰는 준비물들은 학기초에 학교에 가져다 놓거나 웬만한 물품들은 학교에 비치되어 있어서 특별히 집에서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쨌든 아이의 학교생활은 성공적이었다. 처음 한 주일간에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알림장 내용을 써오던 것이 셋째 주부터는 혼자서 잘 받아 적어 가지고 왔다. 공기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영어를 말해주면서, 생전 처음 붓글씨를 써 보면서, 한국말과 한국을 배우면서 학교에 정이 든 아이는 떠나오기 싫어했다.

그러나 좌변기가 아닌 학교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 쩔쩔 매다가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화장실 갔다 왔어"라고 말한 날부터 삼일 후 우리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마지막 날 교실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는데 동균이라는 아이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한다. "찬미가 학교에서 한국말을 아주 잘해요. 미국 가면 보고싶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우르르 내게 달려와서 찬미의 생일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서로 먼저 적어 달라고 줄을 서고 어떤 아이들은 "아줌마가 꼭 사인 해주는 탤런트 같네요"라고 깔깔거리고, 선생님은 "찬미에게"주는 급우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예쁘게 묶어 주시고 찬미는 그걸 비행기 안에서 읽을 거라며 손도 못 대게 하고.

촌지? 물론 촌지는 안 드렸다. 그냥 작은 마음의 선물과 카드로 대신했다. 아! 한가지 아쉬웠던 점. 찬미가 재적 학생 명단에 들 수 없어서 수련회를 못 갔다. 함께 가고 싶어했는데.

한국의 대학이나 청소년 단체에서 해외 동포 자녀들을 위해 기획하는 단기 한국배우기 프로그램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공립학교에서도 정식으로 해외 동포 자녀들을 단기간 정규 학생으로 받아들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물론 준한이도 한국말 많이 찾아왔다. "안돼"와 "아이, 참"이 재미있는지 말 끝마다 "안돼"와 "아이, 참"을 붙이고 "내년에 또 한국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함께 놀려면 한국말 잘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네-"하고 예쁘게 말한다.

한국 동요도 흥얼거리고 TV 광고에서 본 보크라이스를 만들어내라고 성화도 하고 사 가지고 온 사물놀이 CD를 들으며 "얼쑤!"를 신나게 따라하고... 얼마나 갈지 문제지만 가서 경험하고 온 만큼 가슴에 오래 남아주기를 바라며 찬미가 시 쓰기 하던 날 한국말로 시 쓰기는 아직 어려워 영어로 쓴 시를 소개한다.

Friends

Friends, Friends
Here and there
They are everywhere in the world
Best friends ever,
Friends always share,
Friends always care,
Friends forever.

신성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교무주임선생님, 그리고 無上光 최소영 선생님, 찬미에게 좋은 친구들이 되어준 경혜와 구슬이, 은별이, 지원이와 형국이, 지환이와 은비, 선호와 규민이, 지혜, 정은이, 해선이와 석희, 상준이와 형철이, 다혜와 동균이, 동건이와 민호, 기윤이 형철이와 지환이와 봉희, 건이와 소영이, 문선이와 해선이, 홍학이와 도현이, 그리고 미란. 모두 고맙습니다, 잊지 않을께요.

"얘, 찬미 학교 보내길 정말 잘했다. 저렇게 열심히 가는데... 안 갔으면 노상 앉아 TV만 보고 어쩔 뻔했니?"
어머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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