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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환영과 지지를 표하고 있으나,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미국 워싱턴의 속 깊은 심사는 정작 어떤 것일까? 그것은 남북 정상의 만남이 자신의 전략적 통제권을 벗어나는 결론에 도달 할 가능성에 대한 깊은 경계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김대중 정부의 정상회담 내막에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떠나서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우려라고 하겠다. 미국은 남북정상간의 회담으로 인해 한반도에 <민족주의적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냉전체제 해체의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의 문제가 이에 달려 있으며, 미국의 입지는 자칫 그에 따라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미국의 세계적 패권전략과 언제나 대립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와 미국간의 기본적인 충돌지점을 목격하게 된다. 민족주의적 접근을 최우선적인 기준으로 해야 할 우리의 남북관계와, 이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의 전략적 입장은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화해하기 어려운 기본모순이다. 남북한의 주체적인 냉전체제 극복을 통한 국제적 행동반경의 확대전략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패권전략과 평화적 공존이 따라서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워싱턴의 딜레마"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동북아시아의 패권구도를 대(對)중국 전선으로 재편성하기 위한 탈냉전체제로 이행하는데 필요한 핵심적 고리가 남북 정상회담이기 때문이다.

대북(對北) 고립적대정책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냉전체제로서는 동북아시아의 패권구도를 계속 유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페리 보고서> 제안의 기조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미국에게는 대중국 포위전선 결성이 보다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러한 마당에 북-미간의 대결구조는 한반도 전체의 전략적 위상을 중국의 허리를 겨냥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중대한 장애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미국의 대중국 전선 강화전략에 우호적일 것이라는 판단은 할 수 없으나, 북한을 더더욱 친중국화할 수 있는 압박정책은 오늘날 더 이상 전략적 의의를 갖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의 냉전형 대북 압박정책은 북한과 중국간의 동맹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미국으로서는 대중국 전선에 균형이 깨어지는 부담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적 관심은 북한을 중국에 가깝게 할 수 있는 요인을 최대한 해소하고 반대급부의 제시를 통해 미국의 영향권내에 편입시킬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바로 이 통로의 마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존의 북-미 회담은 이 통로 마련에 그다지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그 까닭은 미국으로서는 북한지역에 의도한 만큼 전면적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는 달리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는 한국의 대북 통로개설에 슬며시 업혀 들어가 한반도 전체에 미국이 원하는 시스템을 장치하는 것이 미국의 관심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남북 정상회담은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정상회담과 관련한, 김대중 정부에 대한 미국의 주문은 바로 우리더러 이 목마의 구실을 해달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하여, 탈냉전체제의 확립은 냉전형 대결구조의 청산을 기반으로 한 평화정착의 긍정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와 같이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가 은밀하게 내장되어 있음을 우리는 민감하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남북 정상회담의 전개여하에 따라 의도치 않게 우리 민족의 이해에 자해적(自害的)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IMF 관리체제를 통해 미국의 세계화전략에 의한 강제적인 구조조정의 과정을 통과한 한국의 경제현실이 <교류>라는 방식으로 북한지역에 확대되어 나갈 때에 그것은 한반도 전체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뜻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정상회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한미관계의 근본성격을 간단하게 지나칠 일이 결코 아니다.

하여, 우리로서는 미국의 이러한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새로운 민족적 활로를 뚫어내는 작업에 얼마만한 진전이 있는가 여부에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성패를 평가하는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이 민족사의 근본과제를 해결하는 현장이라면, 마땅히 그간 압도적인 외세로 우리민족의 분단체제를 냉전전략의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군사화 시켜온 미국의 패권전략에 더 이상 끌려가거나 흡수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선차적으로 명확하게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회담이 확인해야 하는 7.4 공동성명의 첫째 원칙인 <자주>의 문제일 것이다. 이는 우리민족의 운명이 지난 시기의 역사에서처럼 주변열강의 패권구도와 신냉전을 의미하는 진영짜기의 전략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기초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한미관계의 근본을 점검하는 작업을 새롭게 진행시켜나가야 한다.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향후 한반도에서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의 사안과 직결된다.

통일이후에도 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는 논리는 민족의 자주적 입지를 일정하게 포기하는 방식으로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하는 굴종적 선택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패권구도의 전개과정에서 우리민족의 국제적 행동반경을 확대하는 노력을 감당하려는 주체적 의지의 결여에 다름이 아니다.

출발부터 이러한 발상과 이러한 자세로 임하는 정상회담이라면 이는 미국의 전략적 구도에 충실한 통로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계속적인 이견과 충돌을 예상하게 할 것이며, 이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한반도 정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정상회담의 진전과 향후의 전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자세는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김대중 정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은 김대중 정부가 민족사적 입지에 얼마나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조응해나갈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가령, 매향리의 폭격훈련장 문제나 한미행정협정개정문제나 모두 그러한 차원에서 김대중 정부의 의지와 능력을 가늠하는 사안들이다. 이를 해결해나가는 능력은 남북관계를 민족적 이해에 기초하여 풀어나가는 능력과 별도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차원의 것이다. 하여,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러한 문제들이 시기적으로 겹치는 가운데 터져 나오면서 대중들의 대미의식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현실은 결코 역사의 우연이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의 민족사적 의의는 이제 더 이상 우리민족이 열강의 패권전략에 의한 희생물이 될 수 없다는 절절한 기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면서도, 바로 이 민족적 기원을 부차적으로 여기는 남북관계는 결국 <트로이의 목마>가 되거나, 아니면 남북 권력자들의 정략적 전리품이 될 소지가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부디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정상회담과 향후 남북관계에 임하는 김대중 정부의 민족적 입지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더욱 명확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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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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