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월, 레몬이 싸게 팔리는 시즌이 돌아왔다.
 5월, 레몬이 싸게 팔리는 시즌이 돌아왔다.
ⓒ 박진희

관련사진보기


본격적으로 과일청을 담글 시즌이 돌아왔나 보다. 레몬 가격이 많이 내려갔길래 레몬청을 만들기로 했다. 레몬청은 추울 때 따끈하게 먹어도 좋지만, 날이 더워지고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에도 제격이다. 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를 시원하게 만들어서 한 잔 들이켜면 갈증과 더위 따윈 한 방에 날아간다.

레몬청 담가서 소중한 분들께 선물했어요

레몬을 껍질째 먹으려면 잔류 농약이나 방부제, 왁스를 제거해야 한다. 세척 과정이 조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가가호호 세척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베이킹소다와 굵은 소금, 식초 등 2~3가지를 이용하여 꼼꼼하게 껍질을 문질러 닦고 여러 번 물로 씻어낼 게다.

껍질 세척 과정이 끝나면 오래 보관하기 위해 레몬과 설탕(또는 꿀)을 1:1로 섞어 소독한 병에 담아 상온에 원액이 자작자작 생길 때까지 놔뒀다가 냉장 보관하면 된다. 지치거나 갈증이 날 때마다 원액에 탄산수나 얼음물을 적당량 넣어 골고루 저어가며 마시면 그 청량감에 홀딱 빠져들고 만다.

담근 레몬청은 작고 예쁜 병에 소분하여 리본이나 끈으로 포인트를 주면 특별한 선물로도 그만이다. 레몬청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분들은 작은 한 병에 담긴 수고에 감사해하실 게다.

며칠 전, 올해 들어 처음 만든 레몬청을 아는 집에 보냈더니 감사 인사를 전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손 많이 가는 레몬청을 만들어 보냈다고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한다. 그리고 텃밭에 심은 아욱이 마침 알맞게 자랐으니 양껏 따가라고 덧붙인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홍무씨 2차 파종하는 날이라고 하기에 시간을 정해 함께 텃밭에 나가 보았다.  
 
텃밭에 농사지은 아욱을 이웃과 나누고 있다.
 텃밭에 농사지은 아욱을 이웃과 나누고 있다.
ⓒ 박진희

관련사진보기

 
세상에나! 텃밭이라 하여 은근히 얕보고 따라왔는데, 생각보다 넓은 면적과 심어 놓은 작물 수에 압도당했다. 가지 수를 셀 수도 없는 쌈채소와 대파, 아욱, 얼갈이, 무, 오이, 콩류, 감자, 딸기, 옥수수 등등에 베트남 향채까지... 이루 다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퇴근 후 날마다 1~2시간씩 텃밭을 돌봐왔다고 들었다. 날이 따뜻하고 비가 잦아서 주인 발소리만 멀어져도 저절로 풀이 자랐을 테니 전쟁 같은 날들이었으리라. 농약도 치지 않고 키우느라 정성은 또 얼마나 쏟았을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훤했다. 

지인은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 한 분도 대동하고 왔다. 동네 언니라는 분은 쑥갓과 아욱을 따시고 나더니, 얼갈이를 뽑으시며 한마디 하신다.

"농약도 안 치고 키운 거라 이파리 한 장 함부로 못 버리겠다."

나도 옆에서 '맞다'고 '그렇다'고 거들었다. 

중국 '긴 홍무'를  처음 봤어요
 
지인이 중국에서 씨를 가져와 심은 '홍무'는 물김치를 담가 먹거나 무생채로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지인이 중국에서 씨를 가져와 심은 "홍무"는 물김치를 담가 먹거나 무생채로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 박진희

관련사진보기


지인은 사진만 찍어대고 해찰을 부리는 내게 처음 보는 빨간 무 한 다발을 뽑아준다. "홍당무?"라고 물으니 얼추 비슷하단다. 중국에서 씨를 가져와 심었단다. 맛은 알타리무 같지만, 식감은 훨씬 부드러우면서 아삭거린다고 일러준다. 

집에 돌아와 지인의 밭에서 얻어 온 것을 세어보니, 홍무를 빼고도 족히 이십여 가지는 된다. 내가 뜯거나 뽑은 것보다 안 보는 새에 지인이 이것저것 챙겨서 보탠 게 더 많았다. 아욱이나 뜯어가라더니...

손이 많이 가는 레몬청을 만들어 꼭 주고 싶었던 그이. 그이 역시 여기저기 흙 묻혀가며 땀범벅으로 일궈낸 텃밭도 보여주고 싶고, 잘 키워낸 농작물도 나누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장담하는데 돈 주고 산 것보다 훨씬 맛있을 거다."

지인의 말마따나 저녁상에 올린 쌈채소가 하도 싱싱하고 맛나서 입이 미어지게 먹어댔다.

대놓고 말하자면 돈 만 원이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레몬청과 푸성귀가 아닌가. 그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것들을 조금씩 나눴을 뿐인데, 돈 주고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가슴 벅찬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천만 금을 주면 그 행복을 살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가 만든 레몬청과 지인이 키운 푸성귀는 서로에게 천만 금  그 이상이었다.

지인은 아무 때나 와서 필요한 만큼 거둬 가란다. 감자니, 옥수수니, 호박 딸 때 또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도 생각만 하지 말고 키위청도 재우고, 자두청이며 매실청도 때맞춰 담갔다가 "한 병 꼭 가져가야 한다"라고 들려 보내야겠다.

태그:#텃밭 농사, #이웃나눔, #레몬청 한 병, #홍무 한 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듣고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욕심껏 남기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