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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처럼 살아보기. 중고자전거를 장만해서 여행해보자.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중고자전거를 장만해서 여행해보자.
ⓒ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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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는 이례적으로 두 달을 머물렀다. 한반도의 폭염이 모두를 질려버리게 한 그해 여름이었다. '눈 축제'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 이곳의 성수기는 의외로 여름이다.

최고 기온은 30도를 밑돌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공기는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처럼 상쾌하다. 불쾌지수를 높이는 꿉꿉한 습도 대신 만개한 보랏빛 라벤더가 싱그럽고 푸른 여름을 한층 아름답게 물들인다.

삿포로에 도착한 다음 날, 대중교통이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대신 중고자전거를 하나씩 장만했다. 어렵게 자전거 등록까지 마치고 거리를 씽씽 달리고 나니 삿포로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완벽한 계획도시를 꿈꾸며 만들어진 이 도시는 드넓은 평지 위에 반듯한 격자 마냥 도로가 정비되어 있으며 오르막내리막도 거의 없어 자전거를 타기에 더없이 좋다.

삿포로의 대다수 시민들도 비싼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니 여행의 시작으로 중고자전거 구매는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자전거를 탄 우리의 목적지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의 소소한 일상 속이다.

삿포로 시민들이 열광하는 문화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삿포로 돔을 찾거나 경마장에 가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들고 경마장으로 피크닉을 나온 가족 단위 틈에서 도박이 아니라 생활 스포츠로서의 경마를 즐길 수 있다. PMF(Pacific Music Festival)① 기간에는 유료 공연 외에도 도심 곳곳에 열리는 무료 공연이 많은데 시청 로비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한 하프 연주를 보기도 하고 운이 좋다면 수준 높은 타악기 연주도 만날 수 있다.

홋카이도 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편도 1km 정도의 직선도로. 이곳에서 매일 아침마다 달리기를 했다. 여행지에 가서 달리기라니 많이들 의아해하실 텐데 현지인들 틈에서 같이 뛰면, 살아보는 여행 그 이상으로 도시에 대한 깊숙한 친밀함이 느껴진다. 매일 달리기 연습을 위해 공원이나 학교를 뛸 때도 그렇고, 현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때도 그렇다. 실제로 우리는 '홋카이도 국제 마라톤'에 참가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을 찾아다니자

살아보는 여행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볼 수 있다
 살아보는 여행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볼 수 있다
ⓒ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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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는 여행'에서 '집'과 '동네'는 매우 중요한데 동네 주민들이 처음부터 낯선 이의 방문을 달가워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찾아온 '손님'으로 받아들여지는 데까지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내가 먼저 한 발짝씩 다가갈수록 이방인을 바라보는 경계 어린 눈빛이 옅어지고 그렇게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고 나면 가던 길을 멈춰 세우고 '오늘은 뭐 할 건데' 하며 이것저것 물어오기 일쑤이다. 동네 주민들이 알려준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들과 함께하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삿포로에서는 현지인들이 알려 준 '스프커리' 식당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선선한 여름이 짧게 지나가면 이내 쌀쌀해지고, 이른 겨울이 찾아와 추워지기 시작하다가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홋카이도에서는 커리를 묽게 만들어 따뜻하게 스프처럼 먹는다.

카레 가루를 베이스로 야채와 고기를 넣고 끓인 탕인데 재료의 맛이 모두 우러나오도록 은근하게 끓여 낸 국물에 빠져든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사람들이 알려주는 식당에 가서 스프커리를 먹었는데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한두 번 먹어서는 그 매력을 알 수 없지만 오래 머무는 여행이기에 충분히 맛을 보고 내 입에 맞는 식당을 점찍어 단골손님이 되어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짧은 휴가를 내서 외국으로 떠난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기대로 가득 차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일상이 지치고 힘들수록 여행만큼은 완벽하고 남들 보기에 멋져 보이길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다.

시행착오를 용납할 수 없기에 가이드북에서 권하는 일정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매뉴얼이 되어버리고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그 풍경도 봐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여행도 그러했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보다 사람들 말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 더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여행은 늘 새로운 것투성이였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생경한 동네와 낯선 이들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불편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낯선 이국의 공간에 잠시 소속되어 현지인의 친구가 되어 보고 그들의 공간을 나누고, 작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었던 '살아보는 여행'이기에 가능했다.

① 매년 여름 삿포로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 축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은덕, 백종민님은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입니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고, 현재 '채널예스'에서 <남녀, 여행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한달살기 여행, #삿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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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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