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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홍 시집 <아내에게 미안하다> 표지.
 서정홍 시집 <아내에게 미안하다> 표지.
ⓒ 도서출판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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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건 대낮에/여성회관 알뜰회관 교육회관으로/취미교실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아내에게 미안하다//생활꽃꽂이 꽃장식 동양화 인체화/서예 사진교실 풍물장고 생활기공/교실마다 가득찬 여성들을 보면/아내에게 미안하다//혼인한 지 십 칠년/철없는 자식들 키우느라/어수룩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취미교실 문 옆에도 못 가 보고/뒤돌아볼 새도 없이 십 칠년//하루 일 마치고/달빛을 머리에 이고/파김치가 되어 돌아온/아내에게 미안하다"(시 "아내에게 미안하다" 전문).

합천 황매산 기슭에 사는 서정홍 시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쓴 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싸우거나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서정홍 시인처럼 생각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은 '미안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서정홍 시인의 이 시를 읽은 아내의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짐작컨대, 아내 또한 남편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있을 거 같다.

서정홍 시인이 이번에 시집 <아내에게 미안하다>(출판사 '단비')를 펴냈다.

한때 노동자였던 그가 지금은 산골 농부로 살며 배우고 익힌 땀과 생명의 소중함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진솔한 삶이 시로 가득 채워져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사람 이야기가 많다. 산청 간디학교에 있는 "시인 남호섭"에 대해 서정홍 시인은 "집 없는 달팽이처럼/천천히 달리는 시골 버스처럼/욕심 내려놓고 느리느릿 살고 싶은 시인이/내 마음 가까이 산다"고 했다.

또 서정홍 시인은 "잊을 만하면/발가락이 삐져나온 털신을 신고/머리를 풀어 헤치고/마을에 쑥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하지만/그는 세상이 미쳤다고 한다/자꾸만 자꾸만 세상이 미쳤다고 한다"(시 "세상 이야기3" 일부)고 했다.

시집에는 '수철이 어머니', '늙은 어머니와 아들', '소년 가장 철민이', '순덕이', '순이 할머니' 이야기도 등장한다.

송경동 시인은 추천의글에서 "어느 순간 그의 평범한 말 속에 숨은 삶에 대한 깊은 예의와 직관이 일상의 허위에 찌든 내 머리를 번개처럼, 벼락처럼, 묵직한 태산처럼 찢어 놓던 기억은 비단 나만이 경험했던 일이 아닐 것이다"고 했다.

이어 "이 시집에는 가난했지만 금강석처럼 투명하고 단단하며 아름다웠던 그의 젊은 시절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의 시들이 모두 어제의 시가 아닌 오늘의 시들로 생생하고 오롯하다"고 덧붙였다.

서정홍 시인은 "시를 읽다가 때론 가슴이 짠하기도 하고 때론 눈물이 났습니다. 작은 개울을 지나 강을 건너 여기 오기까지 가난과 외로움, 아픔과 슬픔이 저를 지켜 주었고 자라게 해 주었습니다. 그 벗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고 했다.

그는 "'참 고마운 벗들'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혼자 살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모두 '누구' 덕으로 사는 것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누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닫습니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고 했다.

서정홍 시인은 마창노련문학상,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을 받았고, 그동안 시집 <58년 개띠>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못난 꿈이 한데 모여> 등을 펴냈다.

태그:#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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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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