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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10시 5분 전, 부랴부랴 버거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녀가 거기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다.

여느 때 아침 등교 길에서 손을 흔들며 눈웃음을 주고받던 그 모습과 다를 바 없이 푸른색과 검은색 제복 차림이다. 일이 끝나자 마자 이쪽으로 향했을 테니까.

"커피는 제가 사려고 했는데..."
"괜찮습니다."
그녀는 라지 사이즈를 나는 스몰 사이즈 컵에 커피를 따라 들고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한 6개월 전부터 이렇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시간을 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어요."
"별 말씀을. 괜챦습니다."
신선한 아침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고는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 딸도 버클리 레이크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올해 3학년이 돼요. 올 가을이면 우리 둘째 아들녀석도 거기 킨더 가든에 입학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미세스 컬러 씨를 처음 본 것이 벌써 2년이 흘렀네요.

변함없이 거기서 교통정리를 하는 컬러 씨와 눈웃음을 주고받으면서 언젠가는 말을 걸어봐야지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한결같이 아이들의 등하교 길을 지켜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의 안전도 지켜주시는 셈이니 제가 고맙다고 말해야죠?"

"예, 지금 4학년인 우리 세째 딸이 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통정리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한 5년이 되어가네요."

이름 : 앤 컬러, 나이 : 45세.
그 정도의 나이에 맞는 몸집과 회색에 가까운 금발을 가진 여인. 네 아이들의 엄마.

우리 큰 딸이 다니고 있는 버클리 레이크 초등학교 입구 건널목에서 걸어서 등하교 하는 동네 아이들의 길을 건네주며 교통정리를 하는 아줌마다. 매일 아침 7시 45분부터 8시 15분까지, 그리고 오후 2시 15분부터 2시 45분까지.

그리고 그 후에는 동네 다른 학교에 가서 또 한 차례 교통정리를 한다. 조용조용 입을 많이 벌리지 않고 말을 하는 품에 처음 마주앉는 낯선 이의 질문이 때로는 거북한 듯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며 '참 보수적인 사람이겠구나'하고 생각한다.

"5년이나요? 굉장하시군요.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으시던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비오는 날은 정말 나오기 싫은 때도 있죠."
"그래도 매일 그 자리에 서게 하는 힘은 엄마라는 것이겠죠?"

"맞아요, 안전 제일! 그리고 이웃의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란 생각입니다. 거기 건널목에 서 있다보면 아이들의 안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운전자들을 감시해야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운전자들 감시요?"
"감속 사인과 스탑 사인이 버젓이 있는데도 특히 출근길에는 갈 길이 바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 그래요. 거기 학교 근처에 있는 3거리 있죠? 저는 늘 그길로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데 거기에 경찰차가 서서 망을 보지 않는 날이면 사고 날 까봐 정말 불안한 날이 많더군요."
"사람 마음이 참 묘해요. 누가 감시를 해야만 꼭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미세스 컬러는 경찰차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 운전하는 품이 달라진다고 씁쓸하게 웃는다.

나는 아침에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보내지 않고 직접 운전을 해서 데려다 준다. 지난해 여기서는 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다 어린 초등학생이 치어 죽는 일도 발생했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던 중학교 여학생이 납치돼 강간을 당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지난해 콜로라도 주에서 두 명의 고등학생이 십 여명의 학생과 선생을 죽인 총기난사사건 이후 미국은 전국적으로 자녀들의 학교 안전에 비상이 걸렸지.

학교와 정부는 이에 대한 여러가지 자구책들을 마련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직접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는 학부모들의 차량행렬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래저래 염려가 되던 차에 작년 가을 작은아이가 프리스쿨에 가면서부터는 큰 아이도 함께 차로 데리고 다닌다. 프리스쿨은 스쿨버스가 없어 부모가 직접 데려다 주어야 한다.

"사실 저는 거기 오갈 때마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손을 까딱까딱 흔들어 인사하고 나면 기분이 참 좋아요. 어떤 날 제가 좀 늦거나 해서 못 마주치는 날에는 아쉬운 맘까지 들더라니까요."
"저도 그 맛에 이거 합니다. 버클리 레이크 초등학교에 1천 1백 명이 다니죠. 그 아이들이 매일 아침 보내는 미소와 손 인사 그리고 굿 모닝과 굿 바이. 저에게도 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지요."

"자녀가 넷이면 여간해서는 남편 혼자 벌어서는 생활이 힘들 터인데 풀타임 직업 안 가지세요?"
"막내아들 낳기까지는 의료장비 회사에 다녔었는데 해고를 당했죠. 남편은 엔지니어로 집에서 일을 하는데 서로서로 도우며 별 어려움 없이 살고 있어요."

"하기야 저도 풀타임 직업을 가져봤는데요. 아이가 둘 되니까 정말 힘들더라구요. 방과후에 아이들 데이케어 센터에 맡겨야죠. 아이 둘 다 맡기면 그 돈이 어디예요. (내 경우 약 800달러 가량 든다) 옷 값, 세탁비, 외식비, 차량 유지비, 화장품비...

그거 다 생각하니까 차라리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돈 버는 것이더라니까요. 거기에 아이들은 데이케어 안 가려고 하지요. 마음은 마음대로 아프고 몸은 몸대로 힘들고...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바꾸었어요."

"맞아요. 우리도 가족끼리 뭉치니까 그냥 저냥 살만 해요. 이거해서 큰돈은 안되지만 일을 즐기면서 수입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방과후에 내내 아이들하고 같이 지낼 수 있으니까 그게 돈을 버는 거죠.

제가 아침에 교통정리 하러 나갈 때는 남편이 애들 챙기면서 도와주고, 넉넉하지 않아 아이들 취향대로 레슨을 다 시켜 줄 수는 없지만 큰 아이가 작은 아이 숙제를 돌봐주고 뭐 그런 식으로 더 가족적으로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아, 그러면 그게 유급직이군요. 몰랐어요. 막연히 자원 봉사하는 것이려니 했지요."
"정식직원이 아니라 자원봉사 성격을 띠더라도 국가나 공공기관과 연결이 될 경우는 유급직이 많지요."

"그렇군요. 그럼 얼마나 받으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음-, 경찰서하고 저하고만 비밀이라서요 얘기하기가 그렇네요."
"예, 그렇군요. 그럼 만족할 만한 정도는 됩니까?"
"예."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기사 실리면 주신 이메일로 연락 드릴께요."
"예, 저도요. 그런데 한국에도 여기 미국처럼 컴퓨터 산업이 발달했나요? 인터넷으로 신문도 만들고..."

자존심이 확 상했다. 이 사람이 한국을 뭘로 보는 거야. 도대체. 공연히 화가 난다. 그래도 웃으면서,
"그럼요, 한국 컴퓨터 산업이 미국 못지 않지요... bla, bla, bla..." 떠들어댄다.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컴퓨터 산업 상식으로. 아이를 놓고는 미국엄마나 한국엄마나 똑같은데 나라를 두고는 이렇게 다르구나. 버거킹 문을 열고 나오는데 커피 한 잔을 다 마신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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