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제비 , 까치, 까마귀, 청둥오리, 갈매기… 같은 자주 보이는 새 말고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이 많다. 세상에는 9700 종류가 넘는 새들이 있다는 내가 아는 새 이름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산을 다니다 이름 모를 새가 보이고, 희한한 울음소리를 내는 새들도 만난다. 무심히 지나치던 어느 날, 수확이 끝난 빈 들판 옆 전봇대 위에 커다란 검은 새 세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언뜻 보니 까마귀 같기도 한데 덩치가 훨씬 더 큰 것이 까마귀는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몸집에 비해 머리는 굉장히 작고 칠면조 머리처럼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칠면조가 전봇대 위에 올라가 있나? 어? 그런데 칠면조는 날지 못하는 새 아닌가?"
그러고 보니 가까운 들판에도 검은 새들이 4, 5마리가 더 있었다.
"아~ 칠면조가 곡식 찌꺼기를 먹고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커다란 검은 새들이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칠면조가 아니다. 날개를 쫙 펴고 하늘을 여유있게 나는 모습을 보니 솔개나 독수리 같은 종류였다. 도대체 뭘까?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머리 생김새가 칠면조를 닮았다고 칠면조 독수리(Turkey vulture)로 불리는 독수리 종류 중 하나였다.
"세상에… 칠면조와 독수리가 하나로 합쳐진 새가 있다니…"
그때부터 모든 새들의 이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새를 보면 사진을 찍어 구글 포토 검색으로 새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산이나 공원을 다닐 때마다 만나는 새들을 검색해 보니 검정 딱새, 찌르레기, 파랑새, 울새, 꾀꼬리 같은 새로운 새들을 알게 되었다.
새들의 이름을 알고 나니 새 울음소리조차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관계가 없던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난 후부터 '아는 사이'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 공원에서 이름을 알게 된 새를 보게 되면 이제는 '아는 사이'가 된 것처럼 반가워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또 호기심이 생겨 만나는 새들마다 그들의 특성을 인터넷으로 찾아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공원이나 바닷가에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다보니 또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에만 구멍을 뚫는 줄 알았던 딱따구리는 사람이 사는 집 나무 벽에도 구멍을 뚫었고,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줄 알았던 왜가리는 난데없이 도심 공원에 나타나 땅속에서 나타난 들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앵무새 죽이기> 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번역되었던 책의 원 제목은 'To Kill a Mockingbird'로 직역하면 '흉내지빠귀 죽이기'가 되어야 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흉내지빠귀는 살아가면서 200가지가 넘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는 것도 함께.
그렇게 새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알기 시작하면 새가 우연히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고, 어느 때는 새 울음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이 마냥 행복해지는 찰나를 경험하게 된다.
약간 과장하자면 새와 나 그리고 자연이 하나되는 느낌? 마치 '아는 사이'였던 사람이 서로서로 부대끼면서 '친구'가 되는 것처럼. '친구'를 만나면 쓸데없는 수다를 떨어도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새 이름을 알아가는 작은 행위는 이 세상에 '아는 사이'를 만드는 커다란 순간이 된다. 그리고 내 영혼이 '친구'를 사귀는 시작이기도 하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원히 함께하는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