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9 12:11최종 업데이트 24.06.1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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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의 파빌리옹 캄봉 카푸신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의회 해산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기적 지각변동을 눈앞에 둔 프랑스 정치판에 난데없이 케이팝(K-pop)이 화제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조기 총선을 선언했고, 프랑스는 그들의 정치사에 유례없는 극우세력의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맞설 전략에 고심하는 프랑스의 젊은 좌파 지지자들은 케이팝에서 영감을 찾고자 한다.

창당 반세기만에 집권을 눈앞에 둔 극우 국민연합(RN)은 최근 젊은 세대 공략법으로 틱톡(TicTok)을 활용했고, 그 작전은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일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서 18~24세의 25%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노년층이 주요 지지기반이던 극우 정당이 젊은 층에서마저 다수 세력으로 올라서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극우를 향한 젊은 층의 대거 이동은 그렇지 않은 나머지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상대적 다수의 극우지만 그들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젊은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혐오적, 배타적 보수주의에 반감을 갖는다. 반(反)극단주의 젊은이들의 고민은 이러한 정치 지형에서 나온다. 그 출발점에 케이팝이 동반자로 나선 셈이다.

물론 감성에 호소하고자 하는 미디어 전략 뒤에는 프랑스 정치가 당면한 깊은 수렁이 감춰져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미디어 전략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짧게는 마크롱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7년의 중도 집권 세력이, 길게는 5공화국 이래 프랑스의 정치 시스템 전체가 봉착한 한계점이다.

프랑스 극우세력이 지지율 1위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극우세력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15일 경제전문 일간지 <레제코>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연합(RN)이 33%를 차지해 여전히 선두를 유지했다.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FP)이 25%로 그 뒤를 따르고, 현 집권 세력은 20%로 3위에 머물렀다.

1970년대부터 국민전선(FN)의 이름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불린 프랑스의 극우세력은 창시자 장마리 르펜을 잇는 그의 딸 마린 르펜에 이르러 원내 정당에 성공했다. 당명을 국민연합(RN)으로 개정하고 지난 9일 마크롱 대통령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기 전까지 88명의 하원의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 정책은 배타적 보호주의와 자립적 경제체제에 근거한다. 이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의존을 줄여야 하고 외국 경쟁 기업의 국내 영향력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인세를 포함한 세금을 줄여야 하며, 노동시장에서 외국인의 취업을 제한하고, 프랑스 시민들의 취업을 더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로화에 회의적이며 프랑스 화폐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재정 시스템을 재정비해 국가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의원이 총선을 앞두고 북부 헤닌-비몽의 시장을 방문해 지역 주민을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이들의 공약과 비전도 논리적 전제와 귀결로 이뤄진다. '~면, ~다'는 식이다. '자립적 경제체제를 갖추면, 관세장벽을 높이면, 세금을 줄이면, 통화 정책을 바꾸면' 등이 전제에 해당하고, '국가 이익을 높인다, 자국민을 보호한다, 성장을 촉진한다' 등이 귀결이다.

당연히 모든 정치적 메시지의 귀결은 복리와 부강으로 향한다. 문제는 이론 수학과 달리 실질 경제에서 전제와 귀결의 관계가 필연적 진위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관세장벽을 높이면 국가이익이 늘어난다'의 조건문은 어떤 경우에도 이론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비껴갈 수 있게 한다.

관세장벽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국가이익이 늘었다면 논리적으로 유효한 명제 관계다. 관세장벽을 높이지 않았고 국가이익이 줄었다면 역시 논리적으로 유효하다. 관세장벽을 높이지 않았지만 국가이익이 늘었다 해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유일하게 비난받을 상황은 관세장벽을 높였지만 국가이익이 늘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빠져나갈 길은 있다.

극우세력이 압도적 선두 달리는 이유

실물 경제의 모든 조건 관계는 필연적 관계가 아니다. 국가이익이 늘게 만드는 요인은 관세정책 외에도 무수히 많다. 마찬가지로 국가이익이 줄어들게 하는 데에도 역시 관세정책과 관계없는 무수한 다른 요인들이 있다. 관세장벽은 높였지만 다른 요인들에 의해 국가이익이 줄 수 있기 때문에 특정 관세정책의 유효성 판단 역시 불가능하다.

정책을 둘러싼 정파 간의 끝없는 논쟁은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얼마든지 변호가 가능하고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다. 다만 국가이익이 줄었을 때 가장 유리한 쪽은 아직 한 번도 종합적 정책 묶음을 집행해 보지 못한 쪽이라는 점이다. 전제를 아직 실현하지 않은 이상 이들의 조건문이 '참'일 가능성이 그나마 높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극우세력이 다른 모든 정파에 앞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악화일로의 경제 상황 속에서 아직 프랑스 국민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유일한 정파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꼭 먹어봐야 X인지 아는 거 아니'라는 식이었다면, 이제 많은 프랑스인이 '그래도 먹어봐야겠다'고 달려든다.

최근까지 극우의 주요 지지 세력이 저소득, 저학력층이었다면 지금은 고소득, 고학력의 전문직, 관리자들이 대거 극우를 향한 지지로 이동했다. 특히 이민정책과 관련한 인식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이민 억제 정책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나 가장 손쉬운 방법인 '소수자와 약자 때리기'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문제로 모든 사회 이슈를 몰고 갈 때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관리직 종사자들이 빠져나갈 길이 열린다. 저학력, 저소득, 단순직 종사자들로부터의 공격을 우회시킬 수 있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비판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이민자들 때문인 이상,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순화시킬 수 있다.

이민 억제는 앞서 나열한 극우 정당의 모든 정책과 부합하는 가장 쉽고 빠른 정책변화다. 극우 지지 세력에게 지금까지의 프랑스 이민정책은 충분히 관대했고, 이제는 억제가 유일한 답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쉽게 프랑스인들의 눈과 귀를 점령했다. 기존 세대에게는 전통적인 언론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는 틱톡과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서다.

정치와 미디어의 새로운 만남
 

지난 13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보도한 "국민연합의 틱톡 전략에 좌파는 K팝에서 영감을 받은 '쇼츠'와 '직캠'으로 대응" ⓒ 르몽드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현재 프랑스의 미디어 산업은 정보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어 엔터테인먼트가 주를 이루는 단계에 와 있다. 심지어 엔터테인먼트가 정보를 담당하는 영역에까지 왔다. 이제는 정보도 재미있지 않으면 외면당한다. 이렇게 극우는 뉴미디어를 통해 젊은 층의 눈과 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젊은 좌파들의 소통 전략은 이러한 상황인식에서 시작된다. 이들 역시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그러다 재미의 폭발적 전파력이 이들의 메시지를 순식간에 확산시키는 상황으로 이끈 것이다. 케이팝이 가진 재미의 폭발력을 정치에 접목시킨 경우다. 프랑스 좌파들은 틱톡의 무제한적 정보확산에 맞서 케이팝과 함께 유쾌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결연함이, 녹색당(Les Verts)의 꼼꼼함이 트와이스의 발랄함과 접목된다. 저들의 '카리스마'가 이들의 '블링블링'을 만나 모르는 사이에 설득력이 녹아든다. 케이팝에 익숙한 젊은 좌파 지지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다수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프랑스 정치의 새로운 문화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본질적 문제를 가리는 혹세무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 앞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은 한국의 발랄함과 익살에 손을 내밀고 있다. 정치와 미디어의 새로운 만남이 양 갈래의 길 앞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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