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독도 인근 공해상서 펼쳐진 한미일 미사일방어훈련 모습
연합뉴스 = 합참 제공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체결할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일본과 동맹을 맺는 것은 위험하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나 중국·러시아의 위협을 근거로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정당화하지만, 현 상태에서 한일동맹으로까지 나아가면 북·중·러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한국을 위협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조성될 수 있다.
2018년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에 조성된 한일 간의 경색 국면을 해소시키는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구사한 방법은 이른바 '굴욕외교'다. 굴욕외교를 통해 손을 다시 잡았다는 것은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 관계가 한일관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불평등 상태에서 군사동맹을 체결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은 1900년 의화단 사건 직후의 한일동맹 추진에서도 나타났다.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 정부를 제압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킨 뒤 동학군을 진압했다. 이로 인해 일본이 조선을 좌지우지하게 되자 고종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다. 이런 고종을 겁주기 위한 조치 중 하나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이다.
이 상태에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1896년에 발생했다. 이로써 러시아의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되고 러·일이 공동으로 간섭하는 구도가 조성됐다. 이런 세력균형에 힘입어 고종이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에 성사시킨 것이 대한제국 선포다.
하지만 그해 11월 14일에 독일이 산둥반도 교주만을 점령하자, 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북중국 진출을 견제할 목적으로 '한반도보다는 만주'에 치중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1898년부터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1894년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점차 강해졌다.
이런 정세 속에서 1900년에 중국에서 발생한 것이 반외세·반제국주의·반기독교 운동인 의화단운동이다. 일본·영국·러시아·미국 등 8개국 군대가 출동해서 진압해야 했을 정도로 이 사건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 같은 중국의 급변사태를 빌미로 일본이 요구한 게 바로 한일동맹이다. 일본의 의도를 우려한 고종이 군사동맹보다 중립국화를 희망하는데도 일본은 개의치 않고 밀어붙이려 했다. 2006년에 나온 <호서사학> 제45집에 실린 역사학자 현광호의 논문 '의화단사건 이후 일본의 대한정책'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하야시 주한일본공사는 의화단사건이 발발하자 한국의 남부 지방을 일본의 세력권으로 편입하려 했고, 이후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를 일본의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려 했다. 이 때문에 하야시는 한국의 중립화를 강력히 반대하고 한일동맹을 추진했다. 하야시는 한국 정부가 의화단 사건에 대비하여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자, 한국에 차관을 제공하여 5만 명의 상비군을 창설할 것을 제의했다. 하아시는 차관 제공의 조건으로 한일군사동맹을 추진했다."
일본이 한일동맹을 추진하면서 한국 남부를 세력권에 편입시키려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한일관계가 수직적이고 불평등했기 때문이다. 1894년에 대일 굴욕이 있고 난 뒤에 추진된 것이었기에, 이 시기의 동맹 추진은 한국의 주권을 위험에 빠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국 한일동맹이 굳이 필요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일본의 군사기지로 전락했고, 뒤이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은 피보호국이 됐다. 일본이 군사동맹을 추진한 지 얼마 뒤에 보호국 관계가 성립됐다는 것은 일본이 희망한 한일동맹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만든다.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가운데서 추진되는 군사동맹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해주는 사례다.
2023년, 지금의 한일관계는 대등하지도 않고 수평적이지도 않다. 한일관계에서 안 그래도 열세였던 한국은 윤석열 정권의 굴욕외교로 인해 한층 더 열악한 지위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군사동맹이 추진된다면, 이것이 의화단사건 직후에 추진됐던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본 입장에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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