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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페미는 가능할까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이하 남함페)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고민에 부딪힌다. 개중 '남페미는 가능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는 아직도 물음표가 남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며 겪는 경험의 차이와 내 숱한 과오들을 뒤로하고, 당당히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남성들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다.
▲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로고 남성들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다.
ⓒ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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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신하게, 페미니즘 활동에 앞장서는 여성들을 보필하면서 내 잘못을 반성하고 성차별을 재생산하지 않으며 쥐죽은 듯 숨죽이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특히 페미니즘 관련 활동이라도 하고 온 날이면 밀려드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안고 씨름한다. 평생을 지고 살아야 할 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멈출 수는 없다. 나의 낙담과 자조가 폭력을 외면할 수 있는 위치라 가능한 것임을 안다. 또 내 업보는 그보다 훨씬 무겁고 죄질이 나빠서 마냥 낙담하고 좌절해 있을 수만도 없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세상의 부조리함 때문에라도, 또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며 깨달은 나의 개인적인 해방감 때문에라도 '남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꾸역꾸역 이야기 한다.

남페미에게도 언어가 필요해
 

그래서 요즘은 나의 페미니즘 언어를 고민한다. 남함페 활동 초창기, 내 언어는 나를 포함한 남성들을 구박, 고발, 조롱하여 꼬무룩(필자 : 남성 성기와 시무룩의 합성어로 의기소침해진 남성을 의미한다)하게 만들고자 했다. 혹은 자기반성인지 자기연민인지 모를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사연팔이를 했다. 그게 성차별적인 남성중심사회에서 살아온 남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저런 언어들이 어색해졌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남성이 남성을 욕하는 저항의 언어는 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나를 포함한 남성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싶다면, 차라리 내 뺨을 강하게 후려치는 편이 쉽고 빠르지 않을까 고민이 들었다.
억압자이자 특권자로서의 자신을 경멸하고 자학하거나, 속죄의식의 일환으로 여성학 이론을 추정하는 것만으로 이 고민을 끝낼 수는 없다. 나 혼자 착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불편함과 한계를 끌어안되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출처 : 최태섭, <한국, 남자>, 은행나무 출판사, 276쪽)
 
물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자기반성'하고 '남성들이 변해야 한다'는 문화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동시에 '나'를 다른 남성과는 다르다고 선긋기 하며 타자화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더욱이 이는 여성들의 언어와 자리를 빼앗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저항의 언어를 사용하는 남성은 그 희귀함과 특수성으로 인해 기존 성평등 활동을 하던 여성들보다 더 자주 눈에 띄고 부각되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남함페가 활동 기간과 역량에 비해 더 많은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과도한 주목을 지양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다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으로 이어졌고 끝없는 딜레마에서 자포자기하거나 도망쳐버리는 수순 밖에 없어 보였다.

'남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사용하는 저항의 언어(여성들이 저항의 언어만 사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남성들의 상황과 현실에 어울리는 언어가 필요했다.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

그래서 요즘 내 삶과 남함페 활동은 언어를 찾기 위한 고민의 연속이다.

최대한 많은 남성들을 만나 페미니즘을 설득하기 위해 좀 더 쉽고 친근한 방식을 고민하기, 혐오발언을 제지하고 모두가 안전한 공동체를 조성하도록 노력하기, 여성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을 때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발언권을 줄이기 등 일상에서 활동의 영역까지 가능한 페미니즘 언어를 고민 중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리멸렬하고 답답하며 때론 절망스럽고 분노가 차오르는 일이다. 수많은 주변 페미니스트들이 아직은 어불성설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고 앞장선 페미니스트들이 지치고 좌절하는 모습도 숱하게 봤다.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

(원래는 모전여전, 부전자전 이런 뜻이지만 내 맘대로 다르게 해석했다.)
 
사실 스스로도 아직 남페미의 언어가 무엇인지, 그게 가능하기는 한지, 의미가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저 말처럼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나 또한 사과나무에서  머지 않은 곳에 떨어진 사과 한 조각에 불과해 마냥 제자리걸음을 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싹을 틔워 다시 사과나무가 되고 또 다시 사과를 떨구어가다 보면, 오래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사과나무 숲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과향만큼이나 상큼한 상상을 하면 우리의 지금이 조금은 덧없고 버겁게 느껴지다가도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아주 미약하고 작은 존재라,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지만, 내 주변 든든한 사과나무들을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언어를, 숲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랬듯이.

태그:#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남함페, #남페미,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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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과 성평등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함페는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 실천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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