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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 20주년 기자회견 노동법률단체가 2일 낮 12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파견법 시행 20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파견법 20주년 기자회견노동법률단체가 2일 낮 12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파견법 시행 20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신지수

"20대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4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파견법이 유지되면 지금의 20대들도 20년 뒤에는 우리 모습대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생애주기가 있듯, 직장인에게도 '입사-승진-퇴직'이라는 주기가 있다. 입사 후 시간이 흐르면 월급도 오르고 직급도 높아진다. 이런 주기와 무관하게 20년째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다. 파견 노동자들이다. 수년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직급은 그대로다. 월급도 항상 최저임금이거나 약간 넘는 수준이다. 그저 이들을 고용한 회사의 간판만 바뀔 뿐이다. 그래서 파견 노동자들을 스스로를 '소모품 인생'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모품 인생'은 SK·현대·기아차·KTX·쌍용 등 많은 곳에 있다.

파견법 시행 20년을 맞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등 노동법률 단체 4곳은 2일 낮 12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견법을 폐지하고 불법파견을 엄벌하라"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파견노동자들은 "정부는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해준다며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을 만들었지만, 보호는커녕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됐다"라고 지적했다.

파견은 간접고용의 한 형태로 파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가 다른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와 사용하는 사업주가 다른 것이다. 이러한 기이한 노동형태는 외환위기의 산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노동유연화 요구로 우리 정부는 1998년 2월 파견법을 제정, 같은해 7월 시행했다.

현재 파견법이 적용되는 업종은 청소·경비 등 32개로 제한돼 있다. 이외 업종은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는 파견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기거나 일시·간헐적으로 인력이 필요한 경우에만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는데 이것도 최대 6개월까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제조업 등 파견노동이 불가능한 분야에도 파견노동은 일상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2003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현대·기아차 공장의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지만, 시정이 안 되고 있다"라며 "20대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40대인 지금도 비정규직이다"라고 고통을 토로했다. 김씨는 "불법파견을 해결하지 않으면 지금의 20대가 20년 뒤 우리 모습일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파견법은 노동자에게 '소모품 인생'을 안겨준다고도 했다. 최초로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임을 인정받은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 김인선씨는 "98년 5월 인사이트코리아라는 회사에 입사했다"라며 "그리곤 SK의 물류센터에서 일했다"라고 했다. 김씨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우린 파견업체 소속이었다"라고 했다. 김씨가 겪은 일은 20년 동안 다양한 사업장에서 반복됐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전산을 담당하는 코스콤에서 2000년부터 일한 파견노동자 정인열씨는 7년 동안 사용주가 2번이나 바뀌었다.

2004년부터 KTX 승무원으로 일한 김승하 철도노조 KTX 승무원지부 지부장은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 당시 철도청에 입사했는데 알고보니 홍익회라는 자회사였다"라며 "당시 철도청은 철도공사로 바뀌면 직접 고용하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지부장은 "2006년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지만 4500여일이 지나도록 농성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2002년부터 기륭전자에서 일한 김소연씨는 "파견법 등으로 국가는 외환위기를 3년 만에 졸업했다"라며 "지금도 파견노동자들은 업체만 바뀌어가며 3~6개월 파견 인생을 살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파견노동자 출신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파견 노동을 포함해 간접고용은 그 자체가 문제다"라며 "원·하청 사용자가 구분된 것 자체를 없애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파견법을 폐지해야한다"라며 "헌법에 직접 고용을 명문화하고 직업 안정법으로 일원화 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파견법#소모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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