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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특징지어지는 사회 전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교통분야의 공공성이 다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GTX나 철도 지하화와 관련한 논란은 우리 사회의 교통에 대한 논의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촌극임을 보여줍니다. 이에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공공 철도-지하철'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철도-지하철 중심으로 동시대의 교통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당대의 논쟁을 앞서가는 사회적 공론장 형성이 필요합니다. 올해 첫 번째 '공공 철도-지하철 정책대회'를 준비하면서 공공 철도-지하철을 가로막는 민자 철도-지하철이 점차 확대되어온 과정을 검토하고, 이를 역전시켜 새롭게 철도-지하철 공공성의 의제를 확대 강화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올해 9월 5일·6일 열리는 2024 공공철도지하철 정책대회의 주요한 내용을 전합니다.[기자말]

기후위기 시대에 철도가 갖는 잠재력에 대해 원론적으로 동의가 높지만, 한국에서 이를 실현할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다. 도로와 승용차 위주로 짜인 인프라와 정책 관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관념이 교통정책 관료부터 정치인, 그리고 시민들에게도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도의 다양한 기능과 장점이 한국에서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거니와, 기후위기 속에서 그런 잠재력을 다시 보아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철도 기술과 구조의 특성상 다른 동력 교통수단들에 비해 에너지 효율과 수송 효율 모두가 압도적으로 높고, 지역 사이를 연결하면서 경제적 및 문화적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교통을 열차로 대체하자는 것은 아니다. 여객과 화물 운송을 도로에서 철도로 대체하는 것을 '모달시프트(modal shift)'라고 부른다.

대략 500마일 전후 거리의 이동에서 그리고 도로 교통 정체가 심한 도심에서 기본 속도와 정시성을 보장할 수 있는 궤도로의 전환이 유리하다. 한국에서라면 국토 면적이 그 정도를 넘지 않기 때문에 전국적으로는 고속철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서울과 부산의 조밀한 전철 네트워크는 상당한 승용차 이용 저감 효과를 갖는다. 물론 후자의 경우 서울시가 승용차 억제 정책 수단에 거의 손을 놓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반감되기는 한다.

철도는 기후 '적응'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잦아지는 홍수, 해일, 열파 속에서 공항이 침수되고 궤도도 휘어지고 도로도 무너지기 때문에 기후위기는 모든 교통수단을 위협한다. 전쟁 시기에도 유력하게 쓰이고 살아남은 철도망은 유사시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다.

철도 대안은 기후운동과도 결합되고 있다. 영국의 기후 시위대는 런던의 히스로 공항을 몇 번이나 점거하고 여러 차례 시위를 벌였다. 영국 교통부가 추진하는 히스로 공항 제3 활주로 확장 계획이 기후위기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히스로 공항이 영국 기후행동의 상징적 투쟁 장소가 된 것이다. 영국 RMT(철도항만노조)가 2008년 초 공개한 연구 보고서는 히스로 확장 대신 철도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것이 교통 편의와 환경 측면에서 훨씬 나은 대안임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기후운동에도 중요한 논거가 되어 주었다.

스웨덴에서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며 자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비행수치(Flygskam)" 운동은 그 연장선에 있다. 2018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이 비행 거부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철도망이 깔린 지역으로 이동할 때 비행기를 타는 대신 철도를 이용하면서 역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 올렸다.

그 영향으로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 3월 스웨덴 내 공항 이용자는 전년 대비 15% 줄었고, 철도 이용자는 12% 늘어났다. 독일 등에서도 비슷한 수치가 나타난다. 프랑스에서는 2021년 제정된 기후복원법(Climate and Resilience Law)에 따라 2시간 30분 이내에 기차로 가능한 단거리 이동에 대해 2023년 5월 23일부터 국내선 항공편 운항을 금지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모달시프트의 징조는 미약하다. 교통연구원 박경아 본부장의 지난 5월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매년 교통 SOC에 15조 원 이상 투자했지만,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은 30%에 정체해 있다. 그리고 주거비용 급증에 따른 대도시 인구 외곽이동으로 장거리 출퇴근은 심화하고 있고 인구감소 지역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상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상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모달시프트의 가능성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철도 등 공공교통에 첫째, 충분한 규모의 투자가, 둘째, 적절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경부선과 호남선, 그리고 최근 개통된 강릉선 등 몇 개의 고속철에만 익숙해진 우리는 한국의 철도 교통이 차량도 좋고 서비스도 좋고 속도도 괜찮다고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철도스톡(총 궤도연장) 수준은 영국과 스웨덴 등 한국과 국토계수가 유사한 나라들과 비교할 때 약 40~50%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속철 외의 궤도망은 오히려 무궁화호 편성이 줄어들고 간이역이 폐지되어, 수요가 있어도 이용할 수 있는 철도가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정부의 교통 정책은 수익성이 증명된 고속철 위주의 투자로 계속 편중되고 있고, 철도 계획은 구간 사이의 B/C 분석에만 치중하면서 철도가 갖는 중장기적 사회경제 효과와 환경 효과는 고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최근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서도 철도차량과 운영의 기술적 개선만을 검토하고, 도로 교통량을 축소하고 궤도로 운송량을 저감하는 모달시프트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대체로 전기수소차 보급뿐이다.

여기서 2007년 대선에서 나온 정동영 후보의 "대한반도 철도" 구상을 환기해 본다. 이 공약은 남북측 대륙철도, 수도권 급행철도, 영호남 화합철도, 강원도 성장철도, 지역별 연계철도 등 10년간 38조 원을 투입하여 총 1175km 철도를 건설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 공약에 대해 시민사회의 평가는 야박했다. 철도가 만성적인 적자 구조여서 경제성이 낮은 노선을 포함하고 있고 낙후 지역 성장을 촉진하는 게 적합한 정책 수단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공약 완성도와 가치성에 B점과 C점을 부여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이런 평가는 다분히 근시안적인 것이었다. 철도망 구축은 오래 걸리는 사업이고 네트워크 효과도 중장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후 17년 동안 한국 철도망에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대중적으로도 주목받는 전현우의 저서 <거대도시 서울>은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철도를 통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함을 세밀하게 논증한다. 그가 제안하는 철도 구조 개선과 철도망 확충은 우리에게 다른 미래가 가능함을 알려준다. 지금보다 대략 1.5배 많은 철도망은 우리에게 지구 온난화 1.5도 억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면 단위까지 조밀하게 구축되는 철도는 지방소멸을 막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전국의 철도망 계획과 지역의 트램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도 노선끼리 만나고 지역과 사람이 만나는 공공철도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져야 그러한 계획에 충분한 예산과 적시의 실행이 수반되고,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 계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24 공공철도지하철 정책대회 포스터
2024 공공철도지하철 정책대회 포스터 ⓒ 공공운수노조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현우씨는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입니다.


#공공운수노조#공공철도지하철#공공교통#기후위기#정책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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