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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4억원으로 4조원을 벌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가 상속증여 재테크 책을 쓴다면 붙임직한 제목이다. 재용씨가 44억원을 굴려 불과 3년만에 4조원을 만들어낸 기막힌 경위는 대충 이렇다.

재용씨의 나이가 30세에 가까워오자 이건희 회장은 총수 자리를 대물림할 결심을 하고 95년 12월 재용씨에게 60억8천만원을 증여한다. 증여세로 16억원을 내고 난 나머지 44억8천만원의 자금으로 삼성측은 이재용씨의 재산불리기를 통한 총수지위 세습작전에 돌입한다.

비서실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3세 승계작전은 상장예정 계열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으로 개시된다. 재용씨 명의로 삼성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각각 19억원과 23억원 어치 구입한 삼성측은 두 회사를 상장시킨 후 바로 주식을 처분한다. 이렇게 해서 확보된 6백억원의 자금으로 삼성측은 재용씨 명의로 에버랜드와 삼성생명, 그리고 삼성전자의 지배지분을 취득하는 일에 나선다. 그룹내 지주회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 세 계열사의 지배지분을 확보할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통째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측은 3세 세습을 대비해서 국내 최대의 금융기업인 삼성생명과 국내 최대의 부동산 회사인 에버랜드를 상장도 하지 않은 채 품 안에 고이 간직해온 터였다.

세습작적 개시, 우선 에버랜드부터

첫번째로 뽑힌 회사는 에버랜드. 선택된 방식은 재용씨등 이회장의 4남매를 대상으로 한 전환사채 발행. 총수의 의지를 확인한 에버랜드 이사진은 자사의 62.5%지분에 해당하는 전환사채를 불과 96억원에 발행해준다. 다시 말해서 에버랜드 경영진은 용인에버랜드, 연포해수욕장, 신라호텔, 기타 삼성그룹의 주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재벌 에버랜드의 62.5% 지배지분을 경영권 프리미엄이나 영업권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돈 96억원을 받고 총수 자식들에게 팔아넘긴다.

그 결과 손해를 본 것은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인 중앙일보, 제일모직, 삼성문화재단 등 계열사들. 이들 주주(계열사)들은 그룹회장 일가에 대한 증여성 전환사채 발행으로 말미암아 지분율이 과거의 1/3 수준으로 급락한다. 대표적으로 48%를 보유했던 중앙일보는 대주주의 자리를 이재용씨에게 빼앗기고 18%의 소수주주로 전락한다. 세습작전 개시 1년만인 96년 12월의 일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배지분 취득. 삼성전자는 상장법인이기 때문에 주식을 형편없이 저가 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삼성전자 경영진은 이재용씨에게 거래소 시가의 10% 할인가격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해주는 선에서 머문다.

이렇게 해서 재용씨는 삼성전자의 0.8% 지분을 보유한다. 여기에 소요된 자금은 물경 450억원. 재벌일가의 상속 재테크 관점에서 볼 때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의 차이는 이처럼 천지차이다. 갖은 비판과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재벌총수들이 알토란 거대기업을 비상장으로 남겨놓는 진짜 이유다.

여기서 복병이 나타난다.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소액주주의 자격으로 이재용씨 명의의 전환사채에 대해 주식전환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이다. 1심 가처분 재판부가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혼쭐이 난 삼성측은 삼성생명에 대해 전환사채 발행 방식을 포기한다.

갑자기 나타난 복병과 삼성의 대응

대안은 삼성생명을 에버랜드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 삼성측은 전현직 고위임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을 모두 불러모아 주당 9천원에 에버랜드에 넘겨준다. 참고로, 같은 삼성생명 주식을 6개월 후 '사재출연'한 이건희 회장은 적정가가 주당 70만원이라고 주장한다. 70만원대의 삼성생명 주식을 9천원에 사들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무튼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20% 대주주가 된다. 당연히 이재용씨는 에버랜드와 함께 삼성생명을 지배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들 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통해 나머지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도 덤으로 갖게 되었다. 이로써 이재용씨는 상속을 기다리지 않고도 언제든지 삼성그룹의 3대 오너 총수로 등극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 이건희, 연출 비서실, 주연 에버랜드 등 계열사 사장, 조연 이재용으로 전개된 삼성측의 3세 변칙증여쇼가 성공리에 막을 내린 것이다. 작전 개시 3년만인 98년말의 일이었다. 이 과정을 통틀어 삼성측이 국가에 낸 세금은 최초의 증여세 16억원이 전부다.

감독 이건희, 연출 비서실, 주연 에버랜드, 조연 이재용

삼성측이 획책한 전대미문의 증여쇼가 진행되는 동안에 정부와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신문에는 96년말부터 이재용씨가 막대한 양도차익을 올리고 있다는 1단 기사들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재경위 의원 한두명이 삼성의 불법증여를 다스릴 방안을 강구하라고 국세청에 다그친 것이 전부였다.

국세청은 변칙증여인줄은 알지만 조세법정주의 때문에 증여세 추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던 국세청이 지난 총선 직후 삼성을 위시한 4대 재벌의 주식이동상황 조사를 개시하여 탈루세금을 추징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삼성측이 이런다고 떨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우선 국세청은 작년 9월 1일부터 삼성생명 소유의 종로타워에 세들어 살고 있다. 항간의 소문처럼 임대가격이 파격적으로 낮다면 국세청은 삼성측의 항상적 뇌물을 받고 있는 셈이다. 만약 제값을 내고 삼성생명의 품 속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라면 예산낭비는 물론이고 정신 나간 일이다. 삼성측의 끊임없는 변칙탈세수법 개발로 진절머리를 앓은 국세청이라면 일부러라도 삼성측 건물만은 피해야 정상이다. 더욱이 금년 3월 국세청 차장 출신과 국장 출신이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사외이사로 들어간 것을 보면 국세청의 정서는 삼성측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공직자 윤리가 마비될 수는 없다.

검찰은 어떤가? 민주노총의 기관지 '노동과세계'는 지난 97년 5월에 이건희 회장과 에버랜드 사장, 그리고 에버랜드 주주인 계열사 사장들을 전원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소추해야 마땅하다는 필자의 분석과 주장을 두 번이나 대서특필한 바 있다. '노동과세계'를 이잡듯 분석하는 까닭에 이러한 주장을 잘 알고 있을 검찰은 물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은 지난 2월 삼성SDS사안에 대해 불기소결정을 내림으로써 삼성측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검찰의 이러한 반응은 삼성 증여쇼의 본질이 이건희 회장의 범죄적 배임행위 교사 및 그에 따른 에버랜드 기타 관련계열사 경영진의 범죄적 배임행위 실행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직무유기에 가까운 것이다.

언론과 국세청과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

법적으로 볼 때 삼성의 증여쇼는 너무나 분명한 범죄행위에 기초해 있다. 형법 제356조는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자로 하여금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함으로써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를 업무상 배임죄로 다스려 최고 10년의 징역에 처할 것을 명한다.

에버랜드의 대표이사 기타 이사진과 감사는 공정한 가액으로 주식이나 전환사채를 발행함으로써 회사의 자본충실을 기해야할 업무상의 책무가 있다. 따라서 총수의 외아들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전환사채를 초저가 발행해준 이들의 행위는 업무상 배임죄의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 해도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이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한 이건희 회장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사건의 몸통은 이건희 회장이지 계열사 사장일 수 없다. 형법도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자기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자를 교사하여 범죄행위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자"를 특수교사범이라 하여 정범보다도 형(刑)을 1/2까지 가중할 것을 규정한다(제34조 제2항). 에버랜드의 이사진과 주주 계열사들의 이사진은 이건희 회장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자임에 틀림없으므로 이건희 회장은 이들보다 1.5배 중한 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가? 이만하면 법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는가?

법의 신뢰가 생기게 하는 법

그렇다. 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의 양심 깊은 곳에서 '그런 법은 없다'는 절규가 절로 터져나올 때, 법은 대부분의 경우 바른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런 경우 법대로 집행만 하면 된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삼성의 증여쇼에 대해 분개하는 분들도 증여세를 추징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견해는 삼성 증여쇼에 얽혀있는 위법행위의 본질을 증여세 포탈에서 찾는 잘못된 견해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재산을 국세청 몰래 이재용씨에게 증여한 경우라면 증여세 추징이 올바른 해결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재용씨가 실질적으로 증여받은 재산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아니라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인 여러 계열사들의 지분재산이다. 아버지가 남의 재산을 가로채서 자식에게 증여한 경우 자식이 증여세를 낸다고 해서 적법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재용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재용씨의 보유재산이 주주들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가로챈 결과인 이상 그 40%만을 증여세로 추징하는 방식으로는 정의가 회복되지 못한다. 증여세를 내고 남는 증여가액의 60%도 이재용씨가 취득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이것은 남의 재산을 가로채서 자식에게 준 경우다

감추인 것은 언제가는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데 불법과 비리는 곪아터지기 전에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이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은 이것을 바로잡으라는 역사의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국 최고의 재벌인 삼성그룹의 불법상속작전이 낱낱이 드러난 이번 사건 역시 재벌사회에 만연한 유사한 불법비리를 끝장내라는 역사의 큰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개미군단의 출자와 금융기관의 대출을 통해 조성된 대기업집단의 지배권을 오직 총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물려주는 시대착오적 행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 3세에 의한 시행착오는 경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막대한 금력에 조직력마저 겸비한 성골집단의 형성은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총수자리 대물림이 그룹총수의 범죄적 배임결심과 그에 따른 그룹 차원의 배임행위 집행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면 척결대상이 될 뿐이다.

자신의 재산도 아닌 남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가로채서 자식에게 몰아줌으로써 이뤄지는 재벌총수 놀음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더이상 어떤 변명도, 관용도 불가능하다. 삼성그룹의 전대미문의 3세 변칙증여쇼에 대해 검찰이 이건희 회장과 그 하수인을 불러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


(이 기사는 말지 6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곽노현씨는 1954년생으로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 법과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사회경제법을 가르치고 있다. 학술단체협의회 학술위원장,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역임하였으며 97년에 5.18시민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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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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