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성군은 1일 오전 10시 군민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성군청 잔디마당에서 ‘1919, 그날의 함성’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선열들의 뜻을 기렸다. 특히, 홍성지역 청소년과 어린이 300여 명이 참가해 ‘독립군가’와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선보이며 당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새겼다.(뒤편으로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이 보인다. 조양문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홍성군은 1일 오전 10시 군민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성군청 잔디마당에서 ‘1919, 그날의 함성’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선열들의 뜻을 기렸다. 특히, 홍성지역 청소년과 어린이 300여 명이 참가해 ‘독립군가’와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선보이며 당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새겼다.(뒤편으로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이 보인다. 조양문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 신영근

관련사진보기


홍성군은 항일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곳이다. 청산리 전투를 이끈 백야 김좌진 장군,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만든 만해 한용운 선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홍성군 금마면 철마산에서는 3.1 운동 이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이후 홍성지역 곳곳에서 항일독립운동이 전개됐다. 이런 이유로 홍성군은 경북 안동 다음으로 많은, 208명의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이름 없는 영웅들이 피고 졌던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들의 항일구국운동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곳이 홍성이다. 그 역사의 현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이 바로 홍주성(사적 231호, 옛 홍성지명)이다. (관련기사: '항일 운동 도시' 홍성, 찾아가는 역사교실 열어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들의 항일구국운동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홍주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홍주의사총.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들의 항일구국운동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홍주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홍주의사총.
ⓒ 신영근

관련사진보기


당시, 항일투쟁에 나섰던 의병들은 일본에게 크게 이겼으나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이때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는 홍주성과 홍성천 주변에 흩여졌다. 그러나 1949년 이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수습되어 현재의 홍주의사총(사적 제431호)에 봉안됐음을 비문에는 전하고 있다. 

이 같은 홍주의사총은 지난 1992년 지금의 모습과 같은 묘역 조성사업을 하면서, 이곳의 모셔진 의병들의 항일투쟁 역사와 조성이유를 담은 조성비를 같은해 12월 건립했다. 하지만 최근 한 고등학교 한문 교사 양 아무개씨는 조성비의 한자가 너무 어려워 음조차 읽기 어렵다며, 직접 한글음 변환작업을 마쳤다.

조성비에 새겨진 한자에 단순히 음을 달아놓은 정도지만 누가 선뜻 나서거나 지적하지 않아 지금까지 한자와 한글이 혼용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성비의 경우 애초부터 쉽게 한글로 음을 써놓았다면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홍주의사총의 항일투쟁 역사를 쉽게 설명됐을 것이라고 양 교사는 전했다. 
 
한글과 어려운 한문이 혼용되어 읽기 어렵다며 '홍주의사총성역조성기'를 한글음으로 변환한 양 아무개 교사는 “홍주의사총 성역 조성비 비문의 한자가 너무 어려워 음조차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한글음 변환작업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홍성군에서 지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 제작 시 한글 한자음을 병기해주면 관광객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글과 어려운 한문이 혼용되어 읽기 어렵다며 "홍주의사총성역조성기"를 한글음으로 변환한 양 아무개 교사는 “홍주의사총 성역 조성비 비문의 한자가 너무 어려워 음조차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한글음 변환작업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홍성군에서 지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 제작 시 한글 한자음을 병기해주면 관광객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신영근

관련사진보기


양 교사는 앞서도 "지봉유설을 지은 조선중기 학자 이수광이 홍주목사 시절 읊은 시를 모은 홍양록(洪陽錄)을 시간날때 마다 번역"하기도 했다면서 "이번 조성비는 몇몇 어려운 한자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한글음만으로도, 쉽게 이해가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한글음만 표기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필자도 한자와 한글이 혼용되어 있는 조성비를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읽을 수 있었다. 이 같은 한글음 변환작업을 마친 양 아무개 교사는 "홍주의사총 성역 조성비 비문의 한자가 너무 어려워 음조차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한글음 변환작업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홍성군에서 지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 제작시 한글 한자음을 병기해주면 관광객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화가인 고암 이응노 화백 집안의 한자로 된 제적등본을 번역하기도 했다는 양 교사는 "한자 변환 작업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홍주의사총 조성비에 있는 한자 중 단어 하나가 대옥편에도 안 나오는 게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한 고등학교 한문 교사 양 아무개씨는 조성비의 한자가 너무 어려워 음조차 읽기 어렵다며, 직접 한글음 변환작업을 마쳤다. 그러면서 “한자 변환 작업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홍주의사총 조성비에 있는 한자 중 단어 하나가 대옥편(빨간 네모안)에도 안 나오는 게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괄호안은 양 교사가 한자 표시된 내용을 한글음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최근 한 고등학교 한문 교사 양 아무개씨는 조성비의 한자가 너무 어려워 음조차 읽기 어렵다며, 직접 한글음 변환작업을 마쳤다. 그러면서 “한자 변환 작업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홍주의사총 조성비에 있는 한자 중 단어 하나가 대옥편(빨간 네모안)에도 안 나오는 게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괄호안은 양 교사가 한자 표시된 내용을 한글음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 신영근

관련사진보기


그러면서 "한글음 변환작업을 마친 조성비 내용은 교정과 주역(내용 번역)을 거치는 대로 군에 자료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이외에도 홍성지역 역사와 관련한 비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음 변환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홍성군은 1일 오전 10시 군민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성군청 잔디마당에서 '1919, 그날의 함성'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선열들의 뜻을 기렸다.

그뿐만 아니라 군민들은 군청에서 '홍성 평화의 소녀상'을 거쳐 홍성 전통시장까지 행진을 이어나갔다. 특히, 행진 중간에 홍성지역 청소년과 어린이 300여 명이 참가해 '독립군가'와 '독도는 우리땅' 플래시몹을 선보이며 당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새겼다.
 

태그:#홍주의사총, #홍성군, #조성비한자표기, #비문번역, #홍주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