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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노동자들의 마음...

베트남 산업연수생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특수훈련(?)을 받고 온다.
공수부대, 특수부대 뺨칠 정도의 훈련이라한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고된 노동과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갔다가 손가락이 잘리고 손목이 잘린, 패잔병이 되어 돌아온 동료들을 많이 보아왔고, 무엇보다 베트남 전쟁 때 그 무서운 따이한들의 기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의 기억속엔 선명한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노동자들은 그렇게 어려워 하는 한국말을 조금씩은 다 할 수 있다. 한국말을 배우려고 제일 열심히 노력하는 외국인노동자도
바로 베트남 노동자들이다.

그러면서도 한국말을 쉽게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한 베트남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한국에 온 베트남 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저임금이다.

"한국공장.. 돈 쪼끔, 도망가.... 돈 많이..."

하루 12시간, 13시간 일해가면서 받는 돈이 많이 받아야 45만원.
한국의 최저임금에 쥐꼬리 만한 수당들을 합쳐서 45만원.

분명 그들 나라사정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 확실하지만, 황금의 나라 한국을 오기 위해 들인 돈을 갚기 위해서는 2년동안 일해도 모자라는 형편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산업연수생이 도망을 가서 '불법체류자'가 되면 시골에서 일해도 60만원을 벌 수 있다. 그러니 불법체류자가 되어 돈 벌다가 붙잡혀서 강제추방 당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은 교회에서 '부활절 행사'를 했다. 그동안 만나오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초청해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체육대회등 오랜만에 즐거운 한때를 함께 보내는 날이다.

봉고차를 끌고 외국인이 살고있는 공장 기숙사에 갔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언제나처럼 아주 반가워 하면서 극진히 맞이한다.

오늘은 다행히 베트남 사람을 만나는 것을 막지 않는 선량한 수위아저씨가 당직을 서는 날이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눈을 부라리며 두 손을 흔들어대는 '불독수위'에게 당해 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알것이다. 박카스라도 사 간다는 것을 항상 깜박잊어버린다.

몇주 전부터 광고를 한 터라 오늘이 부활절 행사가 있는 날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멀리 안산에서 친구가 와 있어서 함께 음식을 차려 먹기로 했다고 한다.

부활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안산에서 온 친구들은 정오에 도착하여 오후 3시에 다시 안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더이상 졸라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 3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그 친구는 안산에서 달려온 것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외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절실히 느낄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교회 행사가 있어서 먼저 가야겠다고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 여자들이 '베트남 음식'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점심을 같이 먹자는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는 날 기다리고 있겠지만...

'베트남 음식'이라는 말에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밖에 나갔던 몇명이 아침에 찍은 사진을 현상해서 가지고 들어왔다.

그중에 잘나온 독사진은 4-5장씩 더 찾았는데, 집에 우편으로 보낼 거라고 한다. 사진을 자랑하는 나와 동갑내기 남자에게 '애인에게 줄거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빨게지면서 '애인없다'고 한다.

베트남 음식을 차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직접 장을 봐와서 하나하나 손수 차리고 있었다. 냄비에는 닭백숙과 돼지고기 수육이 끓고 있었고, 상추며, 오이들을 씻는 손길이 바쁘다.

불고기를 만들려고 재어 논 것이 보이고, 세상에나 '닭똥집'까지 있었다. 베트남에서도 '닭똥집'은 인기있는 음식이란다. 역시.

그리고, 마늘과 빨간색 매운 고추를 다져서 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 말에 의하면 한국 고추는 너무 맵지 않다고 한다. 베트남 고추는 아주 맵기 때문에 한국의 김치는 세발의 피란다.

아주 특별한 베트남 요리를 맛 볼 수가 있었는데 쌀을 풀처럼 녹여서 동그란 뻥튀기 처럼 얇게 펴 말린 것이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는데... 명석한 두뇌는 역시나 까먹었다.

아무튼 아주 얇고 동그란 쌀전병(?)은 휘면 금방 바스라져 버렸다. 맛을 보니 쫌 짭짜름하고 입에 녹이니 쫀득쫀득해졌다.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에 갈 때 김치를 싸가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에 갈 때 바로 이것(누가 이름좀 알려줘요)을 수백장 끈으로 묵어서 가지고 다닌다.

아무튼, 그 쌀전병(?)에 물을 살짝 뭍혀서 네토막 낸 후 접시에 담아내왔고, 수육은 얇게 져며 왔다. 오이는 우리나라에서 썰듯이 네토막으로 썰어 내왔고, 그리고 상추가 올라왔다. 그리고 육수와 고추, 마늘, 식초등으로 맛을 낸 소스가 그릇에 담겨져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먹는거지? 눈만 껌벅이는 내게 그들은 아주 정성스럽게 먹는 방법을 일러준다.

먼저 그 특이한 물에젖은 쌀전병(?) 한장을 손바닥위에 올려놓은 뒤 상추와 오이, 그리고 수육을 올려놓고 젖은 쌀전병으로 돌돌돌 마는 것이다. 그러면 손바닥보다 조금 긴 전병말이(김말이하고 크기가 비슷)가 탄생한다. 그것을 소스에 담근 뒤 조금씩 먹는 것이었다.

맛은 옛날 초등학교 쫀데기 속에 야채와 고기가 섞인 맛이다. 그 특이한 소스맛은 그래 맞다. 우리나라 냉면국물 바로 그맛이다.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자꾸 싸주고 권하는 바람에 배가 통통해지고 말았다. 살찐사람이 배나온 거보다 마른 사람이 배만 뽈록 나온게 더 가관이지.

그들은 마치 중국 요리처럼 중간중간 새로운 요리가 계속 등장했는데
닭백숙, 닭죽... 아마 내가 간후에 제어 논 불고기와 '닭똥집'이 등장했으리라. 아, 아쉽다. 닭똥집. 혹시 '닭발'도 먹을까?

그들은 수위아저씨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직 낯설기만 한 타국에서 그날 만큼은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웃는 모습과 대화속에서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주로 3D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고마워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하는 것만을 욕하지 말고, 작업환경 개선과 적정한 임금을 주는 데 아까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몇주전 프레스에 찢어진 손가락을 보여주며 괜찮다고 애써 웃어보이던 필리핀 외국인의 거뭇한 한자락 미소가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 대전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하는 모임 
(대전시 대화동  T. 042-621-8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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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관련 뉴스와 바닥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시민기자입니다. 우와 미치겠다. 오랜만에 기사 하나 쓰려니 오마이뉴스 복잡해 졌네염. 기자소개 100자 힘들게 썼는데, 다른 거 또 물어봐서 기록하고 나니 기자소개 다시 쓰라네염... 허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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