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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8명의 농업노동자가 숨지고 7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습니다. 모든 언론은 단순 교통사고로 보도했지만, 이는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탓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가 귀농한 2000년 이전부터) 농사일의 대부분은 자가 노동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인근 도시에서 일꾼들을 데려와 함께 일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충북 단양에 사는 제 경우에는 경기도 여주와 강원도 강릉에서 일꾼들이 들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일용직 농업노동자들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행히 사고 이전에는 단 한번도 노동자로서 대우받지 못했던 위 사고의 피해자들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산재인정 예외사유로 규정하는 '비법인 개인농업장에 출퇴근하는 과정에서 난 재해'에 해당되지만, 올해부터 개정된 산재보험법에 의거해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로 이동하다가 난 사고'로 인정돼 산재로 인정되었습니다.

대부분 60대부터 80대의 고령 여성인데 그들의 노동조건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제가 귀농한 2000년의 경우 일당 3만원에 해 뜨면 밭에 들어가 해 질 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한여름에는 새벽 6시에 밭에 들어가 저녁 7시 넘어까지 일을 했으니 하루 13시간이 넘는 노동을 했던 것입니다.

농사일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낫에 베이는 일은 다반사고 뱀을 맞닥뜨리거나, 벌에 쏘이거나, 수수대에 눈이 찔리는 사고도 종종 있었습니다. 사고가 나면 그들은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거나 운이 나빴음을 원망하며 응급조치만 한 채 자비로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산재보험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이들의 일당이 오르고 노동시간이 단축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농업노동을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배제시킨 정부의 일자리 확대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공근로사업 확대와 외국인 농촌이주노동자 도입정책 덕분이었습니다.

일용직 농업노동자들 중 젊은 60대들이 8시간만 일하면서 더 많은 일당을 받는 공공근로사업으로 빠져나가고, 그들의 빈자리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채우면서 국제적 노동기준을 무시할 수 없는 정부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 농가에 지원금을 주면서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이라도 지킬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연간 농업 소득인 천만 원인 임차농 겸 농업노동자.
최저임금도 못 받고, 4대보험에서 배제된 고령의 농업노동자.
정부의 지원금 덕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불가사의한 농촌의 고용구조가 탄생하게 됩니다.

2014년 10월 20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국은 이주 농장 종사자들에 대한 '만연한 학대'를 중단해야 한다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권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합니다.

기사는 Far from the glitz and glamour of Seoul, a migrant underclass endures horrific abuse (서울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달리 이주민 하층계급은 끔찍한 학대를 겪고 있다)로 시작됩니다.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이 대목이 기사에서 빠져있습니다)

기사가 인용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보고서는 2014년에 10월 19일에 발표된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입니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If South Koreans were trapped in a similar cycle of abuse, there would rightly be outrage," adds Muico. ("만약 한국인들이 유사한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면, 마땅히 분노가 있을 것이다"고 무이코는 덧붙인다)입니다.

자극적이고 수치스러운 단어로 가득한 기사에서 한국 농업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니 한국인의 분노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국제엠네스티의 아시아태평양 이주노동자 인권 조사관인 무이코의 예상이 틀렸다는 점에서 절망을 느낍니다.

외국인 농업노동자들 덕분에 일당도 오르고, 노동 시간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외국인 농업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버티는 7~80대의 여성 농업노동자들이 존재함에도 아무도 분노하지 않고, 외면할 뿐이니 말입니다.

일용직 농업노동자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에서도 고용주인 농민들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실제로 저는 10년 전부터 작물생산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근로복지공단에 해마다 보수총액신고서를 제출해 일용직 농업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농민들의 소득이 많지 않다는 것과 농민들 중 상당수가 자기 소유의 농지(생산수단)가 없이 농지를 임대해 농사짓는 임차농이자 농업노동자라는 점입니다.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현재 농업경영체 등록을 한 모든 농가에 사업자 등록을 의무화 시켜 고용주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하고 일용직 농업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등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부재지주와 영리행위가 금지된 공무원과 교수 등 부패한 공직자들을 가려내고, 농민들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해 농업관련 보조사업이나 지원이 가짜 농사꾼이나 부농에게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면 현재의 농업예산만으로도 농업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할 것입니다.

둘째, 현재 농협을 통해 운용중인 농업인 안전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해 농민들이 질병이나 상해로 인한 노동력 상실에 대한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농민 중에서 농사에 가장 기본적인 생산수단인 농지를 소유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임차농에게는 국가가 고용주가 되어 산재보험에 가입시켜 주어야 할 것입니다. 기준은 8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매년 3000평(10,000㎡) 이상의 농사를 지으면서 농외소득이 농업소득보다 적거나 없는 농가 중 자가 소유의 농지가 300평(1000㎡)이 넘지 않는 임차농으로 정하면 될 것입니다.

임차농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는 특별히 시급한 과제입니다. 지주들이 임대 계약을 취소하거나, 질병으로 농사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바로 생존의 위협에 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고 합니다.

황혼을 지나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농촌에서 날갯짓을 시작한 부엉이가 휘황찬란한 인공의 불빛으로 황혼이 사라져버린 서울 앞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 인정과 지대 개혁을 위해!
 

#농업노동자#비정규직#지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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