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치코에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를 세운 켄 그로스먼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
허나, 사업은 현실이다. 파괴적 혁신은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각고 끝에 출시한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은 초반 소비자들에게 크게 관심받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맥주의 전형과 달라 생소하기도 했고 가격도 두 배 정도 비쌌다. 게다가 궁합이 맞는 유통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작은 맥주에 관심을 갖는 유통사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25% 정도의 수익을 넘기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재정적으로 어렵던 켄 그로스먼은 결국 개조한 밴을 타고 직접 소매점을 다니며 판매했다. 사업 초기 어려운 살림으로 직원들은 월급을 제때 받을 수 없었고 추가 투자도 기대할 수 없었다.
세상을 바꿀 제품이 있어도 그것을 소비해주는 고객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수많은 혁신이 때를 잘못 만나 볕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가치를 알아보고 공유하며 팬덤을 이루는 것, 이 과정이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에 필요했다. 호불호가 없고 가성비가 중요한 대중 맥주와는 다른 고객, 가치를 공유하고 그 리스크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 고객이 절실했다.
다행히 샌프란시스코는 시에라 네바다에 기회의 공간이었다. 60년대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미 동부와 달리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물결이 넘쳤다. 기득권의 질서를 거부하는 반문화 운동, 즉 히피 운동의 본진이었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 수많은 젊은 엘리트들이 정착하는 도시였다. 라거의 기득권에 대항하는 애송이 맥주를 기꺼이 소비해줄 수 있는 문화가 샌프란시스코에는 존재했다.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의 가치를 처음 알아본 곳은 셰 파니스(Chez Panisse), 버클리에 있는 진보적이고 트렌디한 요리를 추구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오너인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는 가장 신선한 로컬 푸드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과 시에라 네바다 맥주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몇몇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시에라 네바다를 눈여겨보고 있던 그녀는 주류 목록에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을 올린다. 이후, 여러 평론가들이 시에라 네바다에 주목했고 지역 신문과 잡지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전역으로 알려졌다.
켄 그로스먼 또한 대형 유통사가 아닌, 작은 맥주의 가치를 이해하는 부티크 유통사와 협력을 맺기 시작했다. 그가 맥주에 담고자 하는 여러 가치들, '지역성, 다양성, 진정성'을 공유하는 고객들은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맥주를 마시고자 했다.
점차 이런 가치가 더해지면서 마이크로 브루어리 맥주는 대량 생산 공장제 맥주와 다른 지향점을 갖는다는 의미로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로 불리기 시작했다. 시에라 네바다는 바로 크래프트 맥주의 출발점이었다.
크래프트 맥주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